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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수소가 넘어야 할 산

입력 2020-01-27 18:49 수정 2020-06-05 10:53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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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0)

수소경제는 에너지원을 석탄과 석유에서 수소로 바꾸는 산업구조의 혁명적 변화입니다. 수소의 생산, 저장, 운송, 활용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해낼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초, 첫 번째 지역경제투어 현장인 울산에서 한 말입니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문 대통령에게 '수소경제 로드맵'을 보고했고, 울산시는 '에너지 허브도시 육성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수소는 수소차의 '연료'를 넘어 수소 '경제'로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소가 넘어야 할 산


대통령의 수소경제 선포 이후 공직자들이 관용차로 수소차를 이용하는 모습은 종종 목격됐습니다. 지난해 10월 28일,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날 이용한 관용차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검정 대형 세단이 아닌 준중형급 수소차를 타고 출근한 겁니다. 이에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도 전용차로 수소차를 타고 여러 행사에 나타나곤 했습니다.

여기에 이어 기쁜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세계수소차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시장 점유율이 절반을 넘었고, 업체별로도 현대차가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입니다. 이 반가운 소식에서 수소차, 그리고 수소경제가 마주하고 있는 첫 번째 산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소가 넘어야 할 산


숫자만 놓고 보면 굉장히 반가운 소식인데 뭔가 이상합니다. 지난해 1~10월 현대차의 수소차 중 국내 판매량이 3200대를 넘습니다. 다시 말해, 전체 판매량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판매됐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수소차 시장이 전 세계 절반을 넘는다는 점도 마음에 걸립니다. 자칫 수소차가 '내수용'에 그치면 어쩌나, 수소차 시장이 우리나라에만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되는 겁니다.

사실 수소차와 같은 '연료전지차(FCEV, Fuel Cell Electric Vehicle)'도 결국엔 전기차입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전기차(EV)는 배터리에 전기를 담아두고, 이를 꺼내 써서 굴러갑니다. 연료전지차는 연료(수소)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로 모터를 작동시키죠.

처음 전기차와 연료전지차가 등장했을 당시, 연료전지차는 여러 강점들로 전기차를 압도했습니다. 탱크에 수소를 압축해서 담는만큼, 연료전지차는 일반 전기차 대비 주행가능거리에 있어 독보적인 강점을 자랑했습니다. 또, 플러그를 꼽아 전기를 충전하는 것보다 수소를 주입하는 시간이 훨씬 적은 것도 장점이었고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전기차는 이 같은 연료전지차의 장점을 결코 넘볼 수 없을 걸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에 갑자기 등장한 '뉴커머'는 이 같은 시각을 '낡은 고정관념'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바로 테슬라의 모델S, 그리고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그 주인공입니다.

자동차 시장에 새로 등장한 기업이 내놓은 전기차는 신선한 충격을 불렀습니다. 한 번 충전하면 400km 넘게 주행할 수 있었고, 가속능력은 슈퍼카를 넘봤습니다. 이는 비단 머스크의 아이디어만으론 실현될 수 없는 일입니다. 전기차와 연료전지차가 경쟁하는 사이, 리튬-이온 배터리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배터리의 발달은 곧 전기차의 실용성을 크게 키웠습니다.

배터리는 랩탑, 스마트폰, 카메라 등 다양한 기기에 쓰이면서 모바일 시대의 발달사와 궤를 같이 했습니다. 전자제품에 있어 배터리의 능력은 CPU만큼이나, 때로는 CPU보다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하루를 가지 못 하는 스마트폰은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었고, 신형이 나올 때마다 배터리의 용량을 키울 뿐 아니라 배터리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의 능력도 업데이트됐습니다.

연료전지차가 우위를 점하고 있던 '주행가능거리'는 이렇게 격차가 좁혀졌습니다. 앞으로 배터리 기술이 더 발달할 경우, 전기차가 연료전지차를 넘어서는 것도 가능해지겠죠. 시스템 자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은 전기차든 연료전지차든 앞으로 공통적으로 발달해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에너지 용량을 늘리는 데에는 전기차가 더 큰 '발달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전기차가 배터리의 집약도를 높이는 것에 연료전지차, 즉 수소차는 탱크 용량을 키우는 것으로 밖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발달의 시대에선 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소가 넘어야 할 산


수소차의 또 다른 장점인 '짧은 충전시간'은 어떨까요. 벌써부터 수소차의 이 우위는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수소차가 실제 충전하는 데에만 걸리는 시간은 5분으로 짧습니다. 하지만 1대를 충전한 이후 20~30분가량 수소를 압축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충전소의 탱크에서 수소가 빠져나간 만큼, 그 압력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첫 손님'으로 충전소를 찾지 않으면 자칫 35분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 거죠.

