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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명꼴로 사라진 장병들…군은 '수상한 뒤처리'

입력 2019-12-18 22:42

'군 자살 의문사' 추적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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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자살 의문사' 추적보도


[앵커]

오늘(18일) 뉴스룸이 집중해볼 사안이 있습니다. 작년 말부터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 위원회가 군대에서 벌어진 자살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지난 9월에는 가혹행위로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취재진도 이처럼 군이 일방적으로 자살로 발표했던 의문의 사건들을 추적해왔습니다. 매일 1명 이상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진 장병들, 정작 그 부모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들이 왜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 이유를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유선의 기자입니다.

[기자]

올해 90살인 오경배 할머니입니다.

아들 박세형 이등병이 숨졌다는 전보를 받은 건 46년 전, 남편 기일 전날 밤이었습니다.

[오경배/박세형 이등병 어머니 : 가난해도 (제삿)밥이라도 떠놓으려고 그릇을 닦는데 어제저녁에 죽었다고.]

차비를 빌려 최전방 파주로 달려갔지만 맞아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경배/박세형 이등병 어머니 : 부대장이 어디가 아파서 침을 맞는 중이라면서 아침에 일찍 갔는데 점심 먹을 때까지도 침을 맞고 안 내려왔어.]

뒤늦게 아들의 시신을 보여줬지만 차마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오경배/박세형 이등병 어머니 : 무서워서 걔 앞에 가지도 못 했어, 내가. 발도 못 만지고 그냥 저만치 서서 덜덜 떨고…]

당시 군에선 아들이 참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참호에 함께 있었다는 병사 2명은 영창에 갇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군은 자살한 증거가 있다고 했지만 지난 46년 동안 증거는 물론 유품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망진단서를 주지 않아 사망신고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3년 뒤 아들에게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나왔습니다.

소집에 응하지 못하자 이번엔 헌병들이 찾아왔습니다.

[오경배/박세형 이등병 어머니 : 아드님 어디 있냐고 그래서 이놈들아 내가 찾아야겠다, 너희들이 찾아서 잡아가라. 그러면 상금 주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내 신상에도 좋지 않대. 나도 구속이 된대.]

몇 년 뒤 떼어본 호적등본엔 육군참모총장이 아들의 사망신고를 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자살했다는 내용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썼다가 지웠습니다.

오씨의 계속된 요청에 육군본부는 2012년에야 국민권익위로 가라는 안내장을 보냈습니다.

권익위로 갔지만 다시 육군으로 가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오경배/박세형 이등병 어머니 : 제발 좀, 한이나 풀고 죽으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어.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

박세형 이등병이 군에서 숨진 건 1973년입니다.

이 시기, 1970년대 10년 동안 군이 자살했다고 발표한 군인의 수는 3863명에 달합니다.

1년에 386명, 하루 1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겁니다.

군이 1948년 창군 이후 71년여 동안 비순직 결론을 내린 장병의 수는 3만7958명입니다.

3분의 1인 1만2984명은 자살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 가운데 78%인 1만177명이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집중돼 있습니다.

최근 군내 자살은 크게 줄었지만 군 기록엔 1990년대에도 연평균 100명이 넘는 장병이 자살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들이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 1990년 이후 군 의문사도 추적해 봤습니다.

친정어머니 장례를 치르던 이묘소 씨에게 군인 2명이 찾아온 건 1993년 11월.

갑자기 이씨 부부를 부대로 데려간 군인들은 정문을 통과한 뒤에야 아들 민상기 이병이 숨졌다고 말했습니다.

[이묘소/민상기 이병 어머니 : (이유를) 이야기하라고 해도 안 하고, 딱 부대에 도착하니까 죽었습니다 그러는 거야.]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자책해서 자살했다면서도 증거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엄마에겐 아들이 숨진 현장도 보여주지 않고, 글 모르는 남편만 들여보내 어딘가에 도장을 찍게 했다는 겁니다.

[이묘소/민상기 이병 어머니 : 글 모르는 사람들만 뽑아가는 거야. 그래서 어디 가냐고. 나도 좀 따라가겠다고 그랬더니 여자는 오면 안 된대요.]

한 달 뒤, 군에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아들 일로 군인 1명이 영창에 갔으니 보러 오라는 겁니다.

[이묘소/민상기 이병 어머니 : 왜 (이 사람을) 집어넣었느냐, 그건 말을 안 해줘요.]

영문도 모른 채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 사진을 갖고 다닙니다.

[이묘소/민상기 이병 어머니 : 아무리 바보 같은 부모라도 자식이 먼저 가면 항상 가슴에 묻고 살아요.]

장현일 씨의 아들 장길중 일병은 1996년 1월, 경북 칠곡 미군부대에서 숨졌습니다.

[장현일/장길중 일병 아버지 : 갑자기 애인이 변심해서 죽었다고 그러는데 누가 그걸 믿겠냐고.]

병사가 새벽 5시에 소총도 아닌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을 하면서도 증거나, 증언은 내놓지 않았습니다.

장 일병은 미군부대 특성상 매주 외박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진실을 알아보려 했지만 변호사들조차 고개를 저었습니다.

[장현일/장길중 일병 아버지 : SOFA 문제 때문에 소송해봐야 사람 찾지도 못 한다고…]

결국 군부대가 내미는 서류에 도장을 찍자 절차는 순식간에 진행됐습니다.

[장현일/장길중 일병 아버지 : 3일 만에 화장해 버리고 그냥 왔죠.]

3년 전 집에 불이 나 아들 사진조차 사라졌습니다.

아버지는 취재진과 함께 찾아간 장 일병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서 겨우 사진 한 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장현일/장길중 일병 아버지 : (아드님 맞죠?) 네, 맞네요.]

장 일병의 생활기록부엔 원만하고 긍정적인 학생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앵커]

방금 전해드린 1973년에 입대한 박세형 이등병, 그리고 1993년에 입대한 민상기 이병, 1995년에 입대한 장길중 일병의 사진을 보고 계십니다. 이들의 사망 과정에 대해서 알고 계신 분은 JTBC 또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02-6124-7531)로 제보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영상디자인 : 박지혜 / 영상그래픽 : 김정은·한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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