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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에 뺏긴 첫 5·18 영화 '황무지'…31년 만에 개봉

입력 2020-10-19 21:34 수정 2020-10-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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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무지' (1988년) : 더 이상 쏠 순 없었습니다. 도망쳤어요. 살기 위해. 죽이지 않기 위해.]

[앵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처음 다룬 이 장편 영화가 관객들을 만나기까지 31년이 걸렸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담겼길래 이토록,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까요.

강나현 기자입니다.

[기자]

[영화 '황무지'(1988년) : 깨어나자 병사여. 깨어나자 민주주의여.]

군복을 입은 채 무덤 앞에 선 청년이 제 몸에 불을 붙여 뒤늦은 용서를 구합니다.

피해자의 아픔조차 숨죽여 살펴야 했던 시대에 감히 진압군의 고통을 들춘 이 영화는 개봉을 눈앞에 뒀던 1989년 5월,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채 봉인됐습니다.

[김태영/감독 : (보안사가) 이게 일반 시민들에게 보여지면 큰일 나겠다. 정말 큰일 나겠다.]

필름을 망가뜨리려 소극장에 들이닥친 보안사는 끈질겼습니다.

[김태영/감독 : 아세톤이 필름에 닿으면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려요. (그걸 필름에) 뿌렸는데 저희가 그것을 막았고 막바로 다시 쳐들어와서 (가져갔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사해 뒀던 방송용 비디오 테이프의 존재가 올해 알려지면서 31년 만에 전국 극장에 걸릴 수 있게 있게 됐습니다.

[영화 '칸트씨의 발표회' (1987년) : 살이 두부라고 하면, 그렇게 보았다면, 그게 맞는 거죠. 그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이니까.]

1987년 먼저 내놓아, 단편영화 최초로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된 이 영화는 시민군을 위해 방송하던 누나를 잃고 미쳐버린 젊은이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두 영화를 묶어, 하나의 작품으로 개봉하게 됐습니다.

5·18이 벌어진 지 40년이 지났지만 가해자를 제대로 벌하지 못한 탓에 비극은 아직 진행 중이라는 김 감독은 지금이야말로 진압군들의 양심 고백이 절실한 때라고 강조합니다.

[김태영/감독 : '내가 그 잘못된 명령에 의해서 시민들을 죽였다' 그 고백이 있고 나서 다시 화해나 이런 부분이 이뤄질 단초가 마련된다고 봅니다.]

(영상그래픽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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