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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5년째 한국 찾는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

입력 2020-10-16 08:57 수정 2020-10-1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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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5년째 한국 찾는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

◇두 명의 탄 아주머니 이야기

 
[취재설명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5년째 한국 찾는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 지난해 청와대 청원에 나선 두 명의 응우옌 티탄. 왼쪽이 하미마을 응우옌티탄, 오른쪽이 퐁니마을 응우옌티탄.

▶퐁니·퐁넛 마을의 응우옌티탄(60세) 베트남 전쟁 당시 퐁니·퐁넛 학살의 생존자, 탄 아주머니. 지난 1968년 마을에 들이닥친 한국군 학살로 어머니와 언니, 남동생, 이모, 사촌동생을 잃었습니다. 탄 아주머니 자신도 왼쪽 옆구리에 총상을 입고 어머니를 찾다 기절했지만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습니다.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63세) 베트남 전쟁 당시 하미 학살의 생존자, 탄 아주머니. 1968년 집에 들이닥친 한국군이 "가족과 이웃들을 방공호에 몰아넣은 뒤 양쪽 입구를 막고 수류탄을 던졌다"고 증언했습니다. 이 학살로 어머니와 남동생, 작은어머니와 두 사촌동생을 잃었고 자신도 청력을 잃는 등 부상을 당했습니다.

두 명의 탄 아주머니는 최근 몇 년 간 한국땅을 자주 밟고 있습니다. 1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을 대신해 청와대를 찾기도 하고, 한국의 법정 그리고 UN에까지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인 학살에 대해 우리 정부가 진상을 규명하고 사과하는 일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 시작된 건 1999년이죠. 시민사회에서 학살 생존자들과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건넨 겁니다. 이 연대는 최근 몇 년 동안 소송, 청원 등 더욱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나서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이후 두 명의 탄 아주머니들이 한국에 와 이곳저곳에서 목소리를 낸 덕분입니다. 한국에 오지 못하고 있는 다른 많은 피해자들도 각자 하나의 활동가가 되어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반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일관적입니다. 지난해 피해자 103명이 진상조사를 요구하자 국방부 답변은 이랬습니다. "국방부가 보유한 한국군 전투 사료에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박사는 피해자들이 가장 좌절하고 슬퍼했던 시점을 이 때로 꼽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 사건이 공론화되고 나서 20년만에 정부가 내놓은 첫 공식 답변이었거든요.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민변의 김남주 변호사는 "한국군에 의한 학살은 몇몇 참전 군인들의 일탈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군 작전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런 전쟁범죄의 성격을 띠는 학살 행위가 그대로 전투 사료에 기재됐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이야기합니다. 피해자들이 "진상 규명해달라" 요청한 걸 사실상 국방부가 거부한 걸로 해석되는 거죠.

전문가들은 "진상조사를 위해서는 공식 사료가 아닌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당시 행위가 전투 사료에 기재됐을 가능성은 낮은 만큼, 교전 기록을 검토하거나 부대원들 진술을 청취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몇몇 참전 군인들은 학살이 있었다는 취지로 용기 있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번주에는 베트남 전쟁 관련한 재판이 2건 있었습니다. 정부의 입장은 그대로였습니다.

▶국가배상청구소송: '위법성 없는 살상' 이라는 정부

 
[취재설명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5년째 한국 찾는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 지난 12일 국가배상청구소송 첫 변론기일 기자회견. 탄 아주머니와의 화상통화 모습.

지난 12일, 퐁니퐁넛 마을 탄 아주머니는 노트북 모니터를 통해 중앙지법 앞에 섰습니다. 우리 정부에 손해 배상 책임을 묻는 첫 소송, 첫 변론 기일이 있던 날입니다.

정부는 당시 퐁니·퐁넛 마을에 한국군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학살이 있었다면 한국군으로 위장한 '베트콩'이 저지른 일이었을 거란 겁니다.

