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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본적·주소 '화성'…"수감 시절 무죄주장, '이중적'"

입력 2019-09-21 09:01 수정 2019-09-2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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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력용의자 이춘재, 본적·주소 모두 '화성 진안리'였다

[앵커]

이춘재는 충북 청주에서 또 다른 성폭행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가 체포돼 수감중 입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장소와 떨어진 곳에서 저지른 범행이어서 연관성을 찾기가 어려웠는데요. JTBC 취재결과 이춘재의 본적과 주소지는 모두 화성이었습니다. 사건이 두 차례나 발생한 곳에서 아주 가까웠습니다. 처음 교도소에 입감 당시 주소도 이곳으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신아람 기자입니다.

[기자]

이춘재가 1994년 초 대전교도소에 수감될 때 등록된 본적은 화성 진안리, 지금의 진안동입니다.

집 주소 역시 진안동으로 등록돼 있었습니다.

본적과 주소지가 있는 진안동은 2차·6차 사건이 발생한 곳입니다.

또 이씨의 DNA가 확인된 5차, 7차, 9차 범행 장소와도 멀지 않습니다.

9차 장소는 집에서 불과 2km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마지막 10차 사건은 화성에서 1991년 4월에 일어났습니다.

이씨가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살해한 건 1993년 12월이라 2년여 사이 주거지를 화성에서 청주로 옮긴 것입니다.

수사가 처음 시작된 건 1986년이라 추가 범죄를 저지르고 수사망을 피해 빠져나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JTBC 취재결과 처제 살해 사건으로 붙잡힌 뒤 교도소에서는 초범으로 관리됐습니다.

당시 이씨가 수사를 받았는지에 대해 경찰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한편 혈액형이 다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청주에서 검거될 당시 확인된 이씨의 혈액형은 O형이지만 경찰이 밝힌 4차, 5차, 9차 사건의 용의자 혈액형은 B형입니다.

(영상디자인 :  박지혜)

 
이춘재, 본적·주소 '화성'…"수감 시절 무죄주장, '이중적'"

■ '잔혹 범행' 무기수 이춘재 ...현재 교도소 1급 모범수로

[앵커]

이씨는 지금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입니다. 수감 생활이 원만해 가장 좋은 등급인 1급 모범수로 분류돼 있습니다. 화성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뒤에는 독방으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수감 생활을 하며 '가구제작 전시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박민규 기자입니다.

[기자]

이춘재는 1995년 10월부터 부산교도소에서 만 24년째 복역 중입니다.

경비처우급은 S1등급, 다시말해 1급 모범수입니다. 

4개 등급 중 가장 높은 급수로 부산교도소의 경우 전체 수용자의 상위 10% 수준입니다.

이 급수는 죄질과 전과, 가족관계 등에 따라 입소할 때 정해지고 수형 생활 중 별도의 심사를 거쳐 달라집니다.

교도소 관계자는 JTBC 취재진에 "이씨는 가장 낮은 등급으로 수형생활을 시작했다"며 "특별히 규율을 위반하지 않고 생활해 시간이 지나면서 등급이 올라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씨가 다른 수용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평범하게 지내왔다고도 했습니다.

취재 결과 이씨가 올해까지 가족을 접견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2006년부터 접견이 가능해졌다는 일부 보도 내용과 달리 형이 확정된 1995년부터 접견 제한은 없었습니다. 

때문에 수개월 전까지 이씨는 어머니와 형제 등 가족과 지인을 매년 2~3차례 꼴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기수의 경우 수감 20년이 지나면 법적으로 가석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교정 당국은 이씨의 가석방을 검토한 적도 없고 고려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용의자로 지목된 이후 심적 동요를 일으킬 수 있어 이씨를 독방으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영상디자인 : 최수진)

 
이춘재, 본적·주소 '화성'…"수감 시절 무죄주장, '이중적'"

■ "수감 때 본 이춘재, 처제 죽였다면서 무죄 주장 '이중적'"

[앵커]

이춘재는 1994년 '처제살인사건'으로 재판을 받으며 대전교도소에 수감돼 있었습니다. 저희가 당시 같은 방에서 3달간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한 제보자를 만났는데요.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제보자입니다. 이 제보자는 이씨의 이중적인 행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태형 기자입니다.

[기자]

A씨는 1994년 여름, 이춘재를 대전교도소 안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습니다.

이씨는 당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준비하던 시기였는데, 이때 3달 동안 같은 방에서 생활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이씨를 조용한 사람으로 기억했습니다.

[A씨/이춘재 전 교도소 동기 : 혼자 말도 없고, 얼굴 한번 쳐다봤나. 신경 안 쓰고 다른 사람하고는 대화도 잘 안 하고, 사람이 되게 온순해 보이거든…]

A씨는 이씨의 얼굴이 1988년 7차 사건 뒤 만들어진 화성연쇄살인범의 몽타주와 거의 비슷했다고 전했습니다.

[A씨/이춘재 전 교도소 동기 : 눈매는 거의 비슷하고, 코만 좀 더 크고, 볼살이 약간만 들어가면 몽타주랑 거의 흡사한 거 같아요. 뽀얀 얼굴, 하얘요. 일을 안 한 손, 새끼손가락이 기억나요. 예뻤어요.]

25년이 흘렀지만, A씨는 지금도 이씨의 이중적인 행동은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A씨/이춘재 전 교도소 동기 : 처제가 굉장히 예뻤다. 그 말을 강조하더라고요. 예뻐서, 강간하고 죽이고, 사체 유기까지 하고, 가족이나 친지한테 걸릴까 봐 죽였다. 저한테 죽였다고 얘기를 다 해놓고 자기는 무죄다 억울하다.
죄책감은 말할 것도 없지, 그러니까 무죄라고 하지…]

이씨가 그 당시 교도소에서 다른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은 없었다고도 말했습니다.

이씨가 교도소 생활은 모범적이었지만, 위험한 요소가 많았던 인물이었다고 JTBC 취재진에 전했습니다.

[A씨/이춘재 전 교도소 동기 : (당시) 변호사 접견을 갔다 와서, 나는 무죄인데, 왜 자꾸 인정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별 욕을 다 했으니까. 내가 무죄인데 왜 인정하느냐, 끝까지 대법원까지 간다. 그 얘기가 생생해요. 내면에는 (감옥을) 나가야만 할 이유가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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