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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다음엔 맥주 한 잔해"…베트남 현지에서 느낀 사과와 용서의 의미

입력 2020-04-28 15:45 수정 2020-04-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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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다음엔 맥주 한 잔해"…베트남 현지에서 느낀 사과와 용서의 의미

지난해 봄 청와대 사랑채 근처를 지나다 베트남 사람들을 봤다. 사랑채 앞 분수대에는 자신의 사연을 들어 달라 호소하는 하는 사람들이 주로 모인다. 어떤 사연일까, 궁금했다. 며칠 후 동료의 기사를 통해 그들이 왜 먼 한국을 찾았는지 알게 됐다. 베트남전쟁 당시 가족을 잃었고 그 후 전쟁고아의 삶을 살았다고 했다.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언젠가 꼭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논쟁적 주제였지만 알게 된 이상 모르는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왔다. 지난 2월 구수정 박사의 도움으로 퐁니·퐁넛과 하미, 빈호아, 뀌년을 방문하기로 했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90년대 후반의 기사부터 최근까지의 기사를 찾아봤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우리를 싫어할 것 같았다. "한국인인 줄 알았으면 안 만났지"라는 인터뷰 내용이 유독 마음에 박혔다. 증오어린 눈총을 받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하지만 퐁니·퐁넛에서 만난 베트남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배고파서 어떡해? 이리 와서 떡 좀 먹어." 

퐁넛마을에서 인터뷰가 끝나고 하미마을로 가려는데 전 할아버지(94)의 며느리가 우리를 잡았다. 레티띠엔(70) 아주머니였다. 탁자에는 이미 바나나 잎으로 싼 떡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입 짧은 영상취재 기자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내가 먼저 떡을 집어 먹었다. 그러자 띠엔 아주머니는 떡을 다 먹길 기다렸다가 더 먹으라며 내 손에 다른 떡을 올려놓았다. 영상취재 기자도 떡을 먹기 시작했다. 

 
[취재설명서] "다음엔 맥주 한 잔해"…베트남 현지에서 느낀 사과와 용서의 의미 ▲ 퐁넛마을의 레티띠언(70) 아주머니. 1968년 2월 당시 학살 현장을 목격했다. 전 할아버지의 아내의 시신을 수습하고 막내아들을 병원으로 보냈다. 끔찍한 인연이었지만 몇 년 뒤 전 할아버지의 며느리가 되었다.

[취재설명서] "다음엔 맥주 한 잔해"…베트남 현지에서 느낀 사과와 용서의 의미 ▲ 띠엔 아주머니가 취재진에게 차려준 수박과 떡. 이렇게 떡을 바나나 잎으로 감싸면 상하지 않고 일주일을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저희가 밉지 않으세요?"

아주머니가 주는 떡을 먹다가 대뜸 내가 물었다. 1968년 2월 12일 청룡부대가 지나간 퐁니·퐁넛마을에서 74명이 숨졌다. 같은 탁자에 앉아 함께 수박을 먹고 있는 전 할아버지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의 반을 잃었다고 했다. '가해국'에서 온 한국인이 여전히 밉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조금 전까지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했는데 이내 취재진을 손녀처럼 대해주는 게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띠엔 아주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잖아. 그런데도 이렇게 알려고 하고, 계속 와서 미안하다고 하고. 그래서 오히려 기특하지." 

이내 띠엔 아주머니는 볼 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떠나야한다고 말했다. 오토바이에 걸터앉으며 그녀는 취재진에게 '술 좀 하나?'라고 대뜸 물었다. 기자가 '그래도 좀 합니다'라고 답하자 자신이 마을에서 술을 제일 잘 마신다며, 다음엔 술 대결을 하자고 했다. 띠엔 아주머니는 "못하이 반 요!"라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통역을 맡은 구수정 박사는 "한국말로 '건배하자'는 뜻이에요."라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다음에 또 만나면 술 한 잔해.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으려나, 하하하."

