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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교도소 습격에 발포? 앞뒤 안 맞는 신군부 주장

입력 2020-05-18 21:05 수정 2020-05-1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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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신군부는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갔습니다. 대표적인 게 시민들이 광주 교도소를 습격해서 발포를 했다는 주장입니다. 지금 이 시각, 옛 광주 교도소 자리입니다. 신군부의 주장이 앞뒤가 안 맞다는 증거를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옛 광주교도소 자리에 나가 있는 이서준 기자를 연결하겠습니다.

이 기자,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딘가요?

[이서준 기자]

옛 광주교도소 초소가 보이는 부근입니다.

2015년 교도소가 새 건물로 옮겨가면서 지금은 이곳은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 5·18 당시엔 수백 명의 계엄군이 이 교도소 안팎에 배치가 됐습니다.

계엄군은 이 교도소 부근을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6차례에 걸쳐 총격을 가했습니다.

교도소 초소 곳곳에는 저격병이 배치되기도 했습니다.

[앵커]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건가요?

[이서준 기자]

여기서도 북한군 개입설이 등장하는데요.

무장시위대가 범죄자와 북한 간첩 등을 풀어주기 위해 교도소를 습격하려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포를 했다는 이 광주교도소 습격설입니다.

전두환 씨도 회고록에서 무장시위대가 광주교도소를 가장 집요하게 공격했다는 사실은 광주 사태의 성격을 파악하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북한군 개입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썼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부분이 거짓이라면서 삭제하도록 결정을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이 교도소를 습격한 혐의로 처벌받은 사람은 1명도 없습니다.

[앵커]

그럼 실제로 시민들에게 총을 쏜 이유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서준 기자]

계엄군은 당시에 본격적인 유혈진압을 앞두고 광주를 완전히 고립시키는 봉쇄작전을 펼쳤습니다.

이 교도소 담벼락 바로 옆에 있는 도로가 광주에서 담양으로 빠져나가는 호남고속도로입니다.

담양으로 나가는 이 교도소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광주를 벗어나는 이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총격을 당한 생존자들도 교도소가 아니라 담양을 향하고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신군부는 또 1980년 5.18 직후에 진상조사보고서를 만들었는데요.

이 보고서가 95년 5.18 특검을 통해 확보가 됩니다.

그런데 이 원본 보고서에는 광주교도소가 습격당했다는 내용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1988년 광주청문회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광주교도소 습격이 매우 비중 있게 적혀 있습니다.

군이 1980년 원본보고서를 조작해서 제출한 겁니다.

신군부는 또 당시 계엄군의 광주교도소 작전 요도에서 이 시민들이 총격을 당한 지점을 모두 지웠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입수한 이 작전 요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자연 기자가 보도합니다.

[이자연 기자]

JTBC가 입수한 계엄군 제3공수여단이 만든 광주교도소 요도입니다.

광주교도소 부근에서 펼친 작전 상황을 손으로 그린 겁니다.

'김성수 씨 일가 피격지점' 등 광주 시민이 총에 맞아 숨진 지점들이 표시돼 있습니다.

요도가 처음 공개된 건 88년 광주 특위 청문회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출된 것엔 피격자가 다 지워져 있습니다.

신군부가 요도를 조작해 국회에 제출한 겁니다.

이번에 공개된 원본을 보면, 고규석 씨 등이 총에 맞아 숨진 지점이 교도소 정문에서 수백M 이상 떨어진 곳입니다.

요도에 따르면, 소방차와 트럭, 버스 등으로 겹겹이 막혀있는 쪽이어서, 교도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피격당했다고 보기 힘듭니다.

김성수 씨 일가가 총에 맞은 곳은 교도소 입구와 한참 떨어진 담양 고속도로 한복판입니다.

또, 고속도로를 따라 세워진 교도소 담벼락의 높이는 5미터가 넘습니다.

심지어 교도소 망루엔 저격수까지 배치돼 담을 넘어 교도소를 습격하는 건 불가능했다는 게 전문가 지적입니다.

계엄군의 핵심 병력인 APC장갑차는 교도소 입구 정반대편인 고속도로에 배치했습니다.

계엄군은 교도소 방어가 아닌 외곽 고속도로 봉쇄에 집중하고 있던 겁니다.

당시 수감됐던 시민군의 증언과도 일치합니다.

[강길조/5·18 당시 광주시민 : 지나가는 행인들도 억울하게 잡혀 온 경우가 있는 것이, '우리는 무장도 안 했고, 담양 가는 길에 억울하게 잡혀 왔다'고 그러더라고.]

(영상취재 : 최대환 / VJ : 손건표 / 영상디자인 : 조승우·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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