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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각 다투는 희귀병…현장 의견 무시하는 심사평가원

입력 2020-02-11 21:12 수정 2020-02-1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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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17년 8월 9일) :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것은 피눈물이 나는 일입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습니다.]

그렇게 정부는 여러 희귀 질환을 건강 보험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 반이 지났지요. 지금은 어떨까요.

보험 대상이 된다면서도 승인을 안 해줘서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는 환자들부터, 돈 없는 환자를 위해서 직접 지급 보증까지 나서는 의사들까지 황당한 현실을 강현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해 11월, 30대 여성이 발작으로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담당 의사는 혈액검사 등을 거쳐 희귀병인 aHUS의 전형적 증상으로 판단했습니다.

이 병은 급성일 경우 일주일 만에 몸속 장기, 특히 신장 벽을 찢어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만듭니다.

현재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으로부터 이 병의 치료제를 승인받기 위해선 일주일이 넘는 검사들을 거쳐야 합니다.

담당 의사는 검사 결과를 앞두고 환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자 심평원에 빨리 승인해달라는 의견서를 미리 보냈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도 심평원 판단이 나오지 않자 결국 비급여로 투약을 시작했습니다.

심평원은 '다른 이유일 수 있다'는 취지로 승인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담당 의사가 보낸 두 번째 의견서는 더 절박합니다.

다른 병일 가능성이 없다며 환자의 위급한 상태를 고려해달라고 다시 호소한 겁니다.

결국 다음 날 환자는 사망했습니다.

[담당 주치의 : (배제 검사 전) 좀 더 빠른 시점에 투약이 됐으면 다른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서른 초반의 가족을, 딸을 잃었기 때문에 그 좌절감이나 슬픔은 말로…]

사망 뒤 나온 유전자검사에서도 aHUS가 맞다는 취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해 4월 또 다른 병원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치의가 aHUS를 의심해 승인을 신청했지만 심평원은 거절했습니다.

결국 한 달에서 6주까지 걸리는 유전자 검사까지 첨부해 승인을 받았지만 환자는 투약 도중 숨졌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증상을 보인 뒤 일주일 안에 투약하면 80%의 환자가 신장 기능이 호전됐지만, 일주일 뒤엔 47%로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심평원 규정을 어기고 투약을 할 수도 없습니다.

[현직 신장내과 전문의 : 약품 허가사항 위반이거든요. 허가사항을 위반해서 약을 쓰게 될 경우에 나중에 의사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난해 11월, 한 의사는 빠른 투약으로 위중한 aHUS 의심 환자를 살렸습니다.

그런데 심평원이 보험 지급을 거절해 환자가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직접 지급보증까지 섰습니다.

[담당 주치의 : 이 약을 쓰는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할 만큼 적재적소에 투여했다고…]

■ 보험 신청 59명 중 12명 숨져…기준에 없는 요구도

[앵커]

저희 취재진은 지난 1년 반 동안 이 희귀병 치료약에 대한 보험 신청 현황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59명이 신청했고 사망자가 12명, 보험금 신청자 가운데 20%가 숨졌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선 보험 지급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계속해서 강현석 기자입니다.

[기자]

희귀병 aHUS의 유일한 치료약인 솔리리스입니다.

1회 투약이 500만 원에 달하지만, 2018년 7월부터 사전 승인 조건으로 보험 지급 대상이 됐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솔리리스에 대한 보험 지급을 신청한 환자는 모두 59명입니다.

이 중 사망자는 12명, 사망률만 20%가 넘습니다.

신청 환자 중 심평원으로부터 승인된 사람은 18명에 불과합니다.

승인을 받았는데 숨진 환자는 모두 3명, 이 중 2명은 승인을 거절당한 이력이 있습니다.

나머지 한 명도 최장 6주까지 걸린다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제출해 승인을 받았습니다.

병의 골든타임은 일주일에 불과한데, 심평원이 요구하는 검사만 최소 일주일에서 최장 6주까지 걸릴 수 있는 겁니다.

[강희경/서울대병원 소아과 교수 (솔리리스 심의위원) : 적어도 한 병만 들어가도 회복이 되거든요. 일단 첫 병은 (승인 없이) 쓸 수 있게 해주고…]

현재 해당 질환의 심평원 기준은 18가지.

이를 다 맞춰도 기준에 없는 유전자 검사를 요구합니다.

해당 기준을 만드는 데 참여한 현 심평원 심의위원조차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강희경/서울대병원 소아과 교수 (솔리리스 심의위원) : (배제검사에) 최장은 2주 내지 3주? 그것도 일주일 안에 나오려면 의사가 검사실을 닦달해야죠. (규정 바꾸자고) 처음부터 (목소리를) 냈는데, 그건 받아들일 수 없다… ]

취재진은 심평원에 심사 기준에 대한 질의를 보냈지만, 원론적 승인 절차만 보내왔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 : (고시를) 장관님이 이렇게 만들었는데, '허들을 굉장히 높게 만들어 놓으신 것 같아요' 이렇게 저희가 말 못 하죠.]

(화면출처 : 호주 aHUS 환자지원그룹 홈페이지·캐나다 공영방송 CBC)
(영상디자인 : 최수진·조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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