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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 지키려 했던 청소년들…17살 오기철, 18살 박현숙

입력 2020-05-18 20:54 수정 2020-05-1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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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0분, 평소처럼 집을 나서는 오기철 씨.

[오기철/광주 시민 : 출근 버스를 몰기 때문에 아침에 항상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갑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지만, 늘 40년 전 악몽을 안고 삽니다. 

1980년 17살 때의 일입니다. 

[오기철/광주 시민 : 많은 사람들이 죽어. 죽어서 병원에 있고 인력이 부족해. 시체 쪽 보니까 사람 인력이 부족해.]

시신 수습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오기철/광주 시민 : (시신 보니까) 얼굴이 막, 머리가 막 (날아가고 없어.) 전남도청에서 입관을 했어요. (시신) 보관을 하라고 하면 상무관으로 이관하고…]

상무관은 계엄군 발포 사흘 만에 주검들로 꽉 찼습니다.

죽어 나가는 시민들 속에서, 어린 오씨는 그때가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기철/광주 시민 : 죽기 전에 누가 우리(가 죽어 시신 수습할 때) 씻겨주지는 않을 테니 마지막으로 목욕하고, 시체 입히려고 쌍방울표 하얀 속옷 다 입었지. 참 미쳤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

18살 여고생이었던 현숙 씨도 같은 일을 했습니다. 

23일 오전, 시신을 닦으러 버스를 타고 도청에 가던 길.

버스 안에서 관이 부족하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박현옥/고 박현숙 씨 언니 : '(같이 있던 시민군이) 무전기로 관이 부족하다, 빨리 구해와라'라는 말을 들은 거야. 그래서 미니버스를 타고 가다가 무참히 희생이 된 거예요.]

현숙 씨는 바로 계엄군이 무차별 사격을 해 17명을 사살한 '주남마을 버스사건'의 한 명이었던 겁니다. 

당시 유일한 생존자 홍금숙 씨는 현숙 씨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홍금숙/'주남마을 버스사건' 생존자 : 엉덩이가 아파 죽겠다고, 엉덩이 아파 죽겠다고 하는 거야. 그런데 엉덩이가 없다는 거야.]

[박현옥/고 박현숙 씨 언니 : 현숙이 꿈은 문학소녀였는데 동생의 마지막 길이 그렇게, 참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정도의 모습으로.]

희생된 이들의 당시 검시 보고서입니다.

수 발의 총상부터 칼에 의한 자상, 온몸에 입은 전신 타박상까지.

그날의 잔인함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VJ : 손건표 / 영상디자인 : 신재훈·배장근 / 영상그래픽 : 박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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