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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때부터 죽이고 싶었다"…'인제 묻지마 살인범' 2심도 무기징역

입력 2021-05-12 15:48 수정 2021-05-1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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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11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의 한 등산로 입구에 차량 한 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차 안에는 56살 여성 한 모 씨가 홀로 있었습니다. 일행 2명과 버섯을 따러 왔지만, 전날 늦게까지 일한 탓에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일행들만 산에 올려보낸 뒤, 차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7월 11일 살인 사건이 발생한 강원도 인제군 북면의 범행 현장〈사진=JTBC 자료〉지난해 7월 11일 살인 사건이 발생한 강원도 인제군 북면의 범행 현장〈사진=JTBC 자료〉

한 남성이 차량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한 씨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목 부위를 집요하게 노렸습니다. 한 씨가 이유를 묻고, 하지 말라고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흉기에 49차례나 찔린 한 씨는 그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범인의 정체는 근처 마을에 살던 22살 이 모 씨였습니다. 잔혹한 수법으로 봤을 때 원한에 의한 살인 사건이 아닌지 의심을 샀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씨와 숨진 한 씨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이른바 '묻지 마' 살인이었던 겁니다.

◆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잔혹성…살인 영상 보며 욕구 해소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씨는 지난해 11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도 받았습니다. 이 씨는 '심신장애'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습니다. 당초 '사형'을 구형했던 검찰 역시 '양형부당'으로 항소했습니다.

오늘(12일) 춘천지방법원 103호 법정에서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렸습니다. 녹색 수의를 입고 마스크를 쓴 채 법정에 들어선 이 씨는 1심 때보다 짧은 머리에, 다소 살이 찐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재판부에 따르면, 피고인 이 씨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사람을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살인이 쉬워 보였고, 심지어 이를 직업으로 가지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졌고,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대학교 1학년 무렵에는 주방에 있던 과도를 들고 나가 무작정 행인을 따라간 적도 있었습니다. 범행 대상을 물색했던 겁니다. 실제 범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욕구는 갈수록 커졌습니다. 인터넷에서 실제 살인 사건 영상을 찾아보며 그런 욕구를 해소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 씨의 살인 계획은 점차 구체화 됐습니다. 살인 방법과 시기, 도구 등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의 일기장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무례하다', '인간은 절대 교화될 수 없다', '언제나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고 죽여버릴 권리가 있다' 같은 내용이 적혔습니다. '기본적으로 100~200명은 죽여야 한다'는 글을 지속해서 썼습니다. 스스로 고안한 살인 장치나 사람을 죽이는 장면 등을 상세하게 그려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 살인 은폐 위해 시체유기 방법도 습득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적개심, 극단적으로 인명을 경시하는 태도, 그리고 확고한 살해 욕구는 결국 이 씨를 서서히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이 씨는 범행을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시체유기나 알리바이 조작 방법 등을 습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신체 단련을 위해 파쿠르와 합기도를 배웠습니다. 살인에 필요한 총기를 구하려고 수렵 교육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의 주변인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 씨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엄격히 통제해왔기 때문입니다. 살인 같은 강력범죄는 물론이고, 어떤 형사처분을 받은 전력도 없습니다.

그러던 이 씨는 일면식도 없는 50대 여성을 상대로 그동안 감춰왔던 발톱을 드러냈습니다. 살인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범행 후 심경에 대해 '흥분이나 재미가 안 느껴진다', '내가 왜 이딴 거를 위해 지금까지 시간을 낭비했는지…' 등과 같은 표현을 남긴 겁니다. 충격이나 고통, 죄책감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한 살해 계획 세우는 등 믿기 힘들 정도로 냉혹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7월 11일 살인 사건이 발생한 강원도 인제군 북면의 범행 현장〈사진=JTBC 자료〉지난해 7월 11일 살인 사건이 발생한 강원도 인제군 북면의 범행 현장〈사진=JTBC 자료〉

◆ 법원 "조기 발각 안됐더라면영원히 격리 필요"

재판부는 피고인이 단지 오랜 기간 스스로 만들어 온 쾌락을 느끼기 위해 죄 없는 피해자를 살해해 죄질이 나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씨는 재판 과정 내내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항소심 과정에 들어와서야 뒤늦게 사과했습니다. 재판부는 진정한 사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씨는 피해자의 아들과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합의를 양형에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의 동생은 합의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언니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지금도 엄벌을 탄원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 씨의 범행이 조기에 발각돼 1명의 피해자를 살해하는 데 그쳤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교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재범을 막으려면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겁니다.
춘천지방법원〈사진=JTBC 자료〉춘천지방법원〈사진=JTBC 자료〉

재판부는 원심의 형이 무겁거나 가볍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과 검사,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따라서 1심에서 내려진 무기징역형이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이 씨 측에서 주장한 심신장애 역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재판 과정에서 치료감호를 요청했고, 이때 정신감정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정신과적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정신적 장애로 범행에 이르게 됐다는 이 씨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선고가 이뤄지는 10여 분 동안 아무 움직임 없이 선고 내용을 듣기만 했습니다. 그 어떤 감정 변화도 느낄 수 없이 담담한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그토록 참혹한 살인 범행을 저지른 직후에도 저렇게 태연한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지켜보는 사람의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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