하지만 당시 퐁니·퐁넛 마을과 이어지는 경로로 한국군이 이동한 자료, 그리고 한국군이 마을에서 '작전'을 하고 있단 걸 목격한 미군, 남베트남군 기록 등이 있습니다. 당시 구역을 따져보면 '베트콩'이 마을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작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당시 학살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다른 언어를 구사한 군인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또 "교전 중에 발생한 사고이므로 위법성이 없다"는 취지로도 주장했습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을 '베트콩'으로 오인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기엔 마을 어린 아이들이 한국군에 의해 죽었고, 당시 마을 사람들은 비무장 상태였습니다. 학살 후 마을을 목격한 미군이 사체를 보고 '근접 사격을 한 것 같다'고 진술한 자료도 있습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인단은 "어떤 경우에도 무장 군인이 비무장 민간인을 살상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정부는 지난 1965년 우리나라와 베트남이 맺은 군사실무약정도 거론했습니다. 민간인 피해 보상에 대해서는 별도로 규정하기로 했기 때문에 소송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대리인단에 따르면, 그 별도 규정 자체가 없는 상태입니다.

탄 아주머니는 이 날 기자회견에서 "공평하게만 해달라"고 재판부에 부탁했습니다.

▶정보공개청구소송: 네 번의 소송에도 정보 내놓지 않는 정부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항소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여기서 피고는, 국가정보원입니다. 과거 중앙정보부가 갖고 있는 베트남 전쟁 자료를 공개하라고 민변의 임재성 변호사가 낸 소송입니다. 지난 14일, 항소심에서 법원은 1심과 같이 임 변호사 손을 들어줬습니다. 국정원이 정보를 주라는 거죠.

국정원이 내놓지 않는 정보, 뭐길래 그럴까요? 1969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퐁니마을 학살에 대해 당시 참전 군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문서들의 '목록'입니다. 보고서를 다 달라는 것도 아니니, 뭐가 있는지 만이라도 알려달라는 거죠.

그런데 이 소송, 벌써 네 번째입니다. 지난 2017년 '외교와 국익'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던 국정원. 1심과 2심에서 정보를 공개하라는 선고가 났습니다. 이번에는 '개인정보'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아 또 다시 소송이 시작된 겁니다. 행정청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사유를 바꿔서 또다시 거부하면 또 소송을 해야하는 실정입니다.

임 변호사는 "알 권리는 '적절한 시기에 알 권리'를 뜻한다면서 무용한 비공개 처분이 반복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취재설명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5년째 한국 찾는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 지난 7일, UN 진정 기자회견. 피켓 준비해온 성미산학교 학생들.

피해자들은 이제 UN 문을 두드립니다. 두 명의 탄 아주머니들은 지난 7일 UN 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에 진정서를 보냈습니다. "그 날의 진실이 밝혀져야만 원혼들이 두 눈을 감고 안식에 들 수 있다", "바라는 건 '미안하다'는 한 마디 뿐이다" 등 마음을 담았습니다.

피해자들이 진정서를 통해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싶은 건 단지 학살 피해 뿐 아닙니다. 최근 피해자들의 진상조사 요구가 이어졌지만 정부가 이를 외면한 행위역시 또다른 인권침해라고 본 겁니다.

◇연꽃으로 가려진 위령비

 
[취재설명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5년째 한국 찾는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

베트남 하미마을에 있는 위령비입니다. 지난 2001년, 월남참전자회에서 세운 건데요. 당시 마을 사람들이 이 위령비 뒤에 아래와 같은 문구를 새겼습니다.

'1968년 이른 봄, 정월 24일에 청룡부대 병사들이 미친 듯이 몰려와 선량한 주민들을 모아놓고 잔인하게 학살을 저질렀다. 하미마을 30가구, 135명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고 마을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이 문구는 곧이어 연꽃 모양 돌판으로 덮였습니다.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참전자회와 비문을 간섭하면 안 된다는 마을 사람들 간 갈등 끝에 이런 결론이 난 겁니다. 그리고 연꽃 그림은 현재까지도 위령비 한 쪽을 가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상처받은 사람들과 인정하지 않는 우리 정부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민변 김남주 변호사가 관련 기자회견 자리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원하지 않는데 왜 우리나라가 나서서 사과해야 하느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고픈 이야기라고 합니다. 설령 베트남 정부가 그럴지는 몰라도, 피해 당사자들은 지속적으로 사과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피해자들은 5년째 청와대와 법원, UN을 찾아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학살은 없다'는 우리 정부와 달리,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김영란 전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시민평화법정에선 우리 정부 책임을 인정했죠. 그리고 피해자들은 이런 연대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1999년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부터 지금까지, 두 명의 탄 아주머니와 피해생존자들은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늘 고맙다'는 말을 자주 전하고 있습니다.

(사진제공=한베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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