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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뉴딜 정책 90년 후…이젠 '그린 뉴딜' 차례?

입력 2020-03-30 10:42 수정 2020-06-05 10:5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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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9)

1929년 10월,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는 파도처럼 전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좀처럼 물가는 잡히지 않았고, 경제는 악화일로였습니다. 1932년, 미국에서만 GNP(국민총생산)이 1929년의 절반 가까운 수준으로 줄었고 파산자, 실업자가 폭증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공황'입니다.

그리고 당시 이 대공황을 타개하게 된 정책은 마찬가지로 익히 알고 있는 '뉴딜 정책'이었습니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대대적으로 뜯어 고친 뉴딜 정책은 여러 '미국적 가치'에 대한 '도전'이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잇따랐지만, '뉴딜' 하면 흔히들 대규모 토목 공사, 인프라 확충 등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실업난을 해소했으니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뉴딜 정책 90년 후…이젠 '그린 뉴딜' 차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그린 뉴딜 정책'은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라는 개념이 점차 우리 사회 전반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린 뉴딜'이라는 표현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당장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에서도 '그린 뉴딜 정책'은 민주당의 주요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린 뉴딜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느 정도의 사회 변화이기에 '뉴딜'이라는 표현을 90년 만에 다시 내놓게 된 걸까요.

'그린 뉴딜'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녹색 산업을 통해 일자리뿐 아니라 시장 자체를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사실 '새로운 트렌드'라고 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습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벌써 2008년에 '그린 뉴딜 정책'을 성장 동력으로 꼽았고, 환경 분야에 대한 투자 활성화를 강조할 정도였으니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뉴딜 정책 90년 후…이젠 '그린 뉴딜' 차례?



우리에게도 이 '그린 뉴딜'이 완전 생경한 개념은 아닙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신 성장동력'으로 내세운 '녹색 성장' 기억하시나요. 환경과 성장을 함께 가겠다, 우리 사회를 저탄소 사회로 바꾸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잘 알 듯, MB 정부의 대표적인 녹색 성장 사업은 바로 4대강 사업이었습니다.

'그린 뉴딜'에서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에 있습니다. 기존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생산 비중을 재생에너지로 옮겨오는 것이죠. 댐이나 수문 건설과 같은 과거의 뉴딜과 다르게,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단지를 세우고, 송전시설이나 전력 저장시설을 만들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스마트 그리드를 설치하는 일 등 말이죠. 그렇다보니 4대강 사업이 기존 '뉴딜'에서의 토목에 해당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습니다만, 이 사업이 과연 '그린'이었는지는 많은 의문이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에너지 전환 과정에선 일자리의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화력발전의 비중을 줄인다는 것은 곧 화석연료 사용의 감소를 의미합니다. 이는 석탄, 석유에 관련한 일자리의 감소로 이어지고요.

현재 기준,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에너지 전환에 나서는 곳 중 하나로 유럽을 꼽을 수 있습니다. EU 차원에서 다양한 에너지 전환 정책과 온실가스 저감 정책이 나오고, 현실에 적용되고 있죠. 동시에 노동자의 목소리가 가장 크고 잘 반영되는 곳 역시 유럽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을까요. 대응 '선배'인 유럽에서 우리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준비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EU의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개별 국가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유럽의 번영입니다. 단기간의 번영이 아닌 오랜, 지속 가능한 번영 말입니다.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가장 적극적, 때로는 지나치게 극단적이라고 비춰질 정도임에도 우선순위는 '지구 살리기'가 아닌 '번영'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시 말 해, "유럽의 사례를 참고해 따라가자"는 말이 "경제적 이익은 그저 포기하고 지구만을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이 석탄화력발전을 앞섰다"는 유럽발 소식이 전해진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그런 EU조차 급진적인 '탈석탄'은 목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할 트라트코브스키 EU 집행위원회 에너지총국 미디어 담당관은 "재생에너지, 대체에너지 전환은 신중히 진행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가 그저 겉으로 보기엔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엔 공론화를 통한 소통과 공감, 배려가 이미 녹여져 있는 겁니다. 그는 "화력발전소나 다른 발전소를 없앤다고 했을 때, 어떤 경우엔 발전소 주변 사람들에게 중요한 생계수단이 사라지는 일일 수도 있다"며 "없애더라도 그 사람들이 다른 일자리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한 다음에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연환경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환경도 중요하다는 거죠.

EU 집행위원회 기후변화총국의 엘리나 바드람 과장 역시 일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산업, 에너지 전환을 위해선 먼저 시민들에게 충분한 일자리 등 대안을 제공해준 다음에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기에 앞서 충분한 기술 교육을 제공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도와줘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린 뉴딜'은 총선을 앞둔 우리 정치권에서도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진보정당뿐 아니라 집권 여당도 '그린 뉴딜'을 공약집에 담아냈습니다. "그린 뉴딜로 지속가능한 저탄소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말이죠. 당장 환경단체들은 앞 다퉈 이러한 움직임 자체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그린 뉴딜 기본법을 만들고, 저탄소 산업을 육성하고 저탄소 에너지의 혁신과 기후위기 대응 투자를 늘리겠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고탄소'의 과거에서 '저탄소'의 미래로 전환하는 바로 지금, '현재'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선 그 어느 정당도, 정부 부처도 정확한 계획이나 답을 갖고 있진 못 합니다. "저기로 갈 거야" 목표는 제시했지만, 어떻게 갈지, 거기까지 가기까지 뒤쳐지는 사람은 없을지, 있다면 어떻게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줄지,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저탄소 사회로 전환하는 데에 얼마나 준비되었을까요.

에너지 '대전환'으로, '그린 뉴딜'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기에, 또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새로 생기기에 그러냐. 공상과학영화 속 모습처럼이라도 변하는 거냐. 이런 생각을 갖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저 '목표를 위한 목표', '계획을 위한 계획'만 발표되고 있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다음 주 취재설명서에선 몇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지, 반대로 몇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지, 그린 뉴딜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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