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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성난 바다와 산…EU의 772조원이 달랠 수 있을까

입력 2020-08-31 08:25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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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41)

태평양에선 제8호 태풍 바비가 소멸되고 제9호 태풍 마이삭이 위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대서양에선 초강력 허리케인 로라가 '역대 가장 강한 바람'과 함께 미국 남부를 강타했고, 캘리포니아에선 불과 열흘 만에 산불로 서울 면적의 6배가 불탔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성난 바다와 산…EU의 772조원이 달랠 수 있을까

#열불난바다
도대체 얼마나 지구가 열불이 난 상황일까요. 먼저, 태풍과 허리케인이 만들어지는 바다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전 세계 평균 바다의 표면 온도는 평년보다 0.6℃ 높습니다. 특히 북반구의 바다는 평년보다 무려 1.0℃가 높은데요, 태풍의 '산지(産地)'라고 할 수 있는 서태평양은 평년보다 2~3℃나 더 뜨겁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성난 바다와 산…EU의 772조원이 달랠 수 있을까 (자료: 클라이밋 리애널라이저)

평년과의 비교가 와닿지 않는다면, 아래의 그림을 통해 설명드리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성난 바다와 산…EU의 772조원이 달랠 수 있을까 (자료: 기상청)

태풍의 '고향'은 지금 30℃가 넘습니다. 기온이 이 정도여도 에어컨을 찾게 될텐데, 저 넓은 영역의 바닷물이 30℃라는 거죠. 게다가 우리나라 남해안까지도 28℃ 안팎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면, 태풍이 북상하면서 힘이 빠지길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저 바다 표면만 뜨거운 것이 아닙니다. 바다가 품고 있는 에너지를 '해양 열용량'이라고 하는데요, 이마저도 엄청납니다. 지금 바다가 많은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거죠. 에너지를 나타내는 만큼, 단위는 킬로줄(kJ)을 씁니다. 통상 50kJ이면 태풍 발달에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아래의 미국 해양대기청이 만든 지도를 보면, 필리핀 동쪽 바다는 온통 시뻘겋게 물들어 있습니다. 175kJ을 넘는 에너지를 바다가 갖고 있는 것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성난 바다와 산…EU의 772조원이 달랠 수 있을까 (자료: 미 해양대기청)

이처럼 에너지원이 풍족한 상황에서 태풍을 만들어내는 '트리거' 역할, 열대요란이 만들어지게 되면 강력한 태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열불난땅
열불난 것은 바다 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육지도 덥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성난 바다와 산…EU의 772조원이 달랠 수 있을까 (자료: 클라이밋 리애널라이저)

현재 북반구 전체를 놓고 보면, 기온은 평년보다 평균 0.9℃ 높습니다. 그런데, 북쪽의 끝, 북극의 경우 평년보다 무려 2.4℃ 높습니다. 극지방 일부 지역의 경우 평년보다 무려 10℃ 안팎 높은 기온을 기록중이죠.

그런데 이 지도를 보면, 북극 못지 않게 평년보다 더운 곳이 또 있습니다. 바로 남반구의 호주입니다. 호주의 서쪽 절반은 북반구의 극지방 못지않은 갈색빛으로 물들어있죠. 이같은 상황에 호주에선 다시금 산불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성난 바다와 산…EU의 772조원이 달랠 수 있을까 (자료: 가디언)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 산불조사위원회는 지난 25일, 다가올 여름의 산불 피해를 예측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예측 내용은 시민들의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지난 2019~2020년 산불 시즌 때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심각한 산불이 다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입니다.. 조사위가 이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은 바로 멈출줄 모르는 기후변화 양상 때문입니다.

조사위는 "늘어나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심각해지는 기후변화가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불을 지피기 더 좋은 상황을 만들고 있고, 한 번 불이 났을 때 이 불이 더 잘 퍼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렉 멀린스 전 뉴사우스웨일스주 소방방재청장은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호주는 기후로 인해 산불이 발생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주 정부는 당장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한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현재 진행중인 모든 석탄 등 화석연료 관련 프로젝트를 취소하고, 탄소배출 넷 제로 계획을 더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글래디스 베르지클리언 주 총리도 "우리는 기후가 변화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며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흉악한 산불이 기후변화와 이어진 가뭄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발생한 일이라는 사실을 이젠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이어질 거라 예상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베르지클리언 총리는 또 "주 정부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고, 이 위험을 완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772조원
이런 가운데, EU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풀기로 한 자금 5500억유로(우리 돈 약 772조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선, 이 돈으로 어느정도 성난 바다와 땅을 진정시킬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개별 국가 차원에선, 이 돈으로 과연 자국의 산업이 '포스트 코로나' 상황에서 잘 일어설 수 있을지가 관심이죠.

우리나라 역시 이 772조원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지난 27일, 한국무역협회는 해외시장 보고서 '포스트 코로나, EU의 그린경제 가속화와 시사점'을 통해 "한국판 뉴딜의 지원을 받는 친환경 우리 기업이 EU 시장 진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EU가 코로나19로 발발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린산업을 제시한 만큼 "우리 정부와 기업은 EU의 산업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효율적인 정책 수립과 시행 및 비즈니스 전략 마련에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돈은 EU투자은행(EIB)을 통해 그린산업 지원과 기업의 저탄소 전환 지원에 투입합니다. 무역협회는 이 보고서에서 이미 이 혜택을 받은 기업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프랑스의 항공사 에어프랑스는 2024년까지 탄소배출량을 50% 감축하는 등 '그린 항공사'로의 전환을 조건으로 70억 유로를 지원받았습니다. 스웨덴의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는 EIB로부터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 건설을 위한 대출(3억 5천만 유로)을 받았습니다. 벨기에의 유미코어도 폴란드에 배터리 양극재 생산시설을 짓는 데에 전체 예산의 50%를 EIB로부터 대출받게 됐습니다.

이러한 지원이 EU 역내 기업들에게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고서에선 우리나라의 LG화학 사례도 소개됐습니다. LG화학이 EU 역내 최초로 배터리의 전극, 셀, 모듈, 팩까지 모두 생산하는 공장을 폴란드에서 증설하려 하는데, EIB와 4억 8천만유로의 대출 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EU 차원뿐 아니라 폴란드 정부 차원의 지원도 이뤄질 전망입니다. 폴란드 정부는 EU 집행위에 공장 증설 지원을 위한 9500만유로 보조금 지원 계획을 제출한 상태입니다.

EU가 투입할 772조원 만으로는 위에서 설명한 바다와 땅의 '열불'을 식히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772조원이라는 마중물로 찾아올 변화, 그로인해 EU 역외에서도 이어질 변화가 더해진다면… 열불이 조금은 사그라들어 '중불' 혹은 '약불' 정도로 완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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