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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상자에 구멍 하나…'

입력 2019-10-31 22:01 수정 2019-10-3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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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뭐 그리 대단한 요구는 아니었습니다.

종이 상자에 손가락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을 뚫어 달라, 혹은 손잡이라도 좀 달아달라는 요구.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근골격계 질환으로 병원 치료받은 대형마트 노동자 69.3%
- 자료 : 마트산업노동조합,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하루에도 수백 번씩 무거운 간장이며 세제며, 설탕, 통조림 상자를 옮기다 보니 관절에 심하게 무리가 간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지요.

최신장비를 갖춰달라는 요구도 아닌 단지 구멍 하나.

<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 5kg 이상을 들어올리는 경우…손잡이나… 보조도구를 활용

심지어, 법에도 명시가 되어 있다고 하는데…

사용자들은 비용을 문제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박스 제작사에 요구할 사항이지 우리에게 요구할 사항이 아니다'

2019년, AI와 드론이 득세하는 시대에 인간에게는 구멍 하나 허락되지 않은 노동의 풍경…

그들의 요구 역시 대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명을 지탱할 수 있는 안전줄 하나.

"안전줄 내리고 작업하려면 30분 이상 더 걸려…"

보기만 해도 아찔한 고공에 매달린 사람들은 시간과 효율의 논리에 밀려서 단 한 줄에 매달린 채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최근 3년간 외벽작업 노동자 25명 사망
- 자료 :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그 위험천만한 작업 끝에 숨진 노동자의 숫자가 자꾸만 더해지고 있지만.

이 역시 달라지지 않는 노동의 풍경.

[육해근/외벽작업 노동자 : 제 발밑에 의자가 어떤 상황인지 몰라요 눈으로 보지를 못하니까 경험으로 이렇게 앉는 거죠, 이렇게요]

"우리는 왜 죽은 자리에서 거듭 죽고, 넘어진 그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작가는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서 소멸하고 이윤은 위로 올라가서 쌓이는" 세상을 한탄했습니다.

4차 산업과 전기자동차, 인공지능 따위의 첨단의 단어들이 난무하지만 정작 남루한 혹은 잔인한 세상…

얼마 전 노동의 현장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만든 모임의 이름은…

그래서 '다시는'이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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