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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입력 2019-12-31 09:00 수정 2019-12-3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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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마리 퀴리는 평생을 방사능 연구에 몰두하며 2번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1934년 백혈병으로 숨을 거뒀는데, 전문가들은 과도한 방사능에 노출됐기 때문으로 추측합니다. 당시 방사능 연구자 중 상당수는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퀴리 사후 85년이 지났지만, 연구 노동자의 안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연구직 종사자는 13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지만, 이들은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JTBC는 지난 12월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화학연구자가 백혈병으로 2년 연속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동료들은 "이들이 벤젠 등 발암물질을 다뤘다"고 증언합니다. 벤젠은 대표적인 발암물질입니다. 백혈병에 걸린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도 이 물질을 다뤘습니다. JTBC는 지난해 백혈병으로 사망한 김 모 박사가 2001년부터 2016년까지 15년 동안 수행한 138건의 연구 과제를 살펴봤습니다. 벤젠은 물론 포름알데히드, 산화에틸렌, 톨루엔 등 유해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연구가 다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유해물질을 사용하면서도 보호 장구와 안전 시설이 미흡했다는 것입니다. 동료들은 "배기시설이 좋지 않아 유독가스가 실험실 전체로 확산되고, 건물 주변 나무와 풀이 말라 죽은 적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화학실험실에는 후드(Hood·사진)라고 불리는 배기시설이 있습니다. 삼겹살 불판 위의 흡입장치와 비슷합니다. 동료 연구원들은 "후드의 빨아들이는 성능이 좋지 않았었다"고 증언합니다.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연구자들은 벤젠과 같은 유해물질을 다룰 때 흄 후드(Fume Hood·사진)라는 실험 공간 안에 손만 넣어서 작업을 합니다. 흄 후드는 실험 공간의 공기를 빨아들여서 유해물질로부터 연구자를 보호합니다.


●재난상황 보고서 살펴보니…2014년에도 안전기준 지키지 않아 화재 사고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2014년 화재 당시 재난상황 보고서.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반응기를 설치해 사용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JTBC는 여러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원 측에 인터뷰와 실험실 내부 촬영을 요청했습니다. 연구원 측은 "역학조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어 협조가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이어진 서면 질의에서는 "환기시스템 성능에 문제가 없었지만, 2014년 실험실 환기시스템 재정비 차원에서 개별 덕트 설치 및 모터 교체 등 보완 조치를 수행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연구원 직원들에 따르면, 2014년 화재 사고 이후 환배기 시설을 재정비했다고 합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실험동(Pilot Plnat 1동)에서는 2014년 2월 큰 불이 났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소방서 추산 2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JTBC는 당시 재난상황 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이 보고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결과 등을 토대로, 수열합성 반응실험 중 반응기가 폭발해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어 "반응기는 납품받아 설치하기에 앞서 제조자가 고용노동부 장관이 실시하는 안전인증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반응기를 설치하여 사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에도 안전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났다는 것입니다.

연구원 측 설명대로 환배기 시설을 정비했다고 해도 이 문제는 과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김형렬 교수(직업환경의학과장)는 "암은 잠복기를 거쳐서 발생하기 때문에 5년 전, 10년 전, 15년 전 작업환경이 어땠는지가 업무 관련성을 평가하는데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향후 산업재해 역학 조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부분입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 입수…4년 연속 "보호구 착용·물질안전보건자료 게시 미흡"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2013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


JTBC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42조에 따르면 유해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서는 6개월에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작업환경을 측정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는 측정을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고, 지방고용노동관서는 필요할 경우 사업장을 점검하거나 시정 조치를 해야 합니다.

2013년 하반기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에는 "보호구 착용과 MDSD(물질안전보건자료) 표지판 부착 상태가 미흡하다"고 돼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41조에 따르면, 유해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서는 해당물질의 취급주의 사항과 건강유해성, 물리적 위험성 등을 기재한 자료(MSDS)를 비치해야 합니다. 사업주는 관련 내용을 교육할 의무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호구 착용과 물질안전보건자료 게시에 대한 지적은 2013년과 2014년은 물론 2015년 상·하반기, 2016년 상·하반기에도 되풀이 됩니다. 2017년과 2018년에도 "방독마스크 등 보호 장구 착용이 다소 미흡하다"고 돼 있습니다.

