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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벗어야만' 하는 사람들|한민용의 오픈마이크

입력 2020-09-05 19:52 수정 2020-10-1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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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은 코로나 시대, 마스크를 '벗어야만' 하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코로나를 막을 유일한 무기라는데, 누가, 왜 이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걸까요? 손 그리고 입 모양, 표정으로 소통을 하는 '농인', 그리고 그들의 '귀'가 돼 주는 '수어 통역사'입니다. 숨 쉬기 답답한 줄만 알았는데 30만 명 넘는 농인들은 마스크 때문에 소통이 안 돼 답답해하고 있었는데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기자]

하루하루 코로나19 상황을 전해주는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이곳에 가장 먼저 와 환하게 불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농인들의 세상을 밝혀주는 '수어 통역사'입니다.

마스크를 꼭 쓴 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통역사들.

정은경 본부장이 등장하자, 조심스레 마스크를 벗습니다.

손으로만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은미/수어통역사 : 마스크를 쓰고 할 수가 없어요. 손동작뿐만 아니라 표정이나 이런 몸짓, 동작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김동호/수어통역사 : 아, 행복해. 이걸 (표정만으로) 불행하다로 바꿀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점을 모르는 사람도 많아 '항의 아닌 항의'도 받습니다.

[고은미/수어통역사 : 다들 걱정 어린 말씀이신 거죠. 서로를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 아니냐… 브리핑할 때 외에는 마스크를 꼭 쓰고 있고요. 저인들 걱정 안 되겠어요. 걱정 되죠.]

사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방역에 철저합니다.

그래야만 하는 '특별한 사명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은미/수어통역사 :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브리퍼 옆에 똑같은 사이즈로 통역이 나갔잖아요. 정보 전달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어통역사로 인해서 본부가 오염되거나 (그래서 통역이) 중단된다거나 말이 나오면 그것만큼 더 죄송하고 속상한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지금 농인들이 코로나19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이 브리핑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더욱 최선을 다합니다.

[김동호/수어통역사 : 그래서 더 동등하게 전하려고 많이 노력을 많이 해요. 잘 안됐던 부분들 다시 연습해서 더 잘 전달하려 하고… (농인분들이) 많이 답답하실 것 같아요. 특히 정보를 찾기 힘들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정말 암흑과도 같은…]

'암흑', 마스크로 가려진 세상은 농인들을 암흑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대기 번호를 부르는 것을 '보지 못해'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농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이런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봉틀을 돌렸습니다.

입 모양이 보이는 '투명 마스크'를 직접 만들기 위해 나선 겁니다.

[안정인/서울농아인협회 강북구지회장 : 저희는 눈으로 보거든요. 모든 정보를 눈으로 보는데, 모든게 어둡게 변한 거죠.]

비닐 우산, 책 싸는 비닐.

비닐이라면 뭐든 다 뜯어 시도한 끝에, 염색할 때 얼굴에 튀지 말라고 붙이는 비닐로 마스크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안정인/서울농아인협회 강북구지회장 : 제가 600장을 만들었어요. 혼자 직접 만들었습니다. 작은 바늘구멍 한 땀 한 땀 보느라 눈이 정말 아팠어요.]

며칠 밤을 꼬박 새워 만든 마스크는 어린 학생들이 있는 '농학교'부터 시작해 곳곳으로 보내졌습니다.

자신은 들을 수 없는 이 재봉틀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을 그 긴긴밤, 무슨 마음이었을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안정인/서울농아인협회 강북구지회장 : 코로나 때문에 정말 답답한 일들이 많아요. 농인들은 서로 얼굴 표정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소통도 안 되고, 대화에도 한계가 있고요. 정부에 이런 투명 마스크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드리고 싶어요.]

(영상그래픽 : 김정은 / 연출 : 홍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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