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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나흘 전 김재규, 박정희에 '부마항쟁 원인' 보고했지만…

입력 2019-10-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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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6 나흘 전 김재규, 박정희에 '부마항쟁 원인' 보고

[앵커]

저희가 입수한 기밀 중에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 피격 나흘 전에 부마 항쟁과 관련해서 면전에서 보고를 한 것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부마 항쟁을 힘으로 찍어누른 박정희 정권의 시각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부마 항쟁에 대한 의견차가 10·26 발발로 이어졌다는 분석에 힘을 싣는 중요한 자료인 것입니다.

김태영 기자입니다.

[기자]

1979년 보안사령부가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주재로 부마항쟁 대책회의가 열렸다는 내용입니다.

날짜는 10·26 고작 나흘 전, 그러니까 10월 22일입니다.

참석자 명단에는 국무총리와 내무·국방·법무장관이 망라돼있습니다.

그런데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이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한 보고입니다.

제목은 '부마 사건에 대한 계층별 요인 분석 결과' 부마항쟁의 원인을 분석해놓은 것인데 상인들은 세금 때문에,시민들은 잘못된 시정 때문에,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제약받는 노동권 때문에 시위에 뛰어들었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김영삼 의원 제명으로 지역감정이 불거져 항쟁이 일어났다고 보고한 전두환 사령관의 보안사와는 시각차가 큽니다.

이 같은 기록은 김 전 부장이 직접 남긴 진술과도 일치합니다.

[김재규/전 중앙정보주장 (1979년 12월 8일/자료제공 : 유튜브 AaronSonghoe) : 체제에 대한 반대, 조세에 대한 저항, 물가고에 대한 저항, 정부에 대한 불신 이런 것이 전부 작용을 해서 그대로 각하에게 보고를 드렸습니다.]

[차성환/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 : '부마항쟁이 전국화 된다'라는 것이 김재규 부장의 판단이었죠. 대책회의에서 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하지만 김 전 부장의 의견은 외면당했고, 중정의 보고서는 모두 파기처분됐습니다.

유출 시 유언비어가 유포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부마항쟁을 겪으면서 생긴 권력층의 균열이 10·26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입증하는 정황 증거인 셈입니다.

[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이후에 벌어질 상황에서 그 당시 지배 세력 내부의 분열의 하나의 단초를 보여주는 걸 수도 있다는…]

 
10·26 나흘 전 김재규, 박정희에 '부마항쟁 원인' 보고했지만…

■ 알리지 못한 '부마항쟁'…계엄군의 집요한 '보도 지침'

[앵커]

사실 한국 현대사에서 부마항쟁은 민주화의 도화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죠. 왜 그런지 찾아봤더니 항쟁 당시부터 박정희 정권이 집요하게 실시했던 언론통제가 있었습니다. 관련 자료를 저희가 입수했습니다.

김태영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부마항쟁이 한창이던 1979년 10월 18일 작성된 육군의 상황일지입니다.

부산 지역에 계엄령이 떨어진 뒤 8시간 만에 언론통제도 단행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언론사 보도에 대한 검열은 시 공보실에서 계엄군의 보도검열단이 실시했습니다.

검열은 매체별로 맞춤형으로 이뤄졌습니다.

신문들은 인쇄기가 돌기 직전에, 방송은 속보를 내지 못하도록 수시로 검열을 한 것입니다.

종합해보면 하루 24시간 내내 부마항쟁의 진상이 알려지지 않도록 틀어막은 셈입니다.

보도지침의 기준도 모호하기 짝이 없습니다.

국민여론을 자극하면 안 된다거나, 국가 이익에 위반돼선 안 된다는 식으로 느슨한 기준을 정해놓고 이를 근거로 부마항쟁 보도 자체를 막은 것입니다.

[차성환/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외 상임위원 : 지침의 내용이 너무 광범위하고 추상적이고 막연합니다. 계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제한을 가하는 게 아니고 거의 모든 보도를 검열하게 두는 효과를…]

이렇게 철저하게 보도 통제가 이뤄진 탓에 부마항쟁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비해서도 관련 자료가 극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10·26 나흘 전 김재규, 박정희에 '부마항쟁 원인' 보고했지만…

■ '부마항쟁' 외신에 알려질라…기자들 미행까지 한 정황

[앵커]

영화 '택시운전'를 기억하시는지요. 독일 기자 1명이 광주민주화운동에 잠입을 해서 현장을 취재한 사실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에 앞선 부마항쟁 때 이미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까봐 박정희 정권은 전전긍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가 입수한 자료에는 부마항쟁 취재를 막으려고 외신기자들을 미행까지 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발견됐습니다.

황예린 기자입니다.

[기자]

영화 '택시 운전사'에는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담으려 한 외신기자의 노력과 이를 막으려 한 신군부의 횡포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에 앞선 1979년 10월 부마항쟁 때도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당시 육군 상황일지를 보니, 주요 외신기자들의 동향이 손에 잡힐 듯 기록돼있습니다.

10월 23일 저녁 6시 로이터 통신의 기자는 서울에서 택시를 탔고, 다음날 오전에 마산으로 이동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부산 시내에서 군인들을 만났다는 사실과, 미국 ABC 방송 기자가 부산시청 앞에서 장갑차를 취재하려던 것을 막아냈다는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미행을 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동선들입니다.

당시 부마항쟁을 취재했던 기자들은 이런 식의 간섭이 일상이었다고 말합니다.

[김탁돈/당시 국제신문 사진기자 : 군이 진주했으니까 그 앞에 장갑차가 보이고 가스차도 보이는데 (사진에서) 장갑차 쪽을 잘랐나 (추궁하더라). 그걸 (보도에) 쓰지 말라고.]

이렇게 보도를 쥐락펴락한 박정희 정권은 지역 언론사들은 물론 모든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를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화면제공 :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김탁돈 당시 국제신문 신문기자 / 자료제공 : 김병기 의원실)
(화면출처 : 미국 뉴욕타임스·미국 abc방송)
(영상디자인 : 조승우 박성현 / 영상그래픽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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