●벤젠, 노출 기준보다 낮았지만…전문가들 "0.1ppm 이상은 유의미한 수치"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2013년 하반기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 청정연료 및 에너지변환 실험실에서 벤젠 0.1863ppm이 검출됐습니다.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2015년 상반기 작업환경측정에서는 유기전자소재 실험실(0.1016ppm)과 그린촉매 연구실(0.1744)에서 벤젠이 나왔습니다.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부소장,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김형렬 교수,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 공유정옥 부센터장. 이들은 모두 "이 연구소의 벤젠 검출량은 기준치 보다 낮지만, 유미한 노출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부소장,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김형렬 교수,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 공유정옥 부센터장. 이들은 모두 "이 연구소의 벤젠 검출량은 기준치 보다 낮지만, 유미한 노출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부소장,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김형렬 교수,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 공유정옥 부센터장. 이들은 모두 "이 연구소의 벤젠 검출량은 기준치 보다 낮지만, 유미한 노출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2013년 하반기, 이 연구원의 벤젠 청정연료 및 에너지변환 실험실에서는 벤젠이 0.1863ppm 검출됐습니다. 2015년 상반기에도 유기전자소재 실험실(0.1016ppm)과 그린촉매 연구실(0.1744)에서 벤젠이 나왔습니다. 당시 노출 기준(1ppm)은 물론 현재 노출 기준(0.5ppm) 보다 낮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안전하단 의미는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0.1ppm 이상은 유의미한 수치"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ational Institute of Occupational Safety & Health· NIOSH)은 벤젠 노출 기준을 0.1ppm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부소장은 "벤젠은 0.1ppm 수준에서도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노출 기준을 0.1ppm 수준으로 낮추자는 제안과 검토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흄 후드에서 작업을 한다면, 0.1ppm 이상 나오기가 쉽지 않다. 실험실 조건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경기 동부 근로자건강센터 공유정옥(직업환경의학전문의) 부센터장은 "벤젠은 불검출이 나와야 맞다"고 전제한 뒤, "호흡하는 공기 중에 벤젠 노출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잘 관리되지 않았단 증거다. 노출기준보다 낮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의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의 노출기준 고시를 보면, "유해인자에 대한 감수성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고, 노출기준 이하의 작업환경에서도 직업성 질병에 이환되는(걸리는) 경우가 있으므로 (중략) 노출기준 이하의 작업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업성 질병의 이환을 부정하는 근거 또는 반증자료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김형렬 교수(직업환경의학과장)는 "평소에는 그것 이상의 값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작업환경측정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것입니다. 해당 사업장에서 수시로 유해물질을 다뤄도 측정은 6개월에 1번뿐이기 때문입니다. 연구 노동자는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와는 근무 형태가 다릅니다. 매일 똑같은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시기에 유해물질에 급격히 노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험과정에서 벤젠을 많이 써도, 측정 당일에 안 쓰면 그만입니다. 관련법은 연구 노동자의 특수성을 잘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적 유해물질은 1000개 미만…실험실에선 위험성 모르는 신물질도 다뤄

그나마 법적으로 노동자의 지위를 갖고 있는 연구자의 차라리 사정이 낫습니다. 이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한 화학연구자들의 유족도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아 산업재해를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실험하는 대학원생 등은 법적으로 노동자의 지위를 갖지 못해 상황이 더 열악합니다.

대학실험실에서 잇따라 대형 사고가 터지자 2005년 연구실 안전 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연안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법은 국공립 연구기관은 물론 대학까지 적용대상입니다. 과기부는 연구 시설의 안전 진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습니다.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순천향대학교 박정임 교수 등이 올해 한국산업보건학회지에 발표한 '유기합성실험실 연구자의 단위작업별 노출 평가' 논문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학의 연구시설은 안전실태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순천향대학교 환경보건학과 박정임 교수 등은 올해 '유기합성실험실 연구자의 단위작업별 노출 평가'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서울 및 경기지역 소재 종합대학교 2곳 4개 화학실험실에서 유해물질 노출 수준을 측정한 내용입니다. B대학교 유기금속 화학실험실에서는 벤젠이 검출됐는데, 수치는 0.09ppm, 0.15ppm, 0.20ppm으로 고용노동부가 정한 기준(0.5ppm) 보다는 낮았습니다. 하지만 미국 NIOSH 노출기준(0.1ppm)을 초과했습니다. 박정임 교수는 "논문을 쓸 때 까지만 해도 실제 사례를 찾지 못했는데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복수 직원이 백혈병에 걸린 것은 실험실 환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주목할 만한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인자는 약 190종입니다. 고용노동부의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의 노출기준 고시'에서 노출기준을 정해 놓은 유해물질은 731개입니다. 하지만 실제 실험실에서 쓰이는 물질은 수 만 가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연구에서는 위험성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물질을 쓰기도 합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은 유해물질 제조를 금지하고 있지만, 연구 목적은 예외로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한 화학연구자는 "실험의 특성상, 열정적인 연구자가 더 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국제암연구소 "전체 암의 5%는 직업성"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문제는 화학연구자 등 다수 노동자들이 발암물질에 노출되면서도, 적극적으로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암을 작업 환경과 연관 짖지 않고, 개인적 질병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내놓은 '암의 원인별 기여위험도'에서 직업은 5%를 기록했습니다. 100건의 암 발병 중 5건은 직업적 원인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흡연(30%)과 음식(30%) 보다는 낮지만, 유전(4%)이나 음주(3%), 방사선(3%) 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우리나라의 직업성 암 부담연구(손미아, 2010년)' 결과도 이와 비슷합니다. 전체 암 발병의 4.7%가 직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악성중피종의 경우 100%, 폐암은 30.8%, 방광암과 백혈병은 9.3%, 간암과 후두암은 6.1%가 직업적 원인이 기여해 발병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직업성 암 인정 현황을 보면 아직 유럽 국가들과 격차가 큽니다. 고용노동부가 2012년에 낸 자료를 보면, 암 1만 건 당 직업성 암의 건수는 독일이 51.4건, 핀란드가49.5건을 기록했습니다. 프랑스(36.0건), 영국(33.3건), 벨기에(32.2건) 등도 모두 30건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독일의 1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3.6건이었습니다. 우리의 작업 환경이 유럽 국가보다 더 나아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유럽에 비해 직업상 암 산재 신청 건수가 절대적으로 적다"고 말합니다.

