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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N번방 피해자들의 '잊혀질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지워지지 않는 흔적들

입력 2020-07-02 10:33 수정 2020-07-0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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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N번방 피해자들의 '잊혀질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지워지지 않는 흔적들

"조주빈이 반성문을 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조주빈이 유포시킨 피해촬영물을 지우느라 바빠죽겠는데, 대체 무엇을 반성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조주빈으로 인해 받은 일상의 피해와 마음의 상처, 이 기억은 아무 좋은 지원을 받고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완전히 치유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제 상처가 끝이 없는 것처럼 조주빈의 형벌도 끝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삭제 지원해주는 센터는 (오후) 6시에 종료되는데 그 때부터는 제가 살기 위해서 스스로 피해촬영물을 찾아 지워야했고, 새벽 내내 눈이 빠져라 모니터링 했습니다."
 
[취재설명서] N번방 피해자들의 '잊혀질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지워지지 않는 흔적들


최근 조주빈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 A씨가 비공개 증인신문에서 한 말입니다. 재판에서 피해자의 심경이 전달된 것은 처음이었기에 재판부를 포함한 좌중이 일순간 숙연해졌습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겪은 A씨의 말은 모두를 울렸습니다. 비공개 재판이기 때문에 취재진에게 이 발언이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이 겪는 '삭제'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내용입니다. 그 만큼 절실한 이들의 사정, 끝나지 않는 충격과 공포감이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이었기에, 기사에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겪는 '삭제' 기획 보도는 작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이 재판에 넘겨져 형사처벌 과정을 밟고 있고, 공범들도 속속 기소되는가 하면 신상공개까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가해자들 엄벌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진전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피해자들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범죄 동영상, 사진 등 게시물이 퍼져나가는 것은 순식간이라던데 삭제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정작 제일 중요한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을 찾아 보니 민관이 협력해 태스크포스팀을 만들고,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핫라인도 만들어 피해자 지원에 나서고 있다고 했습니다. 요청하면 삭제하도록 포털에 협조 요청을 하고, 불법정보의 경우는 24시간 내 삭제토록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역부족이었습니다. 특히 포털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구글에 내용증명까지 보낼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 이 정도인데, 다른 디지털성범죄 사건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 지 불 보듯 뻔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한 블로거가 'N번방 피해자 000다' '불쌍하다'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올린 사례의 경우, 10번이나 삭제 요청하고 지워지는 일이 반복됐다는 말을 듣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반 사진 게시물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이 댓글 등으로 오간 사례 피해자 B씨를 접했습니다. 

이 사안을 함께 취재한 법조팀 오선민 기자가 만난 B씨는 지난 3월 미국 SNS '텀블러'에 본인 사진과 모르는 여성의 나체 사진이 함께 게시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온갖 모욕적인 거짓 정보가 적혀있다는 걸 알게 된 직후 삭제 요청해 게시물이 삭제된 걸 알았지만 몇 개월 뒤 다른 외국 사이트에 자신의 사진이 재유포된 걸 알았다고 했습니다. 기사에 담은 것처럼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여전히 구글 사이트에는 피해 게시물이 남아있었습니다.

B씨는 "인터넷에 한 번 올라가는 건 아예 삭제가 안 되는 건가 수 없이 좌절했다"고 했습니다.

방에서 며칠 간 나가지 못하는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다가 결국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퇴사해야 했습니다. 

이렇듯 B씨처럼 일반 게시물인 경우 삭제는 더 어려운 걸로 파악됐습니다. 불법촬영물인 경우 24시간 삭제하도록 정부에서 조치를 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일반 게시물'의 경우는 24시간 내 삭제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N번방 피해자들도 "내 이름, 학교, 직장명, 주민번호가 떠 다니고 있다. 지워달라"고 요청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일반 정보라 24시간 내 삭제 대상이 아니다"라고 한 걸로 전해집니다. 피해자 인적사항의 경우는 성폭력처벌법 14조 1항에 해당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아니기 때문에 권리침해 게시물로 간주하고 몇 주에 걸쳐 심의했습니다. 이같은 문제가 지적되자 방심위는 지난 6월 8일부터 피해자 인적사항 정보도 민원이 접수되거나 모니터링을 통해 인지된 정보의 경우 24시간 내 삭제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물론 모니터링 등으로 인지되지 않은 정보는 여전히 인터넷 공간을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이처럼 '디지털 성범죄 게시물 삭제' 문제는 오롯이 피해자들의 '몫'이 되어 있었습니다. 피해자, 가족, 친척, 변호인들까지. 삭제에 동원되는 인력이라고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 변호인들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피해자가 "제가 피해자에요"라고 해도 '사건사고 확인원'을 요구하며 실제 피해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포털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저 않고 싶다고, 포기하고 싶다고 울부짖는 피해자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 지원센터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같은 지원 단체가 있는데 부족한가요? 왜 당사자들이 뛰어야 하나요?" 제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그 분들도 퇴근하셔야 하는데, 저녁이나 주말에는 어떡해요"였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도 중요하고 그 분들의 업무를 연장시키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포털'이 자체적으로 불법게시물을 적극적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요청을 한 것을 제 때 처리하는 것을 넘어서서 일종의 데이터베이스(DB)화 해서 처리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물론 일부 하고 있는 포털도 있지만, 일례로 구글의 경우 구글코리아가 아닌 미국 본사에서 삭제해줘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협조를 구하기는 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취재 요청을 해도 본사 근무시간, 회의 과정 등 지난한 절차가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피해자 측은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 22조 5항(부가통신사업자의 불법촬영물 등 유통방지)를 좀 더 사업자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의무 규정은 있지만 대통령령 내용에 따라 책임의 범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포털 사업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 아니냐'며 위헌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비판의 소지는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공대위 법률지원단에서 피해자들의 삭제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안지희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와 피해자의 잊혀질 권리 중 어떤 게 더 중요하는 문제에 있어,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으면 이의 신청을 해서 구제 받을 수 있다"며 "하지만 피해자들이 표현의 자유 미명 하에 불법 촬영물 퍼지게 됐을 때 겪게 되는 피해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안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입는 피해는 침해된 표현의 자유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겪은 피해자 지원 단체들의 사정은 너무나 열악했습니다. 인터뷰 시간도 쪼개야 할 정도로 바빴고, 활동가 분은 '칼퇴'는커녕 저녁 6시에 시작한 인터뷰 후 또 상담 일정이 있다며 자리를 뜨셨습니다. '인력'지원과 '예산' 지원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었습니다. 공대위 법률지원단 소속 오선희 변호사는 "예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고, 매년 증가되는 구조로 고민을 해야한다"면서 "10대, 20대 들은 일상에서 공포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피해자가 한 번만 전화해도 삭제 지원이 되고 디지털성범죄에 입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담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방심위도 JTBC 보도 직후 "(피해를) 인지하게 되면 포털 등에 삭제 시정 요구를 하고 있지만 이용자 정보까지 원천 차단하기는 어렵다"며 "향후 포털 등과 협력해서 포털에서 1차적으로 연관검색어나 검색 형태로 피해자 사진이나 인적사항이 공개되지 않도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N번방 사건에 대해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가해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를 당부하면서 관계부처에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근절책'을 마련하라고도 지시했습니다. 비단 '가해자' 처벌에 국한한 '근절책'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더 고통받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수 많은 정보, 범죄 게시물이 사라지지 않는 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잊어버리고 싶고, 상담도 받고 싶었는데 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피해 촬영물을 찾아다니고 삭제해야 되니까요." 피해자 분이 증인신문 때 한 발언 내용을 또 한 번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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