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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코끼리는 어떻게 생겼나?'

입력 2019-10-16 22:15 수정 2019-10-16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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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그가 공을 받아내는 모습은 마치 코끼리가 비스킷을 받는 모습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1964년 실업 야구팀 크라운맥주의 4번 타자 였던 김응용 선수.

우리에게는 김응용 감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에게 '코끼리'라는 별명을 붙여준 사람은 최초의 야구 해설가로 알려진 손희준 캐스터로 그는 1964년 경기도 전국체전 때 동아방송 해설가로 처음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덩치마저 커다란 선수가 1루에서 버티고 있는 모습은 어떠했을까.

정말 그는 코끼리와도 같았을까.

사람들은 상상했을 것입니다.

최초의 한국산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66년 금성사가 만든 19인치 텔레비전이었으니까, 서민에게 텔레비전이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으니, 코끼리 같은 선수가 1루에 버티고 서 있다가 상대편의 공을 코끼리가 비스킷 받아 먹는 것처럼 받아낸다는데 그것은 정말일까… 

궁금하기도 했겠지요.

지직대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가면서 보지 않고 봐야 하는 경기란 조금은 꿈과 같은 상상의 영역이었을 것입니다.

"골이 들어가면 봉홧불이라도 올려야 하는 건가."

어제(15일)의 그 경기 역시 모두의 마음에 저마다 다른 상상화를 남겼습니다.

함성도 응원도 없었던 경기장.

5만 명이 가득 들어찰 수 있다는 관중석은 텅 비어서 선수들은 그 적막한 잔디밭을 뛰어야 했고…

궁금한 이들은 무려 네 단계를 거쳐야만 그곳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깝지만 가깝지 않은 사이.

손에 잡힐 것 같지만 늘 잡히지 않는 사이 이번에 치른 그 무관중 경기는 우리가 환상을 버리고 직시해야 할 냉정한 남과 북의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코끼리처럼 공을 받아내는 김응용 선수"

그 시절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며 기분 좋은 순간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낭만이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그리고 이제야 뒤늦게 그것도 다녀온 이들의 입을 통해 그 시간을 전달받은 우리의 마음은, 지직거리던 그 시절 낡은 라디오 소리만큼이나 여전히 선명하고 개운하지 못합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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