●전체 암 5%가 직업성이라지만…2015~2017년 전체 암 0.1%만 산재 신청

 
[취재설명서] 백혈병 10명 중 1명은 직업성…산재신청은 0.56%뿐


정부는 지난 12월 23일, 2017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발표했습니다. 2015년(21만 6542명)과 2016년(22만 9180명)에 이어 2017년(23만 2255명)에도 암 발병자은 20만 명을 넘었습니다. 전체 암 중 직업성 암이 5%라고 가정하면, 단순 계산해도 1만 명 이상이란 숫자가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직업성 암 산재 신청은 2015년 180건, 2016년 220건, 2017년 268건에 불과합니다. (자료: 한정애 의원실) 암 발병 건수 대비 0.08%(2015년), 0.1%(2016년), 0.12%(2017년)밖에 안 되는 수치입니다. 2015~2017년 3년 통계를 합하면, 전체 암 발병 건수 중 0.1%만 산재 신청을 한 것입니다. 직업성 암 산재 신청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올해도 11월까지 300건을 넘지 않았습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문제가 된 백혈병은 발병 10건 중 1건이 직업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3278명), 2016년(3430명), 2017년(3366명) 매해 백혈병에 걸린 사람은 3000명을 넘었습니다. 산술적으로 백혈병 발병자 중 매년 300명 이상은 직업성 암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2015년(15명), 2016년(21명), 2017년(20명) 백혈병 산업재해 신청자는 매년 20명 내외였습니다. 3년 통계를 합하면, 전체 백혈병 발병 건수의 0.56%에 불과합니다. 올해도 11월까지 백혈병 산업재해 신청자는 21명뿐입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70%를 넘는 등 직업성 암 산재승인율이 올라가고 있지만, 재해 당사자들은 "조사와 판정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힘들다"로 토로합니다. 올 1월엔 폐암에 걸린 노동자가 신청 953일 만에 산재 인정을 받았지만, 2월엔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가 1160일을 기다리고도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백혈병 등 직업성 암 문제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삼성과 10년 넘게 싸우며 널리 알려졌습니다. 2017년 산재 인정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2018년엔 삼성전자가 공식사과를 했지만 이미 50명이 넘는 노동자가 숨진 뒤였습니다. 반올림과 삼성은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 공개 여부를 두고 여전히 법정 다툼 중입니다.

'하나의 직업병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이 필요하다' 직업 암의 역사를 요약한 전문가의 말입니다. 현재 법이 인정하는 유해물질은 대부분 누군가의 죽음을 대가로 그 위험성이 공인된 것들입니다. 학계에 보고된 최초의 직업성 암은 250년 전 굴뚝청소 노동자들의 음낭 암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체구가 작다는 이유로 굴뚝에 들어간 어린이였는데, 20세 이전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죽음들이 쌓인 뒤에야 영국 정부는 어린이 굴뚝 청소를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 현장에서는 많은 유해물질이 쓰입니다. 특히 실험실에서는 때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미지의 물질도 다룹니다. 그래서 "위험성이 입증된 물질을 쓰지 말자고 할 것이 아니라, 안전하다고 확실히 검증된 물질만 사용하자"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윤과 연구도 목숨에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마리 퀴리와 같이 훌륭한 연구자들이 나오길 바라지만, 그녀처럼 직업성 암으로 죽는 연구자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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