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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별세…"똘레랑스는 계속 유효할 것"

입력 2024-04-18 16:11 수정 2024-04-1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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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전북대학교에서 강연하는 모습

지난 2006년 전북대학교에서 강연하는 모습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기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다"

작가 홍세화는 저서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 서문에서 '똘레랑스'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말 '관용'으로 해석할 똘레랑스라는 개념은 홍 작가 글로 국내에 본격 알려졌다. 지난 1995년, 지역 감정과 편견이 엄연했던 시절이었다.

11년이 지난 2006년, 홍 작가는 개정판을 내놨다. 그 사이 민주화가 진행됐고 정권 교체도 이뤄졌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홍 작가는 "달라졌으면서 달라진 게 없는 세상이라서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지 말라는 '톨레랑스'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서문에 썼다.

언론인, 정당인, 운동가를 오간 홍 작가는 프랑스 망명 시절 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내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다름을 인정한다'는 똘레랑스라는 단어는 일종의 유행어가 됐다. 당연하고 뻔한 듯한 이 개념은 2024년이 된 지금도 어쩌면 이상 속에서나 실현 가능할지 모른다. 지역 감정이 옅어진 우리 사회는 이제 세대, 남녀, 이념으로 더 극단적인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 홍 작가의 글과 말이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다.

이런 홍 작가, 오늘(1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세.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공부를 잘했다. 경기고를 나왔고 1966년 서울대 금속공학과에 들어갔다. 1969년 서울대 외교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됐다가 1977년 졸업했다. 고등학교 졸업 11년 만에야 사회인이 되었다.

작은 무역회사에 다니던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에 연루됐다. 당시 파리 지사에서 일했고 망명 신청을 했다. 프랑스에서 20년 동안 지냈다.

택시 운전을 해서 생활을 이어갔고 이 때 경험한 '똘레랑스'라는 개념을 글로 써 소개했다.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가 됐다.

지난 1999년 완전 귀국한 뒤 한겨레 신문사 편집위원, 진보신당 공동대표를 지냈다. 2015년엔 벌금 낼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 은행을 건립해 은행장으로 일해 왔다.

작년 2월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 대신 마지막까지 일하는 걸 택했다. 유족으로 부인 박만선 씨와 자녀 수현·용빈 씨가 있다.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 개정판 서문 마지막 문장은 “톨레랑스는 앞으로도 긴 세월 동안 유효할 것"이었다. 아마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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