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화성사건 용의자, 계속 혐의 부인…수사 장기화 가능성

입력 2019-09-20 18:47 수정 2019-09-20 22:10

5시 정치부회의 #국회 발제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트위터

5시 정치부회의 #국회 발제


[앵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가 경찰의 3번째 조사에서도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팀 어제(19일) 형사와 프로파일러 등 7명을 이씨가 수감 중인 부산교도소에 보내 조사를 벌였죠. 하지만 이춘재는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무관함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춘재가 유력한 용의자임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양 반장 발제에서 관련 소식 짚어보겠습니다.

[기자]

네, 그렇습니다. 지난 18일 1차 조사 그리고 어제 2차 오늘 3차까지 조사가 계속됐습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이춘재 3번 다 혐의 부인했습니다. 때문에 수사 장기화 가능성 커 보입니다. 하지만 예견됐던 일입니다. 무기징역 받았지만 감방 안에서 고분고분 말 잘들어서 1급 모범수 됐는데 그래서 가석방 꿈도 꾸고 있는데 24년 만에 경찰들 다시 찾아와서 야! 너 범인이지?! 하면 아닌데요!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DNA와 이춘재의 DNA가 다를 확률 0.0000000000001%라고 합니다. 때문에 전문가들 이춘재에게서 자백을 받아내는 일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죠.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도대체 이춘재의 정체는 무엇이냐 도대체 어떻게 생긴 인간이냐겠지요. 오늘자 조선일보 1면 고등학교 시절 이춘재로 추정되는 사람 얼굴이 나왔습니다. 바로 이것인데요. 80, 90년대 사건 발생 당시 거의 유일한 몽타주였던 오른쪽 사진과 한번 비교해보시죠. 글쎄요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판단은 잘 안 섭니다.

자, DNA가 일치한다는 것 외에도 이춘재가 진범일 가능성 높여주는 또 다른 단서 확인됐습니다. 바로 이춘재가 사건 발생 당시 경기도 화성 그곳에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1963년 경기 화성시 진안리에서 태어나 마지막 10번째 사건이 있고서 2년 뒤인 93년까지 살았다는 것이죠. 더 섬뜩한 것은 모방범죄로 확인돼 범인이 잡힌 8차 사건 제외한 9건 중 6건이 이춘재 집 반경 3km 이내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자, 아시다시피 이춘재는 지금 부산교도소에 있습니다. 94년 충북 청주에서 살인사건을 저질렀다 꼬리가 밟힌 것이죠. 당시 부인과 아들이 있었습니다. 가정폭력을 일삼았습니다. 사람들이 있는 데서도 부인을 피가 날 때까지 폭행했습니다. 아들도 학대했습니다. 참다 못한 부인은 집을 나갔습니다. 가출한 아내가 집에 전화를 걸자 이춘재, 내가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아두라! 경고했습니다. 그 무서운 음모의 내막 20여일 뒤에 확인됐습니다. 바로 아내의 동생 처제를 살해했던 거죠. 처제를 집으로 불러 수면제를 탄 음료를 먹인 뒤 무참히 살해했던 것입니다. 

이춘재는 그때도 완전범죄를 꿈꿨습니다. 처제의 아버지 그러니까 장인과 함께 처제의 실종신고를 했죠. 이윽고 피해자 시신이 이춘재 집 근처 철물점 야적장에서 발견됐습니다. 시신은 방어흔, 그러니까 외부 공격에 저항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경찰은 면식범 소행 가능성을 의심했습니다. 가족들을 탐문했습니다. 모두가 울고 있었지만 단 한사람, 이춘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파출소에 연행됐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당시 수사 형사의 증언입니다.

[김시근/당시 수사 경찰관 (음성대역)  : 뒷좌석에 타라고 했죠. 그러곤 제가 앞자리에 타서 뒤를 슬쩍 보는데 이놈(이춘재)이 다리를 부르르 떠는 거예요. 이놈이다. 100% 확신했죠.]

자, 여기서 생기는 의문점 하나. 이춘재가 붙잡혔던 1994년. 그때는 왜 화성사건과의 연관성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일까입니다. 당시 청주 경찰은 이춘재를 구속한 뒤 그의 본가였던 화성집도 수색했다고 합니다. 스타킹을 이용해 피해자를 결박한 점 등등 범행 수법이 유사하단 걸 전해들은 화성수사팀이 청주 경찰에 수사공조를 요청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춘재 24년 동안 감옥에서 말썽 한번 부리지 않고 1급 모범수로 지내면서 성실히 살았다고 하죠. 자, 그렇다면 그가 개과천선한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택도 없는 소리라고 잘라 말합니다. 무서운 형들이 가득한 교도소 환경이 그를 억누르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요.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CBS 김현정의 뉴스쇼) : 그것이 대부분 아주 연약한 여성, 예컨대 10대 여자들이나 뭐 나이가 많으신 여성들이 피해자가 됐거든요. 저항 능력이 없는. 교도소 안에는 대상자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기보다 체격이 큰 남자 수용자들 또는 뭐 그 교정직원들 사이에서는 사실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는 거죠.]

영화 살인의 추억, 영화에서는 화성사건 중 피해자가 농수로에서 발견됐던 2차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엔딩도 형사에서 영업사원으로 변신한 박두만이 근처를 지나다 다시 농수로 현장을 찾은 데서 끝나죠.

'옛날에 여기서 자기가 했던 일이 생각나서 진짜 오랜만에 한 번 와봤다'
- 영화 '살인의 추억' (2003)

예, 부산일보 보도입니다. 이춘재와 2년간 부산교도소에 함께 복역했던 A씨에 따르면 이춘재와 함께 교도소에서 '살인의 추억'을 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춘재는 영화의 마지막 엔딩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오늘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관련기사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