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일본에 대한 투쟁에 누구보다 앞장섰지만 월북 이력이 발목을 잡은 약산 김원봉 선생이 있습니다. 후손들은 끝까지 명예 회복에 나서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배승주 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경남 밀양 출신으로 만주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이끈 약산 김원봉.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조직해 23번의 폭탄 의거와 요인 암살을 주도했습니다.
당시 일제는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 보다 많은 현상금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월북 경력 때문에 독립유공자에 제외됐고 남은 가족들은 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김용건/약산 김원봉 조카 : 약산의 남동생이란 이유로 줄줄이 끌려가 한자리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먹고사는 것조차 힘들었죠.]
약산의 11남매 가운데 막내이자 유일한 혈육이던 김학봉 여사가 24일 별세해 어제 영면에 들었습니다.
[윤일선/밀양독립운동사 연구소장 : 고인의 소원이신 약산 장군의 독립운동가로서 인정받고 서훈 받을 그때까지…]
약산의 후손들은 해방 이후 권력을 잡은 친일파는 서훈을 받고,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은 핍박 받아온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태영/고 김학봉 여사 차남 : 정의는 사라지고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쓸 수밖에 없던 시절이죠.]
또 과거 정부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된 약산 기념사업회를 올 연말 발족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