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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도쿄리포트] '숙적' 일본과 '난적' 대만 사이에서 길 잃은 한국 야구

입력 2019-11-18 16:08 수정 2019-11-1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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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제공

일본 3승, 대만 1승 1패, 한국 3패.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서 아시아 상위 3개국끼리 거둔 상대 성적이다.

대회 결과는 일본의 우승과 한국의 준우승. 한국은 충분히 선전했다. 다만 지난 17일 도쿄돔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일본을 만나 3-5로 패했다. 4년 전 초대 우승의 영광을 되풀이하는 데는 실패했다. 또 하루 전인 16일 일본과 슈퍼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도 딱 2점 차인 8-10으로 져 이틀 연속 한일전 패전을 안는 아쉬움을 맛봤다.

소득은 있었다. 일본은 이미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자동 진출했다. 2위 한국은 5위에 그친 대만을 누르고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에 걸린 단 한 장의 올림픽 진출권을 따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12년 만의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한국의 준우승에 유독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일본과 대만 가운데 어느 팀도 꺾지 못해서다.

한국, 일본, 대만은 오랜 시간 야구로 질긴 인연을 맺어왔다. 특히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 가운데에 위치한 한국은 '한 수 위' 일본과 '한 수 아래' 대만 사이에서 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다. '라이벌'이라는 관계는 무척 신비하다. 한국은 늘 일본과 만날 때마다 실력 이상의 경기를 펼쳤고, 대만 역시 한국만 만나면 기량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두 배로 긴장했다. 일본과 대만 양국이 모두 "한국은 무조건 꺾는다"는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과 일본의 '숙적' 관계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순간마다 장군과 멍군을 주고받으며 팽팽한 라이벌전을 펼쳤다. 그러나 대만은 한국이 드러내 놓고 라이벌이라 표현하지 않았을 뿐, 늘 빼놓지 않고 신경 써야 하는 '난적'으로 여겨졌다.

한국은 프로 선수가 참가하기 시작한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부터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까지 대만과 총 37경기를 치러 23승14패를 기록했고, 프로 최정예 멤버가 참가한 국가대표 경기로 범위를 좁히면 18경기 15승 3패라는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러나 대만전을 앞두고 한국 선수단은 늘 긴장한다. 몇 안 되는 패배가 한국에게 큰 충격을 안겨서다. 특히 2003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은 예선 1차전에서 대만을 만나 연장 10회 접전 끝에 4-5로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그 결과 2004 아테네 올림픽 티켓을 놓쳤다. 또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예선에서 대만에 2-4로 패하면서 금메달 전선에 이상이 생겼다. 두 대회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 역사에서 '참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끝내 승리로 이어지긴 했어도 내용상 진땀을 흘린 경기도 많았다. 방콕아시안게임과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결승전, 2008년 베이징올림픽 맞대결이 그랬다.

최근 기류는 더 좋지 않다. 이전에는 '기세'에서 밀렸다면, 최근에는 '실력'으로도 이기기 버거워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에이스 양현종을 내고도 은행원 출신 대만 투수에 밀려 패하면서 국제대회 대만전 9연승 행진이 깨졌다. 이어 이번 대회에서는 아예 0-7로 참패하는 굴욕을 맛봤다. 또 다른 에이스 김광현이 3⅓이닝 3실점으로 조기 강판했고, 타선은 투수로 전향한 지 얼마 안 된 대만 선발을 공략하지 못했다.

대만은 오랜 시간 한국에 "투수력과 수비가 약하고 타격의 정교함이 떨어지는 대신 큰 것 한 방이 있는 팀"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2017년 24세 이하 프로야구 선수들이 출전하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을 기점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김경문 대표팀 감독도 이번 대회 경기 전부터 "과거에는 대만이 '한 방만 조심하면 되는 팀'으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수비도 탄탄해졌고 투수도 많이 좋아졌다. 예전보다 확실히 짜임새를 갖췄다"고 경계했다. 그 우려가 경기 내용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대만은 기본적으로 '타도 한국'을 외친다. 한국이 "한일전에서는 가위 바위 보도 지면 안 된다"는 각오로 일본과 맞선다면, 대만이 한국을 상대로 비슷한 마음을 품는다. 점점 위로 치고 올라오는 대만 야구의 힘을 한국이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일본은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아시아 야구 최강국이다. 한국과 첫 경기에선 예상 외로 마운드가 무너지면서 1-7로 앞서던 경기를 8-10까지 추격당했지만, 결승전에선 투타 모두 스코어로 나타난 수치보다 더 확연한 우위를 뽐내면서 무난하게 승리했다. 객관적인 전력상 확실하게 우위에 있는 일본에 패했다고 해서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 야구의 냉정한 현실을 맞닥뜨렸다는 점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세 국가의 최종 목표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이다. 프리미어12는 올림픽을 향한 전초전에 불과했고, 이 대회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얻지 못한 대만은 세계 예선에서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도쿄에 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오랜 기간 치열한 삼국지를 그려 온 일본, 대만과의 승부에서 미래의 방향성과 현재의 현실을 엿봤다. 9개월 뒤 다시 금빛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한국 야구에 묵직한 숙제가 생겼다.


배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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