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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기본법 23조 통과...사법권 중국 종속, 23년 앞당겼다

입력 2024-03-23 07:00 수정 2024-03-2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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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의원들이 2024년 3월 19일 기본법 제23조에 따라 국내 보안법안 표결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사진 홍콩 HKFP〉

홍콩 의원들이 2024년 3월 19일 기본법 제23조에 따라 국내 보안법안 표결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사진 홍콩 HKFP〉

2019년 6월 송환법 반대 시위로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운동은 결국 국가보안법 제정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두번째이자 최종 버전의 홍콩 보안법이 오늘부터 시행됩니다. 홍콩 의회에 법안이 상정된 지 16일 만입니다. 역사는 오늘을 기점으로 이전의 홍콩과 이후의 홍콩을 구분할 겁니다.


반역ㆍ내란ㆍ사보타주, 최고 종신형
법은 5가지 범죄를 처벌 대상으로명시했습니다. 반역, 내란, 사보타주(공공 인프라 파괴), 외부 결탁(금지된 단체 참여), 국가 기밀 절도 및 스파이 행위입니다. 반역과 내란죄는 최고 종신형에 처해지고 처해지고 테러하는 사보타주는 최고 20년형이지만 외부 세력과 공모한 경우 역시 종신형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5개의 범죄는 다시 39가지 유형으로 세분화됩니다. 국가 기밀의 불법 취득 5~7년, 불법 공개 5~10년, 전자시스템으로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 최고 20년 등입니다.

처벌은 강화됐습니다. 선동죄는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종전 2년에서 최대 7년형까지 늘었습니다. 경찰은 기소 전 최대 16일까지 구금할 수 있고 변호사 접견권을 제한한다는 조항도 처음 도입됐습니다. 온라인에 안보를 위협하는 글을 게시하는 것도 보안법 위반 대상입니다.

모호한 정의, 광범위한 위법 행위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19일 홍콩 의회에서 보안법 통과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 로이터통신〉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19일 홍콩 의회에서 보안법 통과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 로이터통신〉

홍콩에 있는 외국계 기업, 은행, 연구기관, 언론사는 물론 학계, 외교 공관들은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법의 정의가 모호하다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선 국가 기밀이 어디까지 해당되는지 불분명합니다. 군사, 안보, 외교 정보를 포함해 홍콩 정부와 관련된 제반 정보 어디까지가 안보 영역에 해당되느냐는 겁니다. 이는 홍콩인들을 포함한 외국 기업,기관들의 교류 및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홍콩의 한 공무원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외국 기업과 업무 처리 방법에 대해 논의한다고 가정해 보죠. 이것이 국가 기밀 누설에 해당하나요? 누군가 엿듣고 정보를 퍼뜨리면 체포될 수 있을까요? 언제 고발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문제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싱가포르로 이주한 홍콩 모 대학 연구원은 “이전 소속된 기관에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할 때 자신의 이름이 들어갈까 걱정된다”고 털어놨습니다. 외국에 있더라도 보안법 적용을 받을 수 있어 언제, 어떤 형태로든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외세 결탁'의 의미도 마찬가집니다. 홍콩 민주화 단체에 국제기구 혹은 외국 정치 협의체가 재정 지원할 경우 위법의 해당되는지 현재로썬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이로 인해 외국 기업들은 하나둘 홍콩에서 철수하고 있고 2021년 이후 홍콩을 떠난 시민 수는 50만 명에 이릅니다. 광범위한 처벌 범위는 누구든 걸려들 수 있다는 '공포의 카르텔'을 형성했고 이는 이전과 다른 자유의 축소로 이어집니다.

2020년 첫 홍콩 보안법...한달 만에 민주세력 '싹쓸이'
2020년 7월 1일 홍콩 시민들이 보안법 시행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2020년 7월 1일 홍콩 시민들이 보안법 시행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보안법은 2020년 6월 30일 중국 전인대(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처음 만들었습니다. 홍콩 의회를 거치지 않고 중앙에서 법안을 통과시켜 홍콩 기본법 부칙 조항에 삽입한 겁니다.

당시에는 국가 전복, 분리 독립, 외국 세력과의 공모, 테러 행위 4가지 범죄에 대한 처벌이 핵심이었습니다. 이번에 발효된 법은 1차에서 포함되지 않은 범죄 행위를 추가하고 형량을 강화했습니다.

2020년 7월 첫 보안법 발효 이후 한 달간의 홍콩 상황을 잠시 되짚어 보겠습니다.

