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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기후위기=경제위기…현실로 다가온 '탄소국경세

입력 2020-01-13 11:29 수정 2020-06-05 10:52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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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

앞선 취재설명서에서 기후변화가 어떻게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영향을 미칠지 설명 드렸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우리의 주요 수출국이 기후변화에 강력한 대응에 나서고 있고, 앞으로 이 대응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봤죠.

 


그런데 이 영향은 비단 자동차 산업의 일만이 아닙니다. 기후위기가 곧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위기=경제위기…현실로 다가온 '탄소국경세


지난달 EU에선 새롭게 '폰데어라이엔 체제'가 출범했습니다. 새롭게 EU 집행위원장 자리에 오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집행위원장 취임 첫 날 "2050년, 유럽이 최초의 탄소중립 대륙이 되길 원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EU 집행위는 이에 발맞춰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위기=경제위기…현실로 다가온 '탄소국경세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기후변화 대책과 무역협정 이행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탄소국경세'와 '통상감찰관 제도'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무역 대상이 되는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토대로 새로운 관세가 도입되는 셈입니다.

여기엔 전 지구적 차원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는 의도만 있는 게 아닙니다. EU 역내 기업들은 큰 탄소 저감 압박을 받고 있고, 이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마음껏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며 제품을 만드는 역외 기업들보다 가격 경쟁력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죠. 역내 기업을 보호하고, 탄소 배출도 줄이겠다는 취지입니다.

"탄소국경세 도입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석유화학, 알루미늄, 철강, 펄프 및 제지 수출업체의 비용 상승을 의미한다"는 게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의 분석입니다. 한-EU FTA로 우리 수출에 활력이 생기기 무섭게 '탄소국경세'라는 새로운 관세가 등장한 상황인거죠.

탄소국경세와 함께 '통상감찰관'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제도입니다. 이미 체결된 무역협정에서 약속했던 환경규범이나 노동규범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지켜보겠다는 겁니다. 이미 EU는 우리나라에 노동문제와 관련해선 '전문가 패널 조사' 절차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우리나라가 ILO(국제노동기구)에 지난 1991년 가입하긴 했지만, 여전히 핵심협약 8개 중 4개 조항은 국회 비준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EU와 FTA를 체결할 때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약속했는데, 우리의 지지부진한 모습에 결국 전문가 패널이 소집됐습니다. 한국무역협회는 "한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도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EU의 이 같은 적극적인 움직임에 '회의론'도 여전합니다. EU 회원국 내에서도 경제상황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수준이 천차만별인 만큼, 실제 실행에 옮기기 어려울 거란 이유에서죠. 하지만 최근 들려온 소식을 살펴보면, 이 같은 탄소 규제는 곧 실현될 걸로 보입니다.

지난달 12일(현지시간),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정상회의를 열고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에 합의했습니다. 서로의 조건이 모두 다름에도 이에 합의한 겁니다. '예외국'이 있기는 했습니다. 폴란드는 EU 회원국 중에서도 석탄 의존도가 높은 편입니다. 이에 폴란드는 2070년으로 달성 시점을 늦춰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청와대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엘리제궁은 "폴란드가 현재 빠져있긴 하지만 '유럽 그린 딜'은 예정대로 집행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면제를 요청한 폴란드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우리의 속도에 맞춰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했습니다.

각국 정상들은 탄소국경세에도 뜻을 함께했습니다. 역외 기업이나 시설은 보다 높은 국제 환경·안전 기준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유럽 기업과 똑같은 기후변화 대응규칙을 따르지 않는 해외 기업의 제품에 세금을 매기는 메커니즘이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역외 기업'에 대한 규제인 만큼 EU 회원국 모두의 뜻이 하나로 모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차원의 움직임이 전부가 아닙니다. 분명 자발적 모임이지만, 생각보다 큰 강제력이나 영향력, 구속력을 갖는 모임도 있습니다. RE100(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이 바로 그 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위기=경제위기…현실로 다가온 '탄소국경세 (자료: RE100 홈페이지)


RE100은 '지구적 관점'에서 보자면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기특한 캠페인입니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제품 생산에 쓰이는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기적인 한국인 관점'에선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모임에 우리나라 기업은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캠페인에 동참한 기업은 200여곳에 이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업들로는 애플, BMW, 버버리, 칼스버그, 코카콜라, 이베이, 페이스북, GM, 골드먼삭스, 구글, HP, 이케아, 존슨앤존슨, 레고, 모건스탠리, 네슬레, 뉴발란스, 나이키, 파나소닉, P&G, 랄프로렌, 필립스, 소니, 스타벅스, 타타모터스(인도 자동차 회사로 우리나라의 타타대우, 영국의 재규어, 랜드로버 등을 거느림), 유니레버 등(이상 알파벳순)이 있습니다.

당장 '영향권'은 어떻게 될까요. RE100에 참여한 기업들뿐 아니라 이들 기업과 거래하는 협력사들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일례로, BMW는 배터리 등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LG화학이나 삼성SDI 등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자동차, IT, 금융, 식음료 등 분야와 상관없이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RE100은 앞으로 ISO인증처럼 하나의 '국제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골드먼삭스나 모건스탠리처럼 국제적인 투자사들의 RE100 동참도 눈여겨 볼 부분입니다. 우리나라는 해외 수출뿐 아니라 해외 투자에 대한 의존도가 큰 만큼 탄소 배출량 저감에 소극적인 기업은 투자를 받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또, 이미 투자한 자금을 이유로 재생에너지 사용이나 탄소 배출량 저감을 요구할 수도 있고요.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재생에너지는 '미래 성장동력' 또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치부됩니다. 마치 먼 미래의 에너지라는 듯.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온지 어느덧 십수년이 지났습니다. '장기 청정기술 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재생에너지 추진계획이 마련된 게 2004년의 일입니다. 그 해 우리나라는 '신재생 에너지 원년' 선포를 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재생에너지는 '미래의 일'로 남아있습니다.

아직도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발전은 '지나가다 사진 찍을 만큼' 보기 드문 모습입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화력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선 독일의 사례에서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2038년 '탈 석탄' 완료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수많은 석탄 관련 노동자들의 반발로 점진적인 전환을 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우리나라 역시 갑작스런 전환은 불가능한 상황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위기=경제위기…현실로 다가온 '탄소국경세 (자료: 에너지전환포럼, 독일 AGEB)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은 2007년 천연가스 발전량을 넘어섰습니다. 2011년엔 원자력 발전을 넘어섰고, 2018년, '부동의 발전 비중 1위' 석탄을 뛰어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의 발전 속도가 지지부진한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저 정부에만 그 책임을 모두 돌리긴 어려워 보이는데요, 과연 어디서 어떻게 스텝이 엉켰을지. 다음 주 취재설명서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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