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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입학생 없는 시골학교…할머니들의 '설레는 입학식'

입력 2019-03-0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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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4일)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입학생이 없어서 입학식을 할 수 없는 초등학교가 지난해에만 전국에 100여 곳이었습니다. 저출산으로 학생들이 매년 줄고 있는 것이지요. 어린 학생을 받지 못하자, 어른들이 입학한 학교가 있습니다. 

밀착카메라 정원석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1923년에 문을 연 전남 강진의 대구초등학교입니다.

100년 가까이 된 학교로 배출한 졸업생이 5000명이 넘는데요.

올해에는 입학생이 1명도 없어 1학년 학급 자체가 없어질 뻔했다고 합니다.

학교가 나서서 찾은 올해 신입생들은, 다름 아닌 인근 마을 할머니 8명입니다.

작은 어촌 백사마을의 박종심 할머니도 그 중 한 명입니다.

[박종심/79세 : 노인당에 밥하고 돈을 벌면 좋겠냐, 학교 가면 좋겠냐 (손자들한테 물었더니) 할머니가 선택해보세요 해서 학교에 가겠다 하니 역시 우리 할머니 머리 좋다!]

학교에서부터 6.5km나 떨어진 이 작은 산촌 마을에서도 4명의 만학도가 편입학을 하게 됐습니다.

나이대는 5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데요.

원래는 이 마을에도 학교가 2군데나 있었지만, 학생 수가 줄면서 모두 사라졌고 지금은 그 자리에 저수지가 생겨나 있습니다.

올해 3학년으로 편입하는 김순애 씨.

[김순애/56세 : 그냥 돈벌이했죠. (그 어린 나이에요. 무슨 일을 하셨어요?) 남의 집 살림도 보고…]

집안 사정으로 2년 만에 그만둔 학교를 50여 년 만에 다시 다니게 된 것입니다.

[김순애/56세 : 내가 다닌다고 했어요. 우리 신랑도 반대하는데 저는 3학년부터 가잖아요. 한 4년을 다닐 텐데 괜찮겠더라고요.]

학교를 못 다닌 것이 서러웠던 할머니들.

학교 다니는 친구의 교과서를 몰래 찢은 적도 있습니다.

[황복님/76세 : 내가 도둑질을 해놔서 나중에 말했어요. 행심이한테. 행심아, 책 도둑질은 해도 괜찮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그러면 빌려주라고 하지 뭐 하러 뜯었니.]

여든이 넘은 나이에 다니게 된 학교.

60년 된 친구는 걱정부터 앞섭니다.

[박단순·김갑심/83세 : 나이가 많아서 어떻게 다니려고 하냐고 맨날 그래요. (그래 걱정해. 나이 많아 아프고 그러면 어떻게 하나 해서.)]

칠순이 훌쩍 넘은 이용금 할머니는 학교에서 배운 글씨로 아들에게 손편지를 써보는 것이 꿈입니다.

[이용금/73세 : 우리 아들한테 편지 한 번 써보고 싶어. 내가 예전에 이렇게 살았다. 아들들아 너희는 잘살아달라고.]

입학식이 다가오자 설레는 항동마을 할머니들, 1시간 이상 남았지만 벌써 학교로 출발합니다.

[(입학식 앞두고) 자꾸만 설레서 잠을 자다 말다 그랬어.]

백사마을 할머니들도 화장을 한 후, 아이들처럼 친구 이름도 불러봅니다.

[승근아(자녀 이름)! 승근아! (옷 입고 나갈게!)]

1년 동안 공부할 교실에서 이름표를 달고, 체육복과 실내화도 받습니다.

유치원부터 둘 뿐이었던 3학년 효정이와 수연이는 새 친구가 낯설기만 합니다.

[최수연/3학년 : (어떻게 부를지) 생각해봤는데, 그래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입학식에는 다 같이 손을 잡고 참석합니다.

학생 수가 14명에 불과했던 이 학교는 이번에 어른들의 입학으로 전교생 수가 22명이 됐습니다.

[이주영/강진 대구초교 교장 :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대에 태어나 지금까지 훌륭하게 살아오신 장한 어머니들께서 이제 학생이 되셨으니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하겠습니다.]

일부는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이랑 내일 해먹을 것 잡고, 학교만 가면 되지.]

현재 만학도를 위한 특별 교육 과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도 졸업을 위해서는 똑같이 6년 동안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학생이 필요한 학교, 그리고 교육을 원하는 만학도, 이 사이에도 접점이 필요해 보입니다.

(인턴기자 : 한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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