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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빨리빨리' 인터넷, 목숨 건 설치 작업

입력 2020-02-1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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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겨울, 부산에서 인터넷 설치 기사가 작업을 하다가 숨졌습니다.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게 노조 주장입니다. 두 달이 지난 지금은 나아졌을까요. 밀착카메라가 가봤습니다.

서효정 기자입니다.

[기자]

제 옆에 건물 2층 높이에 전신주 꼭대기에서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케이블 선을 연결해야 하는 기계가 전신주 꼭대기나 건물 옥상 등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부산에서 19년째 인터넷 설치 기사 일을 하고 있는 A씨, 오늘(17일)만 돌아야 하는 집이 열네 곳입니다.

[A씨/LG헬로비전 인터넷 설치기사 : 이렇게 지도 보고 찾아가요, 헷갈려서.]

첫 집은 채널이 안 나온다는 AS건입니다.

전봇대에 직접 올라가서 봐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담장을 넘어 들어오니 흙바닥입니다.

[A씨/LG헬로비전 인터넷 설치기사 : (저렇게 사다리가 고정이 되나? 아이고, 아이고.) 땅이 흙이라서.]

발을 뗄 때마다 사다리가 휘청거립니다.

빌라 3층 높이 허공이 A씨의 작업 공간입니다.

작업을 마치고 내려오자마자 고객 전화를 받는 A씨,

[A씨/LG헬로비전 인터넷 설치기사 : 네네, 영사관 뒤쪽이요? 거기가 안 나와요? 그거 나중에 제가 가볼게요.]

다음 집으로 빠르게 이동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전봇대를 타야 하지만, 발을 디딜 곳이 없습니다.

통신 줄을 붙잡고 올라가 봅니다.

발밑으로 차와 사람들이 지나다닙니다.

현행법에선 높은 곳 작업은 2인 1조로 하라고 강제하지만, A씨는 혼자서 합니다.

[A씨/LG헬로비전 인터넷 설치기사 : 13분인가 그렇게 매달려 있었던 것 같아요. 손도 아프고 다리도 떨리고.]

안전 장비도 안전벨트와 밧줄, 안전모뿐입니다.

저희가 이분들이 얼마나 열악한 현장에서 일하는지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다른 회사 정규직 기사들이 일하는 현장에 와봤습니다.

일단 눈에 띄는 점이 줄이 세 개입니다.

하나는 사다리를 고정 시키는 줄, 또 하나는 전봇대에 매달릴 때 몸에 묶는 밧줄, 또 하나는 전봇대에 이렇게 갈고리를 걸어서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할 수 있는 안전로프입니다.

사다리를 꽁꽁 묶은 뒤, 밧줄을 두르고 다른 곳에 안전로프까지 묶어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청업체 소속인 A씨는 안전벨트를 두 달 쯤 전에야 지급받았습니다.

방문하기로 한 집이 취소가 돼서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A씨/LG헬로비전 인터넷 설치기사 : (30분 만에 다 드셔야 되겠네요?) 네, 30분 만에 충분합니다.]

식사 중에도 고객들은 끊임없이 A씨를 찾습니다.

[A씨/LG헬로비전 인터넷 설치기사 : 네, 여보세요? 네네, 그거 무슨 동입니까? 거기가? 무슨 동이에요?]

통화 내용은 그대로 기사 만족도 조사에 반영됩니다.

A씨가 향한 다음 집은 신규 설치 고객입니다.

옥상에서 케이블 선을 내려 가정집 컴퓨터에 연결하면 끝납니다.

그런데 A씨가 한참을 안 나옵니다.

들어가 보니, 술에 취한 고객이 A씨에게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B씨/인터넷 설치 고객 : 만일에 설치한 것 (키보드가) 안 되면 이것 철수하소.]

키보드가 안 된다며 인터넷 설치도 무르라는 것.

[B씨/인터넷 설치 고객 : 기다리소! 지금 계약서가 문제요? 한번 보소.]

고객 사인을 받아야 실적에 반영되는데, 1시간이 넘게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A씨는 한 달 동안 텔레비전 열 집, 인터넷 일곱 집을 새로 가입시키는 실적을 채워야 합니다.

[센터 아침 조회 녹취 (지난 11일) : 지표가 더 쓰레기 됐어요. 뭐예요, 이게. X팔리지 않습니까?]

얼마 전부터는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전단지까지 돌리고 있습니다.

[A씨/LG헬로비전 인터넷 설치기사 : (못 하면) 지역을 바꾼다느니 그런 압박 많이 줍니다. 스트레스 많이 받아요. 엄청나게 받아요.]

지난 겨울 부산에선 LG헬로비전 설치기사 김도빈 씨가 작업 중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노조는 김씨가 위험한 환경에서 압박을 받으며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며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LG헬로비전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실태 조사와 개선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해왔습니다.

이렇게 도심 속 어디에나 깔린 이 케이블 선으로 우리나라는 최고의 인터넷 강국이 됐습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통신망을 까는 설치기사들의 노동환경을 우리 모두 신경을 잘 쓰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턴기자 : 조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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