7월 1일 수천 명의 시민이 거리 시위에 나섰는데 경찰은 처음으로 '홍콩 독립'을 암시하는 물품을 소지한 시민들을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했습니다. 이튿날엔 정치적 박해를 피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홍콩 해방'이라는 시위 구호가 분리주의를 암시한다며 금지됐습니다.

7일 홍콩 교육부 장관은 시위에 사용되던 노래 '홍콩에 영광을'을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것이 법 위반이라고 공표했고 10일엔 홍콩 여론 연구소(HKPORI)가 데이터 유출 의혹으로 경찰의 압수 수색을 받았습니다. 12일에는 소셜미디어에 “홍콩 독립을 위해 합류하자”고 글을 올린 홍콩 대학생 4명이 선동 혐의로 긴급 체포됐습니다.

7월 14일 뉴욕타임스는 홍콩에 최소한의 특파원만 남겨두고 철수하기로 결정했고 31일엔 영국에 망명 중이던 네이선 로 등 민주화 운동가 6명에 대한 체포 명령이 떨어집니다. 보안법 시행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홍콩 시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달이었습니다.

그해 9월 홍콩 정부는 입법회 선거를 1년 연기했습니다. 그리고는 중국과 홍콩 정부 정책 지지에 서명한 사람만 출마할 수 있도록 일명 '애국자법'으로 선거법을 개정합니다. 그 결과 이듬해 선거에서 야당은 한 명의 의원도 배출하지 못했고 의석은 100% '친중파' 의원들로 채워졌습니다. 2차 홍콩 보안법이 법안 3회 독을 단 12일 만에 끝내고, 89명 의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존리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19일 의회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홍콩이 26년 8개월 19일을 기다려온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마침내 기본법 제23조를 입법화하는 헌법적 의무를 완수했습니다. 우리는 더는 파괴적인 세력이 홍콩을 불태우고, 공공시설을 파괴하고, 홍콩의 발전을 파괴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국식 보안법 통과...일국양제 어디로

2019년 8월 14일 홍콩 공항에서 경찰이 송환법 반대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2019년 8월 14일 홍콩 공항에서 경찰이 송환법 반대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홍콩의 정식 명칭은 홍콩특별행정구입니다.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은 2047년까지 50년간 홍콩의 자유와 자치를 보장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 원칙이 유명한 '일국양제'입니다. 중국과 홍콩은 한 나라지만 두 개의 제도로 운영한다는 겁니다.

일국양제의 상징 중 하나가 방어와 안보의 구분입니다. 외침을 막는 건 본토가 맡되, 정부와 시민의 안전보장은 홍콩 정부가 한다는 것이죠. 홍콩 기본법 23조는 “홍콩 특별행정구는 자체적으로 법률을 제정해 정부에 대한 반역, 탈퇴, 선동, 전복 또는 국가 기밀 절취 행위를 금지하고...(후략)”라고 돼 있습니다.

홍콩 자체적인 보안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시민들은 중국 정부의 강압과 개입을 우려해 반대해 왔습니다. 2003년 첫 제정 시도는 50만 가두시위로 좌초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이후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섰고 반발 수위가 꺾인 틈을 타 중앙에서 법을 만들어 2020년 시행한 겁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홍콩 정부에 후속 법안을 만들도록 지시했고, 결국 중국의 통치 방식을 연상시키는 홍콩 보안법 확장판이 제정된 겁니다. 행정장관은 기본법이 명시한 대로 자체 법안이 탄생했다고 했지만 제대로 된 반대 논의조차 없었습니다. 중국식 안보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2047년까지 보장됐던 홍콩 자치가 사실상 23년 단축된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서방 정부 ”중국, 국제 약속 어긴 것“
국제적으로는 비판이 들끓습니다.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법안의 모호한 조항이 국제 인권법으로 보호받는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 정보 공유 행동까지 범죄 행위로 만들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홍콩 보안법이 개방적이었던 홍콩 사회의 폐쇄를 가속하고 있으며 잠재적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며 추가 조치를 예고했죠. 미국은 2020년 1차 보안법 발효 이후 유일하게 홍콩과 중국 관리 24명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바 있습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은 “중국이 국제적 약속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며 “홍콩 시민의 자유와 권리는 치명상을 입었고 야당의 목소리를 침묵시켰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경제계에선 홍콩 비즈니스 환경의 불확실성이 더 높아졌다고 입을 모으죠. 앤드류 콜리어 오리엔트 캐피털 이사는 “홍콩 정부가 새 법의 적용 범위를 제한하는 가드레일을 신속하게 설치하지 않는다면 '제23조'는 해외 기업의 철수를 가속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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