반면 전기차 시장에선 800볼트 충전기가 상용화되고 있습니다. 5분 충전에 100km를 이동할 수 있고, 15분이면 400km 가량을 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수소충전소의 '첫 손님'이 아닌 이상, 연료전지차와 전기차의 격차는 매우 좁아진 셈입니다.

"우주의 75%를 차지하는 물질"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구호와 함께, 수소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수소는 공기 중에도 존재하는 만큼, 흔하디흔한 물질 같죠. 그러다보니 무한한 에너지원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연료로 사용하는 수소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얻어집니다. 부생수소, 추출수소, 수전해수소라고 하는데요, 부생수소는 석유화학 또는 제철공정 중에 부산물로 발생하는 수소를 모으는 방법입니다. 추출수소는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따로 추출해내는 방법이고, 수전해수소는 전기를 이용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시켜 수소를 얻는 방법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소가 넘어야 할 산 (자료: 한국가스공사)


부생수소는 말 그대로 오염물질을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부득이하게 발생하는 오염물질 가운데 수소를 뽑아낸다는 이점이 있지만요. 그런데, 본격적으로 전국에 수소차를 보급해 수소충전소를 운영하려면 수소는 이것만으론 턱없이 부족합니다. 천연가스, LNG를 통해 얻는 수소는 결국 '수입산 수소'인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다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고요. 그리고 수전해수소는 전기를 이용해 수소를 만들고, 다시 그 수소로 전기를 만드는 과정이고요. 전기를 만들기 위해 전기를 쓴다…각각의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분해에 들어가는 전력보다 수소를 통해 만들 수 있는 전력이 더 많아야 의미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우리나라가 전 세계 수소차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시장에서 팔리는 자동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 이를 그저 기쁘게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왜 다른 나라는, 다른 자동차 회사는 우리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있습니다.

수소차는 현재 우리나라 수소경제의 선봉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소경제가 '구호'에서 '현실'이 되려면, 현대차만 수소차를 만들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정부가 수소충전소 1기를 짓는 데에 십수억원을 세금으로 지원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전 세계 유수의 자동차 브랜드들이 동참해야 수소차 시장도, 수소충전소 시장도 열릴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수소가 넘어야 할 산 미니디스크(왼쪽)와 HD-DVD는 각각 ‘차세대 매체’로 떠올랐다 금방 도태됐다.


수소차, 정확히는 연료전지차와 일반 전기차의 경쟁을 보면서 떠오르는 모습이 있습니다. 과거 CD(Compact Disc) 다음의 저장매체로 여겨졌던 MD(Mini Disc)와 영상의 HD화로 부각됐던 HD-DVD 말입니다. MD는 여러 가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과도기적 매체'로만 소모되고 MP3에게 자리를 넘겨줬습니다. DVD의 고화질 버전인 HD-DVD는 결국 블루레이와의 패권 경쟁에서 패배해버렸고요.

'음질'이라는 본연의 가치로는 MD가 MP3를 압도했습니다. 하지만 비싸고 불편하다는 점에서 대중화에 실패했습니다. HD-DVD는 블루레이보다 훨씬 먼저 시장에 진입했고, 기존 DVD의 저변을 활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HD가 QHD로, QHD는 UHD(4K)로 발달하면서 '화질'이라는 본연의 가치에서 블루레이를 뛰어넘을 수 없었습니다.

배터리 전기차와 연료전지차가 격돌하는 지금, 그리고 연료전지차에 정부까지 나서서 승부수를 띄운 지금, 과거의 이 같은 '표준 전쟁'은 좋은 교범이 될 것입니다.

수소차, 그리고 수소경제가 갖는 이점은 분명합니다. 수소를 연료로 운송수단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소까지 운영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수소경제의 흥망은 결국 연구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그로인한 비용(수소 생산비용, 충전소 설립비용 등) 저감, 그리고 효율성 재고에 달려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연구하고 개발 중인 방식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 기술이 '선도적'이라 할지라도, 우리나라와 다른 방식으로 발전이나 충전이 이뤄진다면 '수소경제' 자체를 이끌어나가긴 어려울 겁니다. 수소차를 중심으로 세계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더욱 꾸준히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무언가 끝이 보일 때, 그리고 그 끝이 좋지 않을 때엔 빠르게 '플랜 B'나 '탈출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돈과 시간을 아끼는 방법일 것입니다.

 

기획취재설명서|기후변화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박상욱 기자

  • ① 온난화는 없다는 그대에게
  • ② 0.5도가 부른 큰 차이
  • ③ 10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 ④ '격려'가 아닌 '반성'과 '행동'이 필요해
  • ⑤ '온실가스 증가=경제 성장' 프레임 비틀기
  • ⑥ 적응에 능한 우리나라
  • ⑦ Brace for impact! 현실로 다가온 우려
  • ⑧ 기후위기=경제위기…현실로 다가온 '탄소국경세
  • ⑨ 우리에게만 '먼 미래'…재생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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