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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노동자 전태일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문장

입력 2020-10-10 11:57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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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

[취재설명서] 노동자 전태일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문장

"1970년대에 비해 2020년 노동자의 삶과 처우가 나아졌다고 생각하나요?" 최근 한 시민단체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올해가 전태일 분신항거 50주기인데, 그만큼 노동자의 삶의 질과 노동환경이 나아졌는지 물은 겁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변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52.8%였습니다. 여전히 절반 가까운 노동자는 50년 전의 노동환경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느꼈습니다.

왜 그럴까. 취재의 시작은 이 물음에서 출발했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2020년의 '전태일'들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약속장소로 가는 길,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시장 입구에 서 있는 전태일 열사의 동상과 마주했습니다.

 
[취재설명서] 노동자 전태일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문장

1970년 당시 스물 두 살이던 노동자 전태일은 이곳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불꽃이 됐습니다. 그 순간 그의 손에 마지막까지 들려 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입니다.

전태일이 마지막까지 목 놓아 외쳤던 근로기준법은 현재 잘 지켜지고 있을까. 귀금속 세공 작업장에서 20년 째 일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김정봉씨를 만나 들어봤습니다.

 
[취재설명서] 노동자 전태일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문장

'1평당 1대꼴…현대판 판옵티콘에 갇힌 노동자들' 김씨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영상 한 개를 보여줬습니다. 김 씨가 보여준 영상은 충격적이었습니다. 130제곱미터 정도 작업장의 천장이 온통 CCTV였습니다. 개수를 세어보니 모두 35개였습니다. 카메라를 피해 숨을 공간은 없어 보였습니다. 김씨가 일하는 곳으로 보석 세공 작업장이었습니다.

 
[취재설명서] 노동자 전태일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문장

김씨는 귀금속 분실 방지를 위해 업주가 설치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CCTV의 개수가 20명인 직원보다 많았습니다. 여기에 매일 자신들이 작업하는 귀금속의 개수와 무게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김씨는 '업주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취재설명서] 노동자 전태일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문장

기사에 다 담지 못했지만 개선이 필요해 보이는 문제는 더 있었습니다. 김씨는 구겨진 누런 봉투를 꺼내서 보여줬습니다. 매달 월급을 현금으로 봉투에 담아서 받는다고 했습니다. 김씨는 20년 동안 일하면서 월급 통장을 개설해 본적이 없습니다.

김씨는 4대 보험 가입도 꿈같은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소득 증빙이 어려워,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도 신용카드 한 장을 발급받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김씨처럼 일해온 종로 귀금속업계 노동자는 6000여 명입니다.

그 중 80%는 여전히 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또 다른 전태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6살 때부터 재봉틀 앞에 앉아 미싱사가 된 강명자씨입니다. 현재 58세가 된 강씨는 42년의 경력의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불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40년 일했지만 돌아온 말은 비정규직이란 꼬리표"

강씨는 용기 내 인터뷰를 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한 분야에서 40년 일하면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강씨는 노동자가 노동자 대접받는 것이 어려운 일이냐고 되물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업의 발전은 눈부시게 이뤘지만, 아직도 노동자 인권의 문제는 초라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강씨는 "자신과 같은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근로기준법은 그림과 같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에는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약 60%가 근로기준법에서 제외되는 5인 미만 사업장입니다. 많은 사업장이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정부가 근로기준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이유는 영세자영업자들을 배려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노동계 "50주기 맞아 전태일 법 추진 중"

하지만 이후 사업장을 쪼개는 등 이 제도를 악용하는 업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노동계는 '근로기준법 11조' 개정 등 이른바 '전태일 법'이 올해 안에 통과되길 촉구하고 있습니다. 해당 법은 국민청원 참여자가 기준인 10만 명을 넘어서면서 이미 국회로 넘어간 상황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엔 많은 '전태일'들이 존재합니다. 제가 만나 본 이분들이 꿈꾸는 세상은 결코 복잡하거나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오십년 전, 스물두 살 노동자 전태일의 외침이 실현되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취재설명서] 노동자 전태일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문장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전태일의 외침.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가 놓지 않았던 책에 적힌 한 문장입니다.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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