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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지하차도에서 익사했다고?" 영화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입력 2020-07-29 11:09 수정 2020-07-2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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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지하차도에서 익사했다고?" 영화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하늘은 말끔했습니다. 난데없이 빗물을 쏟아낸 적 없다는 듯 맑았습니다. 물난리로 부산에서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KTX를 탔습니다. 부산역 광장에 도착했을 때 비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난의 흔적은 하늘이 아닌 땅에 있었습니다. 골목골목 소방차가 널려있었고, 지난 밤에 지친 듯 소방관들은 연석에 앉아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습니다. 맑은 하늘과 달리 땅에는 진흙이 엉겨있었고, 중장비들이 도시 곳곳을 오가며 흙을 퍼내고 있었습니다.
 
[취재설명서] "지하차도에서 익사했다고?" 영화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어떤 재난은 느닷없이 일상에 벌어져 실제 같지 않습니다. 여느 때처럼 차를 타고 지하도를 지나는데 빗물이 폭포처럼 덮쳐왔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잠긴 7대의 차량. 물이 창문 위까지 차오르는데 압력 때문에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한 차량에서는 성인 남성 3명이 간이 의자로 창문을 깨고 가까스로 탈출했습니다. 헤엄쳐 나와 자동차 지붕에 올라선 사람도 있습니다. 구조 당시 시민 4명은 차량 지붕에 있었고, 2명은 중앙분리벽 기둥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차오른 물을 피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속에서 발견된 3명은 숨졌습니다. 생존자는 갇힌 사람들이 창문을 부수려했다고 말했습니다.
 
[취재설명서] "지하차도에서 익사했다고?" 영화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지난 23일 밤. 부산역과 항구를 잇는 초량 제1지하차도가 물에 잠겼습니다. 호우경보가 발령됐지만 지하차도는 폐쇄되지 않았습니다. 배수펌프는 작동했지만 용량이 부족했습니다. 폭우에 대응하지도 대비하지도 않은 겁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사망 사고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지하차도가 잠긴 건 오후 9시 30분쯤입니다. 부산에 호우경보가 내린 건 그보다 빠른 8시였습니다. 시간당 최대 90mm 가까운 폭우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지하차도가 보통 20~30mm 폭우에 대비해 설계된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부산 동구청에는 호우경보가 내리면 초량 지하차도를 통제한다는 매뉴얼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조치는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평소처럼 차를 몰고 지하차도로 내려갔고 2.5m 깊이의 물에 잠겼습니다.
 
[취재설명서] "지하차도에서 익사했다고?" 영화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구조도 늦었습니다. 침수 신고는 오후 9시 40분쯤 접수됐습니다. 경찰은 곧바로 도착했는데 이미 물이 차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아쉬운 건 119였습니다. 폭우로 신고가 폭주해 제때 전화를 받지 못한 겁니다. 지하차도에서 첫 구조신고를 한 건 9시 30분쯤인데 119가 전화를 받은 건 40여분이 지난 10시 10분쯤이었습니다. 구조대는 10분 뒤 도착했고 11시 30분까지 생존자 6명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3명은 끝내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때까지도 지하차도 앞 전광판에는 도로통제 안내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취재설명서] "지하차도에서 익사했다고?" 영화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배수펌프는 정상 작동했지만 침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지하차도에는 분당 20톤의 물을 빼는 펌프가 있었습니다. 펌프는 무려 9시간 동안 최대 가동됐지만 물을 제대로 빼지 못했습니다. 애시당초 설계 용량이 적었던 탓입니다. 신현석 부산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 모든 게 앞서 지적됐다고 말했습니다. 펌프만으로 침수를 막을 수 없으니 배수가 잘되는 아스팔트와 수해 방지 설비 등 각종 대비책을 건의했지만 부산시가 준비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신 교수는 "부산시가 침수 위험시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고 대비방안을 제대로 구축하지 않았다"며 "펌프는 용량이 부족했고 침수 방어시설도 없었다. 이번 사고는 인재"라고 지적했습니다. 인재란 증거는 지하차도를 비추는 구청 CCTV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취재설명서] "지하차도에서 익사했다고?" 영화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부산경찰청은 이번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에 나섰습니다. 지하차도의 관리주체인 부산 동구청이 아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호우경보 때 지하차도를 통제하는 매뉴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매뉴얼에 따르면 구청은 호우주의보가 발령되면 부구청장 주재로 회의를 열고 지하차도에 감시원을 배치해야합니다. 이후 호우경보로 전환되면 지하차도를 통제해야합니다. 하지만 구청 공무원은 경찰이 지하차도를 통제한 뒤 현장에 도착해 오히려 언쟁을 벌였습니다. 경찰은 구청 공무원을 상대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취재설명서] "지하차도에서 익사했다고?" 영화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재난은 사고 이후까지 이어졌습니다. 유족은 사고 나흘 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만나기 위해 시청을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부산시는 '면담 시스템이 없다'며 유족을 내보냈습니다. 변 권한대행은 뒤늦게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회의 참석 문제로 면담 요청 관련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보도가 난 이후에야 유족은 가까스로 변 권한대행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빗물이 쏟아질 땐 시스템 대로 하지 않더니, 유족이 권한대행을 만나려하니 시스템 대로 하자는 부산시. 느닷없이 쏟아진 빗물만큼, 마음 내킬 때 작동하는 시스템도 재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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