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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창설 80년…'한반도 진공작전' 관련 사진 발굴

입력 2020-09-16 21:34 수정 2020-09-1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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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창설한 지 80주년 되는 날이 내일(17일)입니다. 광복군은 일본 패망 직전 미국 중앙정보국 CIA 전신인 전략정보국 OSS와 함께 한반도 진공 작전까지 준비했는데, 당시에 사진들을 저희가 새롭게 입수했습니다.

박지윤 기자입니다.

[기자]

1945년 들어 광복군과 미국 OSS는 광복군 2지대 본부가 자리한 중국 시안에서 한반도 진공 작전을 계획했습니다.

작전 내용이 기록된 당시 OSS 보고서입니다.

임시정부는 연합국들과 대일전선에 함께 나서길 원했습니다.

[한시준/단국대 사학과 교수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전략은 일본과 싸우는 연합군과 함께 작전해서 일본을 패망시킨 뒤에는 우리가 연합국의 지위를 획득하는 거죠.]

OSS는 일본 본토와 중국 대륙을 연결하는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고 임시정부가 제안한 미군의 한반도 상륙작전을 받아들였습니다.

한반도 내 일본군 동향 파악을 위해 8월 말 광복군을 첩보원으로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고 김우전/전 광복군 OSS 요원 : 필리핀에 상륙할 때 현지의 독립군들이 많이 정보를 제공해 줘서 희생도 적게 들고 수월하게 상륙작전을 했다.]

이를 위해 특수 훈련도 받았습니다.

당시 특수훈련 일정표입니다.

가장 많이 한 건 통신 훈련입니다.

[로버트 김/'한반도 진공작전' 저자 (사진 제공자) : 일본군 관련 첩보 내용과 첩보 활동 결과물을 본부에 보내는 건 매우 중요하다.]

게릴라전에 대비해 사격 훈련도 했습니다.

미군이 상륙할 때 광복군들은 후방에서 게릴라전을 펼쳐 전후방에서 일본군을 협공하는 전략을 짠 겁니다.

1945년 8월 4일 광복군 38명은 특수 훈련을 마치고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불과 8일 뒤 일본은 항복했습니다.

작전도 동시에 취소됐고 승전국의 꿈도 사라졌습니다.

[고 김우전/전 광복군 OSS 요원 : 김구 선생이 지시한 국내도 못 가고 또 지금 훈련을 받은 동지들도 아무것도 못 하고…]

이범석 장군은 OSS가 보낸 작전 취소 편지 내용을 광복군 대원들에게 전하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임시정부는 연합군의 전후 처리 문제에도 관여했습니다.

한반도에 감금된 연합군 포로 현황을 OSS에 넘겼습니다.

이에 OSS는 일본이 항복한 지 사흘 만에 이범석 장군이 포함된 포로 지원 파견대도 구성해 서울로 보냈습니다.

OSS는 광복군의 중국 거주 한인 보호 임무도 도왔습니다.

만주를 점령한 소련군 때문에 한인들의 육로 귀국길이 막히자 한인들의 귀국을 돕기 위해 OSS는 배 여러 척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 9월 30일 광복군들과 OSS 요원들은 합동작전을 기념하는 마지막 촬영을 했습니다.

아쉽게 끝나버린 한반도 진공 작전.

하지만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해방을 그저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자주 독립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역사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문건 자료제공 : 국사편찬위원회)
(영상디자인 : 이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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