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일제강점기 아픔 서린 '영추문', 43년 만에 빗장 풀어

입력 2018-12-07 08:14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트위터

[앵커]

경복궁 정문에서 왼쪽으로 가서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는 서문, 영추문이 43년만에 개방이 됐습니다. 조선시대 백성들도 드나들수 있는 유일한 문이었고, 일제강점기때의 아픔을 간직한 문이기도 합니다. 화면으로 만나보시겠습니다.

강나현 기자입니다.
 

[기자]

[문을 여시오!]

힘차게 열어젖힌 문 너머로 궁궐과 바깥 세상이 43년 만에 만났습니다.

600년 전 조선시대 관리들의 출퇴근 통로였던 영추문은 궁을 출입하는 백성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문이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 화재로 사라졌다 150여 년 전, 흥선대원군이 궁을 재건하면서 다시 선 영추문.

그러나 그 이후에도 우리 역사의 아픈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1894년 일본군은 이 문을 열고 궁에 들어와 고종을 위협했고, 2년 뒤 아관파천 때 고종이 이 문을 나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1926년 일본이 바로 앞에 놓은 전찻길 탓에 담장이 무너져내린 뒤 또 한번 사라졌습니다.

[대한뉴스 (1975년) : 1926년 일본 사람들이 총독부를 짓고 지금의 효자로를 넓히며 헐어버렸는데 문화공보부가 광화문에 이어 이번에 다시 복원했습니다.]

1975년, 원래 자리에서 남쪽으로 45m 떨어진 곳에 다시 섰지만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나무와 돌 대신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됐고, 또 보안상의 이유로 시민들에게는 줄곧 닫힌 '낯선' 문이었습니다.

영추문이 빗장을 풀면서 경복궁은 이제야 동서남북 4개의 문이 모두 열렸습니다.

문화재청은 발굴 조사를 통해 2040년까지 영추문을 조선시대 그모습 그대로, 원래 위치에 되돌려 놓을 계획입니다.

(화면제공 : KTV 국가기록원)

관련기사

JTBC 핫클릭

키워드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