누구와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퐁넛마을 주민에게 들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의 힘이 이런 건가 싶었다. 퐁니·퐁넛마을은 20년 전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이 한국에 보도된 이후 많은 한국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던 곳이다. 매년 평화기행으로 학살 지역을 찾은 한국인들은 유족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무릎 꿇고 참배했다. 학살 피해자의 위령비까지 세워졌던 퐁니·퐁넛마을의 주민들은 그전까지 분명 '한국'을 증오했을 터였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사과는 '가해국'에서 온 기자에게 술을 청할 정도로 미움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취재설명서] "다음엔 맥주 한 잔해"…베트남 현지에서 느낀 사과와 용서의 의미 ▲지난 2018년 3월 하미마을 위령제에서 한국 시민들이 참배하는 모습. 베트남 내 한국군 학살 지역에 사과의 뜻을 전하는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은 올해로 21년째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곳 사람들은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비행기를 타고 청와대를 찾아와 사과하라 외쳤다는 걸.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그만큼 힘이 드는 일이고, 50년을 한국을 원망하며 살았으니 더 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만 미움을 끝내려면 그간의 고통의 이유에 대해 설명 받아야 한다. 왜 갓난아이들까지 죽어야했는지, 왜 여성들은 죽기 전 강간당했는지, 누구의 명령이었던 건지. 숨김없이 밝히고 사과를 하면 미움을 닫고 용서할 준비가 된, 그 시점까지 온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알다시피, 반세기 넘게 이어진 고통은 모호한 언어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불행한 역사에 대한 유감'을 표현한 바 있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유감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못했다. 베트남 정부가 공식석상에서의 언급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더 이상의 사과는 필요 없다'고 받아들이면 번지수가 잘못됐다.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사과해야 할 대상은 학살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지 베트남 정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청와대를 찾아온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 피해자들은 너무나 분명하게 사과를 원하고 있다. 

지난 21일 퐁니마을 탄 아주머니는 결국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에 돌입했다. 국방부가 '자료가 없어서 사과하지 못 하겠다'는 내용이 아닌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면 소송까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가해국' 지위에 놓이게 된 대한민국은 이제 선택의 기로 앞에 섰다. 사과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밝힐 것인가, 덮을 것인가. 어느 쪽이 더 품격 있는 결정인지는 오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안다. 학살 지역에 찾아가 수차례 고개 숙였던 한국 시민들의 방식으로 우리 정부도 베트남 피해자에게 사과한다면 기자에게 술 대결을 신청했던 띠엔 아주머니처럼 그들도 아픔을 닫고 우리에게 손 내밀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취재진이 만난 사람 중에 진상규명을 바라는 건 비단 베트남 피해자뿐이 아니었다. 청룡부대 26중대 소속으로 퐁니 퐁넛 마을에 들어갔던 류진성 씨도 국가 차원의 규명이 필요하다고 뜻을 같이 했다. 누구의 명령으로, 어떤 부대에서, 어떤 방식으로 학살이 이뤄졌는지를 국가가 밝혀야 베트남 참전군인 전부가 가해자로 매도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진상규명을 해서 우리가 잘못한 게 있다면 제대로 사과하는 것도 '군인 정신'"이라고. 

각자의 기억들을 되짚는 과정에서 모두가 한뜻으로 공감하는 건 '반전(反戰)'이다. 참전군인들에게도 전쟁은 아픈 기억이다. 일흔둘 윤재화씨는 '전쟁 때도, 전쟁 이후에도 너무 아팠다'며 흐느꼈다. 내 옆의 동료가 일순간 주검이 된 것, 겨우 살아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제대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빠져있었던 것…. 결국 전쟁 앞에서 청춘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그는 '불필요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국가 차원의 약속이 필요하다고 했다. 

취재를 하며 느낀 건 우리는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술 대결을 제안한 베트남 아주머니도, 명예회복을 원하는 참전군인도 모두 반전과 평화를 원한다는 뜻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우리 국가와 법정이 가해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화의 길을 선택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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