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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입력 2020-06-01 10:58 수정 2020-06-07 16:1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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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8)

온실가스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분야가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입니다.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비판을 받기도, 전기차나 수소차를 통해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될 거란 기대를 받기도 하죠.

지금 바로 '오늘'을 기준으로 보면, 거의 모든 자동차 제조사들이 화석연료에 기반한 자동차를 만들고 있습니다. 화석연료보다 전기로 가는 차를 더 많이 만들고 판매하는 날, 분명 오긴 오겠지만 당장 금방은 아닐 겁니다. 기술도, 인프라도 모든 것이 갖춰지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 그렇다고 제조사들이 '오늘'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기차 기술개발 외에도 기후를, 더 크겐 지구를 위하는 방법이 더 있으니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꿀 만드는 자동차 회사

지난 20일, 여러 매체에선 자동차 브랜드들의 '꿀 사랑'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도대체 갑자기 웬 꿀 뉴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날은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이었습니다. 2017년 12월, UN 총회 의결을 통과해 만들어졌는데요, 식물의 번식을 책임지는 벌이 생존의 위기를 겪으면서 만들어졌습니다.

벌의 위기는 곧 인류의 위기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우리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계 100대 주요 작물'을 꼽았는데요, 이중 71개가 벌 덕분에 수정을 하게 됩니다. 벌의 위기는 결국 이 71개 작물의 위기를 의미하고, 이는 곧 식량 위기로 이어지는 겁니다.

이렇게 '세계 벌의 날'이 만들어졌을 때, 발 빠르게 대응한 자동차 제조사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의 롤스로이스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롤스로이스의 양봉업이 최근 다시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롤스로이스는 영국 굿우드 공장의 42에이커(약 17만㎡) 부지에서 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축구장 20여개 면적의 땅에 숲을 만들고, 공장 지붕에도 꽃을 심어 벌들이 열심히 꿀을 만들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전기차는 물론, 하이브리드차도 만들지 않는. 게다가 모든 차량에 배기량 6749cc의 12기통 엔진을 얹는 브랜드지만 '우리는 이렇게라도 지구를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일까요. 흔히들 '최상의 것'을 표현할 때 롤스로이스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최고의 SUV라는 의미에서 '사막의 롤스로이스'라고, 최고의 꿀이라는 의미에서 '벌꿀계의 롤스로이스'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적어도 SUV와 꿀, 이 두 분야는 이런 표현을 쓸 수 없게 됐습니다. 롤스로이스가 직접 이것들을 만들어내니까 말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사진: 롤스로이스)

영국산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로 손꼽히는, 롤스로이스의 경쟁자임을 자처하는 벤틀리도 꿀을 만들고 있습니다. 롤스로이스가 굿우드 공장 인근에서 벌을 키우는 것처럼 벤틀리는 크루 공장의 숲에서 양봉을 합니다. 본업에선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키우는 벌의 개체수'에선 벤틀 리가 30만 마리로 롤스로이스(25만 마리)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사진: 벤틀리)

롤스로이스 못지않게 벤틀리의 자동차도 '기름 먹는 하마'로 손꼽힙니다. 승용차 제조사들의 '평균 배기량'이 롤스로이스가 1등이라면, 2등은 벤틀리일 겁니다. 롤스로이스와 같은 V12는 아니지만, V6 엔진을 두 개 붙인 형상의 W형 12기통 엔진을 주력으로 하고, '보급형'이라는 차량에도 8기통 엔진을 쓰죠. 기통 수가 많은 만큼 배기량 역시 크고요.

다른 브랜드들이 소위 '다운사이징'을 내세우며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대형 엔진을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로 보고, 유지중입니다. 아마 법이 허용하는 한, 이들은 최대한 이를 유지하려 할거고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라는 의미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뭔가 배부른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인상입니다.

#'기름 먹는 하마' 만들어도 만들 땐 '태양광'으로

 
[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영국의 벤틀리 크루 공장 (사진: 폭스바겐 그룹)

그런데, 벤틀리는 벌을 키우는 것 말고도 보다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와 환경보호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만드는 차는 비록 기름을 많이 먹을지라도, 그 차를 만드는 과정에선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는 거죠.

방법은 이렇습니다. 공장 지붕에 2만여장, 주차장에 1만장 규모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이를 전량 공장 가동에 활용하는 겁니다. 1400대 가까이 수용 가능한 주차장을 모두 태양광 패널로 뒤덮는 것은 영국 내 최대 규모라고 하네요. 발전용량은 7.7MW 규모인데요, 이정도면 최소 1750가구에 공급하고도 남을 용량이라는 것이 벤틀리의 설명입니다.

이밖에도 모자라는 전력 역시 기존 화석연료 발전에 기반한 전력이 아닌 재생에너지 발(發) 전력을 활용함으로써 '탄소 중립' 인증인 PAS 2060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 공장에서 쓰는 전기는 모두 '재생에너지'라는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영국의 벤틀리 크루 공장 (사진: 폭스바겐 그룹)

크루 공장이 영국의 첫 '탄소 중립' 자동차 공장이라는 것이 벤틀리의 주장인데, 또 다른 자동차 제조사도 '영국 최초'를 외치고 있습니다. 바로, 재규어-랜드로버입니다. 사실, 재규어-랜드로버의 모기업인 인도 타타모터스는 RE100 캠페인에 동참한 바 있습니다. 
 

