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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유적 입구부터 쓰레기…방치된 '5월의 현장'

입력 2020-05-19 21:29 수정 2020-05-1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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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월 정신'은 더 널리 공감돼야 하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 거듭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잘 지켜야 할 텐데요. 오월 정신의 기억이 담겨있는 곳들 중에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거나 이미 제 모습을 잃어버린 곳들이 있습니다.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5·18 유적들을 돌아봤습니다.

오늘(19일)은 오선민 기자의 밀착카메라입니다.

[기자]

이곳은 광주 5·18 민주광장입니다.

이 분수대는 40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유적 중 하나인데요.

민주화를 외쳤던 역사의 현장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밀착카메라가 살펴보겠습니다.

시민군 활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광주 YWCA 건물은 사라지고, 카페가 들어섰습니다.

왜곡 보도에 대한 항의로 시민들이 불태운 광주 문화방송이 있던 자리엔 경찰 공무원 입시 학원이 생겼습니다.

[김상윤/옛 녹두서점 주인 : 서점 공간 자체는 6평 정도. 빙 둘러서 서가가 있고.]

열띤 시국토론이 벌어졌던 녹두서점도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김상윤/옛 녹두서점 주인 : 책도 많이 빼앗겨 버렸고 또 악명이 높게 됐고. 계속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표지석은 각종 광고물과 잡동사니로 가려졌습니다.

역사적 배경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QR코드가 작동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당시 나주, 화순 등 전남 일대로도 확장됐습니다.

총 3개의 5·18 표지석이 모여 있는 화순경찰서 앞 사거리입니다.

화순까지 넘어온 시민군이 무기를 구하고 시위를 벌인 곳입니다.

[황동대/주민 : (5·18 유적 관련해) 이야기 못 들어봤는데? 오늘 처음 들은 말인데.]

이곳은 화순까지 넘어온 시위대에게 시민들이 빵과 주먹밥을 나눠줬던 장소입니다.

지금은 차들이 빼곡히 서 있는 주차장이 됐는데요.

이곳이 5·18 유적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시비, 그리고 표지석은 차 뒤에 숨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화순경찰서 표지석은 전봇대 뒤 좁은 골목에 방치돼 있습니다.

그마저도 비뚤게 설치해 시선이 닿지 않습니다.

[박순성/주민 : (표지석이) 저렇게 사이에 끼어 있으니 지나다녀도 유심히 보지 않은 이상 모르잖아요.]

[전남 화순군청 관계자 : 저희도 보기가 안 좋다는 건 다 인식을 하고 있었고. 허가를 안 해주니까 저희도 못 옮긴 상태였죠.]

유적 입구부터 쓰레기장이 된 곳도 있고, 잡초만 무성히 자란 곳도 있습니다.

주민들이 지역방위군을 편성해 계엄군에 맞서 싸웠던 광주 태봉마을입니다.

4년 전 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오월마을로 추진됐습니다.

[이경임/주민 : 태봉마을 사람들이 없어. 다 그냥 어디로 나가 버리고.]

[김순덕/주민 : 동구청에서 태봉마을을 오월마을로 한다더니 갑자기 시들어져 버리던데 또?]

찾아오는 사람도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마을을 한참 둘러봤는데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설명하는 역사관이나 볼거리는 따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대신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돼 보이는 이런 빈집들만 남아있습니다.

'아름다운 오월마을'이란 이정표가 무색합니다.

[광주광역시 동구청 관계자 : 엇갈린 의견이 나왔죠. 주민들 사이에서도 재산상의 이익과는 관련이 없는 사업이기 때문에. 자꾸 주민들을 만나고 그럴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고층 아파트들 사이 곳곳이 깨지고 녹슬어버린 3층 높이의 작은 아파트.

1970년 지어진 광주의 첫 연립주택인 광천시민아파트입니다.

민주화운동의 산실인 '들불야학'의 본거지이자, 5·18의 참상을 고발했던 '투사회보'가 만들어진 곳입니다.

[임낙평/옛 들불야학 강학 : 아파트 한 칸을 얻어서 20~30명 정도가 쪼그려 앉아서 앉은뱅이책상 위에서 공부를 했죠.]

40년 전 이곳에 살던 윤상원, 김영철 열사를 기억하는 주민도 남아있습니다.

[아파트 주민 : (김영철 열사한테)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사정을 했어. 그날 저녁에 나가서 못 들어왔잖아.]

이 아파트는 광주시 역대 최대 규모의 재개발 사업으로 없어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3개동 중 1개동을 남기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청 관계자 : 총회를 아직 못 올렸죠, 이 내용에 대해서. 사유재산이다 보니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광주시가 지정한 5·18 사적지 29곳 중 11곳이 사유지입니다.

개인 소유로 방치된 5·18 사적들에 대해선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1980년 5월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공간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 역시, 역사를 기억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이제 다음 세대들에게 이 공간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해야 할 시간입니다.

(화면제공 : 5·18기념재단 나경택·이창성 촬영, 들불열사기념사업회)
(VJ : 서진형 / 영상디자인 : 배장근 / 영상그래픽 : 박경민 / 인턴기자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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