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금부터 종이 상자에 구멍을 뚫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전해 드리겠습니다. 손잡이 구멍만 있어도 노동자들이 상자를 들 때 많게는 40%까지 몸의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고용노동부도 알고 있습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2019년 10월 21일) : 무거운 상자에다 손잡이를 설치하는 방안을 마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관이 약속까지 했는데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구멍이 안 뚫렸습니다. 이쯤 되면 '구멍 하나가 뭐라고'라는 말이 나올만 합니다.
이수진 기자입니다.
[기자]
마트 노동자가 상자를 수레로 옮깁니다.
양손으로 모서리를 잡고, 무릎으로 상자 아래를 받쳐야 들 수 있습니다.
세제가 담긴 박스로 20kg짜리입니다.
[진짜 무거워…]
추석 선물 세트가 사람 키만큼 쌓였습니다.
햄이 담긴 상자를 진열대로 옮기는 건 모두 노동자의 몫입니다.
진열대 뒤 보관창고에선 이런 작업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반복됩니다.
[전인순/마트 노동자 : 명절이니까 간장 종류, 기름 종류 이런 게 많이 나가는데 박스에 12개씩 들어있어요. 1리터씩 되니까 무게가 만만치 않죠.]
반복된 작업에 몸도 버티질 못합니다.
[전인순/마트 노동자 : 밑바닥에 이렇게 해서 들어야 해요. 우선 (어깨가) 많이 아프고. 손가락도 무리가 많이 가죠.]
지난해 10월 노동자들은 상자에 조그만 구멍만 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손잡이 구멍만으로도 손과 몸이 받게 될 하중이 최대 40%까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국정감사에 나온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른 시일 내에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 또 추석 연휴가 왔습니다.
지금까지도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게 노동자들의 설명입니다.
[정민정/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사무처장 : 실제로 현장에서는 그 기대에 부응하는 사업들이 진행되지 않았고, 엄청 실망을 많이 했었죠. '나의 노동에 대한 존중은 없구나…']
5kg 이상의 물건을 들기 위한 손잡이를 만들라는 건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에도 나와 있습니다.
[정민정/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사무처장 : 큰돈이 드는 요구도 아니고요, 이 구멍 하나가 뭐라고 이렇게 1년이 걸릴 일이냐(는 거죠.)]
[앵커]
구멍을 뚫는 게 그렇게 어렵냐는 노동자들의 질문을 저희가 그대로 고용노동부에 던졌습니다. 지금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중이고 유통업체와 간담회를 열어 왔다고 합니다. 지난 1년간 한 일입니다. '그 구멍 하나가 뭐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영상그래픽 : 한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