지난 2월, 재규어-랜드로버는 "2년 연속 PAS 2060 인증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브랜드의 생산시설은 각지에 위치해있는데, 이중 레인지로버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솔리헐과 버밍햄, 울버햄튼의 공장 등이 탄소 중립을 실현한 겁니다. "자사 전 세계 생산량의 77%를 책임지는 곳"이라는 게 재규어-랜드로버의 설명입니다. '데스티네이션 제로'라고 명명된 계획에 따라 생산시설뿐 아니라 생산하는 차량들 역시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둘 것이라고 하고요.

#'탄소 중립'까진 어려워도

탄소 중립까지는 쉽지 않겠지만, 최대한 기후에 대한 영향을 줄이기 위해 대폭 강화된 목표들을 내걸은 브랜드도 있습니다.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꼽는 볼보입니다. 일단 단기적으로 2025년까지 볼보가 만드는 자동차의 '탄소 발자국'을 40%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놨습니다. 이 때까지 전 세계 판매량의 절반을 전기차가 채울 수 있도록 할뿐더러 2040년엔 완전한 '기후 중립'을 이루겠다는 계획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볼보의 자동차 생산 과정에서의 에너지 사용 통계 (자료: 볼보)

당장 2015~2019년, 생산 차량의 '탄소 발자국'은 2013년 대비 3400만톤 줄어들었습니다. 생산 시설에서도 연간 170GWh의 전력을 덜 사용했고, 완성차나 부품 등을 운송하는 과정에서도 탄소 배출량을 18% 줄였습니다.

전면적인 '탄소 중립' 선언보다는 완화된 계획 같지만, 각 브랜드가 공개한 자료들을 비교하다 보면, 볼보는 가장 '지구 친화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볼보 그룹의 환경 영향 (자료: 볼보)

볼보는 해마다 자신들이 자동차를 만들어오며 얼마나 환경에 영향을 미쳐왔는지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탄소 배출량 만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양의 전력을 사용했고, 직접적·간접적으로 탄소를 뿜어냈는지, 얼마나 많은 물을 썼고,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등은 얼마나 뿜어냈는지 환경 영향을 파악하는 거죠.

또, 파악에 그치지 않고 이를 대중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시민단체나 환경단체, 정부 부처가 이를 파악해서 공개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한국에서 기후변화, 온실가스를 취재해온 입장에선 마치 언론이 할 일이나 시민단체가 할 일을 기업이 스스로 직접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요.

#'기후변화 대응 최우수' 선정은 됐지만

 
[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현대자동차가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의 기후변화 대응 우수 기업으로 선정됐습니다.

최근엔 국내 자동차 기업도 이와 관련한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현대차가 해외 평가기관으로부터 기후변화 대응 우수 기업으로 평가받았다는 겁니다.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Carbon Disclosure Project)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놓고 평가하는데, 평가점수 국내 상위 5개사인 '아너스 클럽'에 선정됐습니다. 국제적으론 기후변화 부문에서 리더십A 등급을 획득했는데, A등급은 세계 8천 3백여 기업 가운데 181개사가 받았습니다.

CDP는 말 그대로 기업들의 환경 영향을 공개하도록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정보의 공개, 이 단체가 추구하는 바를 가장 잘 실천하는 자동차 제조사는 앞서 소개해드린 볼보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볼보만큼 항목별 배출량 자료를 대중이 찾아보기 쉽게 공개되고 있진 않습니다만, 현대차의 지속가능경영 웹페이지에선 "친환경의 가치를 생각하며 생각하겠습니다"라는 환경 책임에 대한 기업의 계획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현대자동차 주요 사업장의 온실가스 저감 현황 (자료: 현대차)

위의 현황에서 살펴볼 수 있든, 아쉽게도 아직까지 적극적인 전환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체로 시설의 효율성을 높여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방식입니다. 아산공장과 남양연구소에 태양광 발전설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만, 아직 시설이 사용하는 전력량을 전량 커버하기엔 모자란 수준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양봉장 만들고 태양광으로 공장 돌리는 자동차 제조사들 그럼에도 현대차의 탄소 배출량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습니다. (자료: 그린피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대차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노력하는 점보다 기후변화를 더 악화시키는 점이 더 부각되곤 합니다. 벤틀리의 경우는 반대 사례로 꼽을 수 있겠죠. 12기통이나 8기통의 고배기량 자동차만 만들면서도 '탄소 중립' 공장으로 이미지를 쇄신했으니까요.

EU의 탄소배출기준 강화 등 기후변화 관련 규제가 해마다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조사들은 각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축, 또는 저마다 시장과 기관에 대한 '어필'을 시도하고 있죠. 이런 가운데 유럽 시장에서 현대차가 보여준 '수'는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기준 강화를 앞두고 친환경차 계약 물량의 출고를 미뤄 '기준 통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 거죠.

사실상 '한국차'라고 표현할 수 있는 기업은 이제 현대·기아차 뿐입니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회사들로 손꼽히는 만큼, 최근엔 럭셔리 브랜드로의 도약까지 노리고 있는 만큼, 기후변화 대응을 넘어 '지속가능 경영'에 대한 중요한 '한 수'가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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