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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회사를 떠날 자유를 달라" 소송전 뛰어든 이주노동자들

입력 2020-06-15 18:34 수정 2020-06-1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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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회사를 떠날 자유를 달라" 소송전 뛰어든 이주노동자들


[사모님 못 믿어?]

 
[취재설명서] "회사를 떠날 자유를 달라" 소송전 뛰어든 이주노동자들 돈 건네는 영상 캡쳐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이주노동자들이 "자기를 못 믿냐"며 채근하는 '사모님'에게 돈을 건넵니다. 꼬깃꼬깃 접힌 오만원 뭉치와 떨리는 손. 돈을 벌러 온 이들이 도리어 왜 돈을 주고 있는 걸까요. 불법체류자라서? 노동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아닙니다. '이직하기' 위해섭니다.

[헌재로 간 이주노동자들]

제가 취재한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동남아에서 왔고, E-9(비전문취업)비자를 받고 온 사람들입니다. 주로 제조업과 농축산업 등에 종사하는데요. '내국인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지적에 우리 정부는 고용허가제 라는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고용노동부가 이들을 지자체 고용센터에서 기업에 각각 알선해주는 겁니다. 이 때 고용노동부는 '처음 사업장에서 쭉 일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 이직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들에게는 총 3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업무편람을 뒤져보면요. △근로자의 귀책 등으로 인한 해고 △계약기간 만료 △당사자 간 자율 합의에 의한 해지 등 사유가 있다면 3년 간 3번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고 적어놨습니다. 그런데 주어진 이 3번의 기회도 맘껏 쓰기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당장 위에 적힌 사유들 중에 노동자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경우는.. 없어보이지요?

사업주가 월급을 주지 않거나 노동자를 폭행하는 경우 등 '부당처우'가 발생했다면 3번의 기회 외에도 변경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입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에 지난 3월 이주노동자 5명이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지게차 면허가 없는데 지게차 운전을 강요하는 사업장, 안전 용구를 주지 않는 사업장... 이런 회사 옮기고 싶은데, 자유롭게 옮길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 더 없는지 수소문해 만나봤습니다.

 
[취재설명서] "회사를 떠날 자유를 달라" 소송전 뛰어든 이주노동자들 헌재 기자회견 사진 (연합뉴스 제공)



['이직'을 위한 경우의 수]

A씨 (이주노동자) "사업주에게 계속 물어봤어요. "왜 월급 탈 때마다 왜 16만원을 덜 주나요?" 처음 물어봤을 때, 사업주는 "퇴직금때문에 그래."라고 했어요. 두 번째는 "기숙사비 때문에 그래."라고 말을 했어요. 세 번째는 "삼성화재 때문에 그래."라고 말했어요. 사장님의 두번째 대답을 듣고, 제가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세번째 질문을 할 때부터 녹음을 했어요." "계약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어요"

B씨 (이주노동자) "사업주가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했어요. 여기서는 근로계약서를 만들었으면, 이대로 사업주가 잘 지켰으면 좋겠어요." 

C씨 (이주노동자) "기숙사는 정말 좋지 않아요. 더울 때,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고, 추울 때, 난로를 달아도 사장님이 못 틀게 해요. "

 
[취재설명서] "회사를 떠날 자유를 달라" 소송전 뛰어든 이주노동자들 열악한 숙소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취재설명서] "회사를 떠날 자유를 달라" 소송전 뛰어든 이주노동자들 열악한 숙소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제가 인터뷰한 6명의 노동자들은 모두 우리 농촌에서 일하고, 임금체불을 경험한 적이 있고, 열악한 숙소에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직을 원했거나, 원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이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세 번의 기회를 활용하거나, 임금체불을 입증하거나. 두 가지 모두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①노사 합의로 계약을 해지해서 3번의 기회를 사용한다?

제가 글을 시작하면서 소개해드렸던 '사모님 못 믿어' 사례 기억하시죠. 이들의 사업주, '사모님'이 돈을 받고 해준다는 건 '싸인'입니다. '△당사자 간 자율 합의에 의한 해지' 를 위해 사용자가 '싸인'을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겁니다. 정 나가고 싶으면 돈 주고 나가라는 거죠. 

