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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북측의 '유감' 표명…사과일까 아닐까

입력 2015-08-2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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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이 타결된 뒤 이런 공동보도문이 나왔는데요.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였다.' 이 문장을 두고 오늘(25일) 하루 동안 포털사이트에선 '유감'이란 단어가 검색어 1위였다고 합니다. 유감 표명이 과연 사과가 맞느냐 하는 논란이었던 셈인데, 오늘 팩트체크에서 이 문제 짚어보겠습니다.

김필규 기자, 팩트체크에도 이와 관련된 문의가 많이 들어왔다고요?

[기자]

예, SNS 통해서 또 저희 시청자상담실 통해 많이 접수됐는데, 이를 바탕으로 의문점을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시청자 박경현 씨. "유감은 피해 당사자가 섭섭하다는 뜻인데 왜 여러 방송에서 거꾸로 쓰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유감은 사전적으로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실제 용례를 보면 북한의 표준시 변경 당시 "사전 협의도 없이 발표한 것은 유감이다"라고 해서 항의의 의미로 쓰였고, 지난 4월 성완종 파문 때 청와대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유감이다"라며 이때는 사과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정치 외교상으로 유감은 이 두 의미로 다 쓰이고 있는 건데, 그래서 꼭 방송에서 유감이란 말을 거꾸로 쓴 것은 아닙니다.

[앵커]

그러다 보니 유감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게 어느 의미로 쓴 건가 민감해지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더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어 왔습니다.

[기자]

시청자 이휘무 씨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유감스럽다는 단어 말고 더 강한 단어 없느냐, 답답하다'는 의견이었는데, 사실 사과의 표현을 둘러싼 논란은 외국에서도 있습니다.

영어로 사과한다는 표현은 Apologize와 Sorry, Regret 등이 있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먼저 전문가에게 들어봤습니다.

[곽중철 교수/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 Apologize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어떻게 보면 이게 외교적인 용어가 아니잖아요? 무조건 사과한다는 거니까. 그건 완전히 100% 잘못했다는 거고. 독일이 옛날 히틀러가 유태인 학살한 것, Regret이란 건 유감 표명인데, 사실은 그게 상당히 (수위가) 낮은 거죠. 사과치고는 가장 낮은 게 유감 표명이고.]

영어로 이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번 타결과 관련해 조선중앙통신이 영문으로 보낸 기사도 찾아봤습니다. 그랬더니 해당 문장에서 유감에 대해 'regret'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북측이 보도문 통해 표현하고자 한 수위 역시 그 정도라고 짐작할 수 있는 거죠.

[앵커]

사과냐 유감이냐 혹은 영어로 Apologize냐 Sorry냐 Regret이냐…이렇게 여러 가지 다른 용어를 쓴다는 것은 그만큼 Apologize, 사과하기 싫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무튼 북측에서 저렇게 내놨다고 하니까, 당초 기대했던 확실한 사과와는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그것 때문에 논란이 좀 벌어지기도 했죠.

[기자]

네, 정치권에서 나온 논란뿐만 아니라 시청자 이규산 씨도 '일본이 유감 표명 하면 사과가 아니라고 하면서 북한의 유감은 왜 사과라고 받아들이느냐?' 이런 지적을 했는데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주체를 명시한 유감 표명과 사과를 받아내고 북이 시인한 것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이번 결과는 대통령이 밝혔던 내용과 정면을 배치되는 것이다. 주체가 불분명한 유감 표명이다"라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남북관계에선 유감이란 단어에 대해 사전적인 해석을 하면 안 되고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앵커]

사과와 유감은 단어가 다르듯이 물론 뜻도 차이가 있다는 건 분명한데, 사실 조금 아까 문정인 교수도 나와서 얘기했습니다마는. 결국은 절차적 원칙, 거기서 양보하느냐 아니냐, 그러니까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 그것이 지금 김필규 기자가 얘기한 '정치적 해석으로 남겨둬야 한다'라는 부분으로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어땠습니까? 예전에도 북의 도발 이후 유감 표명을 한 적이 있었잖아요?

[기자]

맞습니다. 유감 표명을 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지만, 한 경우를 바탕으로 살펴보면요.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이 1996년이었죠. 우리 정부는 북측에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한 뒤 재발방지 약속도 해라 요구했지만, 북에선 그저 '유감 표명'만, 그것도 우리가 아닌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했습니다. 우리 정부에선 이를 사과로 간주하고 넘어갔죠. 2002년 제2연평해전 때도 북한이 재발방지 약속 없이 유감 표명하는 서신만 보냈지만 비슷하게 상황이 전개됐습니다.

그 당시 그 서신을 직접 받았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결국 우리 정부가 북측의 시인과 사과, 그리고 재발방지를 요구하면 이런 내용 없이 단순히 북한은 유감 표명만 하고, 우리는 이를 사과로 간주해 넘어가는 양상이 반복된 건데 이번 고위급접촉 역시 비슷한 결과로 마무리됐다"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평가를 했는데 들어보시죠.

[정세현/전 통일부 장관 : 남북관계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돼요. 역대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이런 유사한 사건이 있을 때 풀고 나갈 때 결국 그 선에서 끝났어요. 남북 간에는 완전 외교관계가 아니고 서로 기 싸움을 하는 관계가 아닙니까. 거기서 어떻게 완전 굴복을 기대하겠어요?]

[앵커]

정세현 전 장관의 얘기는 따라서 완전한 사과로 보긴 어렵지만, 정상적인 외교관계가 아닌 남북관계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얘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중국과 일본, 북한, 우리나라가 모두 쓰고 있는 이 유감이라는 단어.

그동안 많은 혼란을 일으켰지만, 서로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에 없어지긴 힘들 거라는 게 전문가들 이야기였는데요. 따라서 앞으로도 이런 논란은 계속 있을 거라는 말씀드리게 돼 저도 참 유감입니다.

[앵커]

팩트체크 김필규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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