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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항쟁' 옛 전남도청서 5·18 기념식 열기까지 '40년'

입력 2020-05-18 20:21 수정 2020-05-18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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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5·18 광주
고립된 광주 짓밟힌 민주주의

1987·6·10
'6월의 함성'으로 되살아난 5·18 정신

2016 촛불
앞서서 나아간 5·18
민주주의 향한 끝없는 발걸음

[앵커]

광주의 그날은 40년이 흐르며 우리의 그날이 됐습니다. 5월의 광주를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공감으로 서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공감은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또 다른 힘을 만들어 왔습니다. 민주화의 물줄기가 솟아올랐던 광주는 지금도 그 증거들을 품고 있습니다. 아직 밝히지 못한 진실의 단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JTBC가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를 찾은 이유기도 합니다.

먼저, 처음으로 옛 전남도청 앞에서 치러진 5·18 기념식 소식을 심수미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기자]

1980년 5월 전남도청에서 광주시민들은 마지막 항쟁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정부가 공식 기념식을 열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차경태/5·18 유족 자녀 : 지옥 같은 현장에서도 광주시민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부상자들을 위한 헌혈에 참여하였으며 모두 한마음으로 서로를 도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해 도청을 지키다 쓰러져간 시민 한 명 한 명을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기렸습니다.

[계엄군의 총칼에 이곳 전남도청에서 쓰러져 간 시민들은 남은 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열어 갈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폭력의 진상을 반드시 밝히겠다고도 다시 약속했습니다.

[진실은 우리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만드는 힘이 되고 국민 화합과 통합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5·18 최후항쟁 생존자'였던 고 이연 씨의 묘소도 찾았습니다.

이씨는 1980년 당시 계엄군에 당한 폭력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다 지난해 숨졌습니다.

피해자들은 지난 세월의 아픔을 털어놓으며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김영훈/5·18 민주유공자유족회장 : 90년도까지는 폭도로 (규정)해서 병원에 가지를 못했어요. 도립병원이라도 광주에 하나 건립해 줬으면…]

이씨가 안치된 제2묘역은 기존 민주묘지가 가득 차면서 2011년 새로 생긴 곳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40년째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행방불명자를 찾는 데도 정부가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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