비슷한 대사와 비슷한 구도, 제가 제보받은 것만 해도 서너개입니다. 500만원을 요구하는 사업주, 150만원을 요구하는 사업주까지, '싸인 팔이'에 나서는 금액도 다양합니다. 이런 영상 속 노동자들 사정을 알아보니, 모두 임금도 전부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여섯달 간 400만원을 못 받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매달 적은 임금에다 그마저도 밀리는 일이 잦다보니 노동자들, 이렇게 얘기합니다. "밀린 임금 안받아도 좋으니, 제발 좋은 일자리 찾아가고 싶다"고요. 

②임금 체불·부당처우를 입증한다?

고용노동부는 임금체불 등 부당한 처우가 있다면 세 번과 관계없이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돈까지 주고 계약해지를 하느냐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우선 고용노동부가 설정한 임금체불 기준이 자의적입니다. '월 임금의 30% 이상을 2개월 이상 지급하지 않거나 지연한 경우'인데요. 이 기준을 충족한다는 사실을 노동청에다 입증하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제조업과 다르게 농촌은 노동시간 기록 시스템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는 사이 초과근무와 임금체불은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립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오기 전 농번기와 농한기 기준으로 계약서를 쓰고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걸 어기는 사업주도 많아서, 제가 만난 노동자들 모두 하루에 열시간 넘게 매일매일 일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좀 관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고용노동부에 물어봤습니다. "농업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업종이다, 농번기에는 일을 많이 하니까 초과근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농번기라고 해서 '무료 노동'으로 초과근무해야하는 건 아닙니다. 계약서에도 초과근무는 돈을 주게 돼 있습니다. 억울한 노동자들은 매일 노트에 삐뚤빼뚤 그날 출퇴근 시간을 적어놓습니다. 혹시 믿지 못할까봐 출퇴근 영상도 찍습니다. 이걸 노동청에 가져가서 "이 사업장, 임금체불 때문에 더이상 일할 수가 없다"고 하면 되는데...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돕는 변호사, 활동가들 얘기는 좀 다릅니다. 노동청에서 "믿을 수 없다"며 증거로 인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어느 근로감독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복불복'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만난 노동자 B씨의 경우 임금체불에 부당해고까지 당해 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했더니 1년 반 가까이 지지부진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건이 종결됐다고 합니다. 당시 B씨를 변호했던 조영신 변호사는 "노동청이 사용자의 입장만 들은 채 사건을 종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취재설명서] "회사를 떠날 자유를 달라" 소송전 뛰어든 이주노동자들 노동자 증거 기록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취재설명서] "회사를 떠날 자유를 달라" 소송전 뛰어든 이주노동자들 노동자 증거 기록



[고용노동부 "사업주 '싸인' 없이도 변경할 수 있다!"]

결국 이주노동자들이 나쁜 사업장에서 '이론적으로는' 빠져나올 수 있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상황인 겁니다.

 


이런 내용을 뉴스룸에서 보도( 인간 존엄 찾으려 헌재-법원으로 가는 '이주노동자들' 20.06.09)한 뒤, 고용노동부는 해명자료를 하나 냈습니다.

 
[취재설명서] "회사를 떠날 자유를 달라" 소송전 뛰어든 이주노동자들 고용노동부 해명자료


저희가 보도한 영상처럼 사업주의 '싸인'을 받지 않고도 충분히 나쁜 일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단 겁니다.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하면 '사업주 동의서'를 받지도 않는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고용노동부 말대로라면 사업주 동의 없이 '합의에 의한 노사 계약 해지'가 가능하단 설명이 됩니다. 나쁜 일자리라면 그냥 마음대로 이탈하면 된다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물론 현실은 아닙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탈하자마자 불법체류자가 됩니다. 이걸 갖고 협박하는 사업주들도 있고요.

