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검열이란 이름으로 싹둑…'필름 조각' 세상 밖으로

입력 2019-10-29 21:37 수정 2019-10-30 13:49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트위터


[영화 '오발탄' (1961) : 가자, 모두들 푸른 곳으로 가는데…]

[앵커]

1961년 영화 '오발탄'은 정부가 검열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대사가 문제가 돼서 상영을 멈추게 됩니다. 2년이 지나서야 겨우 다시 극장에 걸렸지만 "가자"라는 대사는 아예 빠졌습니다. 당시 '검열 이유서'에는 "가자"라는 말이 '지나친 현실 도피를 의도했다'고 봤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말도 안되는 이유죠. 올해가 백 년이 된 한국 영화, 오늘(29일)은 이렇게 '검열'이란 이름으로 시대마다 싹둑싹둑 잘려나간 영상들이 공개됐습니다.

강나현 기자입니다.

[기자]

[영화 '자유부인' (1956) : 왜 이러는 거야? 아이러브유. 마담!]

춤바람이 난 교수 부인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상영 전날까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다, 네 군데가 잘린 채 겨우 세상에 나왔습니다.

입맞춤과 포옹 장면이 문제였습니다.

1919년, 영화 '의리적 구토'로 첫 걸음을 뗀 우리 영화 역사, 그러나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 영화 역시 검열과 통제를 받았습니다.

한국전쟁 뒤 시작된 분단 현실은 '반공'에 어울리지 않는 영화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현실 비판에 날 세우던 1970년대 유신 체제에선 무기력한 청춘의 모습도 잘려나갔습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 (1975) : 이 세상 모든 것은 가짜 아닌 게 없다!]

영화는 오직 희망과 명랑함만 비추라던 시절.

사회의 어둠과 절망을 내보인 장면은 소리 없이 지워졌습니다.

[영화 '구로아리랑' (1989) : 가장 피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 농민들이 가장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문제야!]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시나리오 사전 심의가 사라졌고 96년엔 영화 사전 심의 자체가 위헌으로 결론나면서 검열은 이젠 과거의 이야기가 됐습니다.

[김수용/영화감독 : 우릴 괴롭히지 않았으면 우리 영화는 30년에서 50년은 앞질러 갔을 거예요. 봉준호가 50년 전에 태어났을 거라고요.]

한국영상자료원은 내년 3월까지, 영화 속 검열 영상과 서류를 통해 창작의 자유를 되짚어보는 전시회를 엽니다.

(화면제공 : 한국영상자료원)
(영상그래픽 : 박경민)

관련기사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