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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4회] 국악과 신탁통치? 서울대 성악과, 왜...

입력 2014-03-10 07:49 수정 2014-03-1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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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뮤지컬 배우 김소현. 이런 내로라하는 음악가를 배출한 곳이 바로 서울대 음악대학입니다. 그런데 이 서울대 음대가 사상 초유의 내분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성악과 교수 채용이 파행을 거듭하고 성추행 논란까지 불거졌습니다. 급기야 지난주에는 성악과 학과장에 국악과 교수가 임명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도대체 서울대 성악과 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한윤지 류정화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깊고 가냘픈 가야금 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집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가락을 만들고 흥을 돋우는 이는 바로 새로 임명된 서울대 음대 성악과의 학과장입니다.

오페라의 아리아와 바리톤의 중후한 발성을 가르쳐야 하는 성악과 학과장에 가야금을 전공한 이지영 교수가 선택된 겁니다.

세계 무대를 꿈꾸는 성악가 지망생들이 선망하는 서울대 성악과를 국악과 교수가 지휘하게 되자 성악계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서울대 성악과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 5일, 성악과 강의실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노랫소리가 흘러 나옵니다.

하지만, 건물 밖에서는 학생들이 대자보 붙일 곳을 찾고 있습니다.

음악 대학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원한다는 학생들은 총 7장의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4시간 뒤, 대자보는 누군가에 의해 찢겨져 있었습니다.

찢어진 대자보는 성악과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한 단면입니다.

불씨는 교수 공채가 진행되던 1년 전 시작됐습니다.

당시 성악과 공채에 지원한 사람은 모두 7명인데 신모씨를 제외한 6명이 모두 '부적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신씨는 경쟁자도 없는 단독 후보가 되면서 교수 채용에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심사위원 6명의 점수는 극과 극을 달렸습니다. 4명은 신씨에게 만점을 줬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두 명이 0점을 매겼습니다. 신씨가 제출한 사립 성악원의 예술학위를 박사학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서울대 음대 채용 규정상 예술 학위는 박사에 상응하는 자격이지만 문제는 신씨가 석사를 하지 않고 이 학위를 받았다는 겁니다.

채용이 무산된 이후 다시 공개 채용이 열렸고 이번에도 신씨가 또 다시 최종까지 올랐지만 학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아이다'를 함께 불렀고 1990년대 두 차례 그래미상을 받은 오페라 가수 제임스 모리스입니다.

모리스 역시 신씨와 같은 성악원 출신입니다.

신씨와 경쟁했던 다른 후보자들도 이 성악원의 위상은 인정했지만, 서울대 음대 교수 채용 기준에는 맞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최종 심사에 2번이나 올라갔다가 결국 탈락한 신씨는 억울하단 입장입니다.

이렇게 성악과 교수 채용이 무산되면서 교수들간의 파벌 싸움은 본격적으로 불거졌습니다.

신씨를 채용하자는 쪽과 안된다는 쪽이 극명하게 갈린 겁니다.

급기야 일부 심사위원이 채용 채점지를 들고 나가버리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와중에 서울대 성악과 박모 교수의 학생 성추행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파행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습니다.

박 교수는 신 후보자와 같은 교수 밑에서 수업을 받았던 사이로 이번 교수 채용의 인사위원입니다.

2년 전, 4개월 동안 박 교수에게 개인교습을 받았다는 여학생의 아버지가 공개한 SNS입니다.

신체와 애정 행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피해 여학생의 아버지와 직접 통화했습니다.

[성희롱 피해 주장 여성 아버지 : 변호사가 선임돼서 뭐라고 말씀 못 드리겠어요. 어떻게 대응할지는 변호사와 상의해서 하려고 합니다. (교수 측은 조작이라고 주장하는데?) 진실은 나중에 밝혀지겠죠.]

취재진은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박 교수를 어렵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박모씨/서울대 성악과 교수 : 외국에 있는 학생이니까 독창회를 했다거나 학교에서 연주를 하면 녹음 자료를 보내주면 듣고... (이 SNS가) 조작된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제자 관련해서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한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취재 도중 박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또 다른 폭로도 이어졌습니다.

[성추행 피해 주장 여성 : 반바지를 입고 갔는데 굉장히 약간은 좀 끈적하다 싶을 정도로 허벅지에 신체접촉을 하셨어요. 손으로.]

성추행에 이어 불법 개인 과외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입시 비리 제보자 : (학생이) 입시 앞두고 (박교수로부터) 네 번 정도 (레슨) 받았고요. 무사히 잘 붙고 나서 입시 끝나고 학부모님이 300만 원 정도 준비해서 인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이런 모든 주장이 자신을 둘러싼 악의적인 비방이라며 명예훼손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성추행을 비롯한 일련의 주장들이 이번 공채 때문에 벌어진, 자신에 대한 '음해'라고 반박합니다.

+++

[앵커]

한윤지 기자, 저는 음대에 파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거든요. 어떻습니까?

[기자]

네, 저도 취재하면서 조금은 굉장히 놀랐습니다. 교수들 사이에 자신의 제자나 친한 사람을 이끌어 주기 위해서 서로 세력 다툼을 하고 있는데 그런 싸움들이 무서운 폭로전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내분 때문에 학과 운영이 파행을 빚게 되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현재 성악과 교수 정원 8명 가운데 4명이 비어있는 상태입니다. 그나마 있던 교수 한 명도 각종 의혹에 휩싸이면서 사실상 교수 3명이 1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셈인데요. 자세한 내용 화면으로 함께 보시겠습니다.

교수 채용이 불발된 뒤 다시 찾은 서울대 음대는 뒤숭숭한 분위깁니다.

세간의 관심으로 민감해진 학생들은 취재진과의 접촉조차 꺼립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서울대 합격의 기쁨에 들뜬 신입생들이 들어왔지만 지도교수는 절반이 공석입니다.

학생들은 신임 교수 임용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학장에게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돌아온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신임 교수 임용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철회하라는 겁니다. 취재진은 해당 강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강사는 약속했던 인터뷰를 돌연 취소했습니다.

여기서 더 나서면 스스로 위험하고 보복이 두렵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뒤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입장이 다른 누군가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듯 했습니다. 이 강사는 어떤 보복이 두려웠던 걸까?

음악계에서 파벌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자신의 제자나 친분이 있는 사람을 이끌어주기 위한 교수들의 알력 다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서울대 음대의 한 관계자는 공정해야 할 이번 교수 채용이 준비된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학생들은 이미 대학 입시 때부터 이런 파벌을 경험합니다.

서울의 한 유명 음대를 졸업했다는 한 여성은 실력보다는 어떤 교수 밑에서 배웠느냐가 더 중요했다고 털어놓습니다.

한 사람의 음악 인생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교수인 셈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교수와 제자간의 종속 관계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2011년 제자 폭행으로 파면된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 역시 '슈퍼 갑과 슈퍼 을'의 종속관계에서 빚어진 사태였습니다.

성악과의 잇단 내홍에 대학이 고육지책으로 꺼내든 카드가 국악과 교수를 성악과 학과장에 임명한 겁니다.

결국 가야금을 전공한 국악과 교수에게 성악과의 지휘봉을 맡기게 된 서울대 음대.

빛이 안 보이는 파벌싸움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낼지, 더 큰 내분으로 이어질지, 성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

서울대도 오죽하면 국악과 교수에게 성악과를 맡겼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서울대가 낸 고육책이 과연 내분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 아니면 도리어 악화되는 건 아닌지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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