부당처우나 임금체불 입증도 어려운 상황,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사업주들에게 '계약을 해지해달라'고 찾아가는 지금의 현실을 고용노동부는 외면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3회 기회 중 한 번을 소진해야하고, 밀린 임금을 사실상 포기해야하는데도요. 해명자료가 나간 직후 정의당은 지난 11일 "현실을 모르는 해명"이라고 논평했습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 70개 단체가 모여 항의 성명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용허가제 헌법소원을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는 "사실왜곡의 허위해명이다. 왜 이런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지 고용노동부가 엄중한 책임을 느끼고 제대로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는 이번 해명자료에서 임금체불이나 부당처우가 발생하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는 '이론'만 또 다시 반복했습니다. 왜 이런 '이론'이 '현실'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지, 제대로 직시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해당 해명자료는 현재는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입니다.

[타향서 소송전 뛰어든 이주노동자들]

C씨 (이주노동자) "다음 사람이 오면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저만 어려우면 되니까 다음 사람을 위해서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또 뭉쳐서 소송전에 돌입했습니다. 3월에 낸 헌법소원은 현재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에서 심리 중입니다. 2011년에 비슷한 헌법소원이 한 차례 있었는데요. 당시 헌재는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는 사실을 들어 입법재량을 넓게 인정했고, 또 외국인에 대해서는 우리 헌법 기본권의 주체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재도전 하는 올해, 법률대리인단은 어떤 변론을 펼칠지 물어봤습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에게 ILO가 금지하고 있는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단 사실을 강조할 것이라고 합니다. 노동자가 본인 의사와 다르게 고용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고용관계 종료를 위해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상황은 이들의 '직장을 떠날 자유'를 침해한다는 겁니다.   

고용노동부를 향해 책임을 묻는 이들도 있습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이미 임금체불이 발생한 사업장에다 "체불 금액이 크지 않다"며 또 노동자를 배치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또 농촌에선 사업자 등록이 되지도 않은 곳에 노동자를 배치하는 경우가 15% 정도 되는데요. 이런 업장에선 이주노동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하는 건강보험도 지역가입자로 가입돼 한 달에 10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내야하는 등 실질적인 어려움이 큽니다. 직원이 5명 이상 일하는데도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신고해 연차수당을 주지 않는 사업장들을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감독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일선에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생깁니다. 감독이 소홀한 사이,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의 '소유물' 인양 이 업장, 저 업장 옮겨다니게 하는 일도 자주 일어납니다. 최정규 변호사는 이런 고용노동부의 책임을 물어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바라는 건 한 가지. 다음에 오게 될 노동자들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노동의 표정] 

3월, 헌재 앞에 나온 이주노동자들의 피켓을 본 뒤 4월부턴 이 곳 저 곳 노동자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어느 토요일, 안산의 '지구인의 정류장' 사무실에 가 15명 남짓 되는 노동자들을 마주했던 오후가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그들이 함께 모여 있단 사실만으로 괜히 위안이 됐습니다. 한국에 온 지 6개월, 1년, 3년… 일한 기간마다 각각 다르게 느껴질 무게를 서로 나눠 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편안한 감정은 잠시였습니다. 오래 일한 노동자, 이제 일을 시작한 노동자 모두 비슷한 일을 털어놨습니다. 임금 체불과 비닐하우스 숙소, 폭언을 일삼는 사업주… 이들은 모여서 "한국사회가 우리를 향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좌절감과 위로를 동시에 나누는 듯 했습니다. '사장님이 그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각자 책상에 올려둔 계약서들엔 서러운 시간들만 켜켜이 쌓였습니다. 비슷한 표정과 비슷한 분위기, 이전에 제가 우리나라 내국인 노동 문제를 취재할 때 마주했던 감정과도 매우 닮아있었습니다. 상식적인 일터에서 약속대로 받아가는 것, 국적을 떠나 우리가 원하는 바는 같은데 왜 현장에선 누군가의 서러운 계약서가 쌓여가는 걸까요. 우리 사회 곳곳을 지탱하는 노동의 표정들이 이제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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