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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부당하므로 불이행"

입력 2019-04-03 21:56 수정 2019-04-0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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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차…내가 왜 안 팔았지? 열 명은 더 구했을 거야 열 명은 더 살릴 수 있었어
- 영화|쉰들러 리스트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안타까움을 놓지 못했습니다.

스필버그의 영화로 잘 알려진 오스카 쉰들러.

그는 원래 부패한 기업가였으나 유대인의 참혹한 실상을 마주한 뒤에 자신의 권력과 재산을 이용해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는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구해내고자 합니다.

"박해받는 유대인 1200명의 잊을 수 없는 생명의 은인"

이렇게 비문이 적힌 쉰들러의 묘에는 그의 의로운 행동을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쉰들러 같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4·3의 광풍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제주 일선 경찰서에는 '예비검속'이라는 명분으로 적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자를 총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서류에 의해서, 주민학살을 공식화하는 지시였지만…

당시에 성산포 경찰서장이었던 문형순은 상부의 명령서를 되돌려 보내면서 사유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부당하므로 불이행"
- 문형순, 당시 성산포경찰서장

굵은 글씨로 휘갈긴 이 글자 덕분에 200여 명의 제주도민은 참극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확인된 제주의 사망자만 1만 4000여 명.

비공식으로는 3만 명을 헤아리는…

그래서 제주에선 한날한시에 제사를 지내는 집들이 넘쳐나게 된 비극…

문형순 서장 역시 과거의 쉰들러처럼 살리지 못한 이들을 떠올리면서 애통해했을까…

그날 이후 무려 71년의 세월. 

군과 경찰은 오늘에야 처음으로 제주를 향해서 머리를 숙였습니다.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
- 국방부

"무고하게 희생된 모든 분의 영전에 머리 숙여 애도"
- 민갑룡 경찰청장

툭툭…소리라도 들리는 듯.

찬란한 봄은 개화 중이지만 아직 바람 많은 그곳에는 걷지 않은 걸음이 남아있었으니…

우리는 너무나도 늦게, 첫 발을 떼게 된 셈입니다.

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다고 말했던 사람들…

'부당하므로 불이행'했던 사람들과 함께 말입니다.
 

죽은 이는 부디 평화로이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 제주 애월읍 하귀리 영모원에 새겨진 추모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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