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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이천 참사 한 달…장례도 못 치른 유족들

입력 2020-05-2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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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28일) 밀착카메라는 받지 못할 문자를 계속 보내보기도 하고 들리지 않겠지만, 매일 안부를 묻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목숨을 잃은 서른여덟 명 노동자들의 가족들입니다. 내일이면 한 달이 지나지만 밝혀진 것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의 시간이 그날에 멈춰있는 이유입니다.

이선화 기자입니다. 

[기자]

새카맣게 불에 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출입금지를 알리는 띠가 곳곳에 둘러져있는데요. 

지난달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의 물류창고 화재 현장입니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진상 규명도 안돼다 보니, 아직 장례도 못 치르고 있다고 하는데요.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유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시아버지를 잃은 전수진 씨, 집으로 돌아왔지만 일상으로 복귀하진 못했습니다.

[전수진/고 유지봉 씨 며느리 : 저희 신랑은 보험 설계사예요. 스케줄을 잡아서 일을 하는 사람인데. 일을 하지를 못하더라고요. (어머님도) 다니던 직장에서는 일을 그만둔 걸로. 화장품 판매를 하시는데 이런 마음 상태로 누구한테 뭔가를 판매를 할 수가 있겠어요.]

시아버지는 배관 설비 전문가였습니다.

이천 현장에서의 작업을 끝으로 은퇴하려했습니다.

직접 지은 집에서 가족들과 여생을 보낼 계획이었습니다. 

[전수진/고 유지봉 씨 며느리 : 은퇴하시고 가려고 지어놓고. 애들이 어리니까 물놀이 하라고. 구덩이 파서 물 끌어오면 되니까. 다 만들어 놓는다고.]

분향소에서 곁을 지키고 싶지만, 아이들 때문에 그러지도 못합니다. 

[손녀 : (할아버지) 안 보면 속상해. 안 돼. (왜 안 되는데?) 가운동(할아버지 동네) 좋아.]

일부 유족들은 분향소에서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유족들이 모여있는 이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입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조의를 표하는 현수막들이 걸려있는데요. 

유족들은 분향소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매일, 이 마흔다섯 계단을 오른다고 합니다.

적막감이 감돕니다.

시들어버린 국화만이 시간의 흐름을 대신 말해줍니다. 

대강당엔 유족들이 쉴 수 있는 텐트가 마련됐습니다. 

저마다의 슬픔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희생자 중 가장 어린 24살 준범 씨의 부모는 이곳을 매일 찾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고 김준범 씨 어머니 : 저는 아들도 잃음과 동시에 친구 하나도 잃어버렸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이나 슬픔이 점점 다른 모습으로 다르게 다가와요.]

집에 가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고 김준범 씨 어머니 : 그 밝고 잘생기고 예쁜 얼굴이 녹아버리는 얼굴이 작업복에 묻혀서 안 보이더라고요. 그게 영상인가 형상인가 꿈인가. (준범아) 거기도 5월인지 네가 좋아하던 계절인지.]

준범 씨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따라나선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준범 씨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고 김준범 씨 어머니 : 아침에 일 나가서 퇴근해서 돌아올 앤데, 그 착한 마음으로 아빠 일 도와주러 간 앤데 돌아오지 못하고. 알바비 벌어서 할머니 선물하고 시골에 가져갈 것하고 준비를 하려고. 다음 날에 가자고 약속을 하고 갔는데.]

어머니는 아들을 깨워 출근시킨 게 후회스럽습니다.

[고 김준범 씨 어머니 :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고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고, 아침잠 많은 그 애를 달래가면서 깨운 적도 몇 번 있었어요. 용서해달라고 좀 자게 놔둘걸.]

보면 견딜 수가 없어 갖고 있던 사진들도 지우고, 대화를 나누었던 채팅방도 모두 비웠습니다.

[고 김준범 씨 어머니 : 몰랐어요. 이렇게 잔인한지. 어떻게 사람들이 사진을 가지고 있는지. 소중한 것 추억인데 무서워서 다 지우고 싶고.]

이제 엄마에게 남은 마지막 사진은 가족여행 때 찍은 지금은 검은 띠가 둘러진 영정사진뿐입니다.

결혼 1년 만에 남편을 잃은 박시영 씨.

커플 목걸이를 맞출 때만 해도, 두 개 다 박씨가 하고 다니게 될 줄 몰랐습니다.

[박시영/고 김치성 씨 부인 : 작은 게 제 거고 이게 신랑 거. 서로 이름 가운데자 하나씩.]

박씨는 이천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시에서 잡아준 숙소에서 자고, 분향소 옆에 마련된 간이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하지만 자고 먹는 것, 어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박시영/고 김치성 씨 부인 : 새벽 다섯 시? 빨리 자면 세 시 반? 누워 있다 뒤척이다.]

요즘은 매일 남편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냅니다.

[박시영/고 김치성 씨 부인 : 이런 거(기사) 보내줘요. 자기도 이런 일을 왜 당했는지 몰랐을 테니까. 1이란 숫자가 안 없어지니까 되게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확인을 해요.]

희생된 노동자 38명 중 33명은 화장을 한 뒤 임시 봉안된 상태입니다.

나머지 다섯 명은, 아직도 냉기가 가득한 냉동관에 있습니다. 

제대로 된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가족들은 떠나보낼 수가 없습니다. 

유가족들은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이 문화센터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한 달째입니다. 

언제쯤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VJ : 서진형 / 인턴기자 : 이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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