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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지하서 옥탑까지…대학가 원룸촌 불법 '방 쪼개기'

입력 2020-10-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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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문을 열면 복도마다 또 다른 문이 나오고 방안은 좁아서 사람 한 명이 눕기에도 빠듯합니다. 등록된 세대 수보다 훨씬 많아진 방들, 서울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 쪼개기'의 실상입니다.

지하부터 옥탑까지 천태만상으로 개조된 '불법 원룸'의 실태를 밀착카메라 홍지용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서울의 한 대학교 앞입니다.

학생 수는 2만 명 정도지만, 기숙사가 부족해 20% 정도만 입주했습니다.

학생들이 주로 사는 근처 주택가를 찾아가 봤습니다.

한 층에 두 세대가 살고 있는 집입니다.

그런데 현관문이 다 열려있고, 공용 신발장이 보입니다.

복도로 들어오면 방문이 계속 보입니다.

이쪽 복도에 3개, 반대편에 4개 있습니다.

총 7개인데요.

일명 '방 쪼개기'입니다.

두 세대를 일곱으로 쪼갰습니다.

건축물대장에는 10세대가 살게 돼 있지만, 실제 방 수는 30개입니다.

문을 열면, 비좁은 방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취재진까지 4명이 들어서자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A씨 : 이쪽에 창문을 머리맡에 하고 눕거든요. (끝과 끝이 닿을 거 같은 거예요? 여기에 머리를 대고 누우면…) 네.]

지난해 이곳에 왔습니다.

벽면 한쪽에 은박지가 눈에 띕니다.

[A씨 : 제가 들어오면서 붙인 건데, 여기 기름 튄다고 기름 벽지에 직접 튀지 말라고…]

화장실에는 세면대가 없습니다.

[A씨 : 월세가 다른 거 다 합쳐서 37만원. 돈, 현금 문제가 제일 컸죠.]

사는 방이 얼마나 많이 쪼개졌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합니다.

이 집은 과거에도 집을 고쳐 세대수를 늘렸다가 적발됐습니다.

집주인은 자기가 집을 지었지만, 위반건축물로 걸린 적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집주인 : 안 쪼갰어. 다세대로 그렇게 지은 건데. 그건 말도 안 되죠.]

곳곳에서 수상한 집들이 보입니다.

옥탑방을 몰래 만들었다가 걸렸는데, 이후 5년째 그대로 있습니다.

6세대가 산다고 등록된 4층짜리 건물에는 지하 1층에만 4개의 방이 있습니다.

두 집에 한 대꼴로 전기 계량기를 같이 씁니다.

다른 대학가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고시원 용도의 다중생활 시설로 허가받았지만, 원룸이 놓여 있습니다.

반지하를 전전하다가 이곳에 들어온 학생은 방음 문제를 털어놓습니다.

[B씨 : 둘이 대화하는 소리 그리고 TV 소리도 들리고, 그리고 음악 소리도 창문을 닫아도 들리는 거예요.]

처음 방을 구할 때는 이상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B씨 : 제가 벽만 계속 확인을 하다 보니까…]

천장을 두드리자 텅텅 비어있는 듯 소리가 울립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8만 원짜리 방.

대학원생으로 한 달에 140만 원을 벌어서 갈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합니다.

[B씨 : 조건이 좋아서 보통 빨리 나간다. 원래는 잘 안 나가는 집인데 우연히 비었다. (중개인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들었어요.]

집집마다 주차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주택과 달리 다중생활시설은 주차장을 적게 둘 수 있습니다.

이후 원룸으로 뜯어고칩니다.

방마다 취사 시설을 놓으면 안 되지만, 인덕션 레인지도 보입니다.

청년 주거 문제가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꼽히는 서울 대학동 고시촌입니다.

방문을 열면 거리가 곧바로 보일 듯합니다.

2개 층을 점포로, 나머지를 주택으로 신고한 건물, 점포로 신고된 층에 다섯 집이 살고 있습니다.

집주인은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불법으로 그런 건 없어. (여기는 그럴 위험 없는 거죠.) 네. (진짜로 증개축 없는 거죠?) 없어요. 우리가 직접 써서.]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인지 표시되지 않은 곳도 많았습니다.

한 시민단체가 이 지역 1개 도로를 따라가며 근처 건물 156채를 전수조사했더니 절반 넘게 법을 어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자체는 집주인에게 원상 복구를 명령하고, 이행 강제금을 거둡니다.

그러나 보통 1년에 서너 번 조사가 이뤄지고, 걸리지만 않으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불법 개조는 끊이지 않습니다.

[김지선/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 (서울에서 불법 면적 증가 적발 시) 1건당 평균 120만원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고 하더라고요. 지자체 집중단속 기간에 수선한 다음에 위반건축물 딱지를 떼고, 다시 방을 쪼개는 거죠.]

서울시에서 파악한 불법 건축물은 775건.

올해 새로 적발된 건수만 69건입니다.

원상복구 비율은 해마다 줄고 있습니다.

올해는 2.4%입니다.

서울시는 방 쪼개기가 주로 발생하는 소형건축물을 중심으로 단속을 늘리고, 이행강제금을 무겁게 적용하기 위해 관련 법령을 개정할 수 있는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학 진학과 취업, 그리고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향한 청년들, 지하에서 옥탑까지 사람 하나 누울 정도로 쪼갠 작은 방에서 오늘도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과 지자체의 단속 사각지대가 늘어날수록 청년들의 귀한 시간이 지체되진 않을까요.

(화면제공 :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
(VJ : 최진·서진형 / 영상디자인 : 유정배 / 인턴기자 : 주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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