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상업영화로서 흥행에는 실패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관객들을 촉촉한 감성으로 물들일 것이라 예견됐던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정지우 감독)'은 추석 연휴가 한창인 14일까지 누적관객수 120만 명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손익분기점 200만 명을 넘어서지 못할 전망이다. 영화에는 꽤 큰 아쉬움이 남았지만, 분명 누군가에게는 인생영화가 된 작품이다. 과거를 추억했고, 현재를 돌아봤으며, 미래의 사랑에 설렌다는 관객들도 많았다. 청춘스타 김고은·정해인의 싱그러운 분위기를 담아냈다는 것도 '유열의 음악앨범'이 지닌 가치에 힘을 싣는다. 숱한 필모그래피를 통해 다양한 '사랑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 정지우 감독의 메시지는 이번에도 올곧다. '내가 보고싶은 영화', '만족도가 큰 영화'라는 자체 평가는 정지우 감독의 흔들림 없는 고집에 대한 진심어린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멜로 장르가 나와줬다는 것 만으로도 '반갑다'는 반응이 많다."흔쾌히 마음을 열어 주셔서 좋다. 감사하다. 사실 버릇처럼 흥행하는 분들은 마음이 좀 편할 수 있지만 난 아니다. 떨리고 긴장된다."
-'유열의 음악앨범' 기획이 시작된 계기는 무엇인가."'이런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내가 꼭 연출하지 않아도, 관객으로서 '이런 영화 보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쉬운 것 같지만 난이도가 꽤 높은, 어려운 작품이다. '누가 한다면 나는 기꺼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이 이야기를 들은 제작사 무비락 김재중 대표가 '충분히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결의를 보여줬고, 진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필모그래피를 아주 크게 나눠보면 '해피엔드'에서 '은교'로, 그리고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주인공들의 연령대는 어려졌고, 사랑은 시작점으로 돌아왔다."맞다. 이번엔 그 '처음'을 담아보고 싶었다. 사랑에 있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내면의 문제가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주된 관심사였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되게 무심하게 여기고 있는 면이 있는 것 같다. 현실적이건, 정서적이건 대부분 '상대가 어떤 사람이야'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데, '나의 내면이 상대에게 어떻게 작동되는가'를 가만히 따져 본다면 분명 굉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비슷한 꼴의 연애 대상을 찾는건, 비슷한 연애가 반복 된다는건 내 문제지 상대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 싶다가도 부정하고 싶어지는건, 어쩌면 알지만 외면하고 싶은 부분일 수도 있다."하하. 순간적으로, 1초라도 멈칫 하게 된다면 본인 안에 그 패턴이 분명 내제돼 있을 것이다. 이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 하나의 예로 들자면 자기만의 붕어빵 틀이 있는 것이다. 반죽을 바꿔도 그 틀에 들이 부으면 계속 같은 붕어빵이 나온다. 그런 상황들과 과정을 '유열의 음악앨범'에 녹여내고 싶었다."
-'은교'를 연출했을 당시에는 '청춘과 늙음의 경계에서 고뇌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진행할 땐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었나."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서 움찔할 정도로 '은교' 때 느낀 기분은 아주 선명하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나이 먹은걸 속여야겠다. 절대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웃음) '은교'에 비해서는 흔쾌한 마음이었다."
-'첫사랑'의 의미를 되뇌어 본다면."첫사랑이 결국 내사랑 아닐까 싶다. 당시에는 생각을 못했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이는 객관적인 상황이 되는 것 같다. 첫사랑의 패턴을 유심히 떠올려 보면, 나는 간과하고 있었지만 예정된 미래가 이미 쫙 펼쳐져 있었을 수도 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한 경우들에 좀 더 마음이 쓰인다."
-'유열의 음악앨범'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난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좋아한다. 진심으로 좋아한다. 관객 분들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낼 수 있다. 나 역시 모두 받아들이는 편이다. 하지만 개인 선호도를 따진다면 솔직히 좋다."
>>②에서 계속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사진=CGV아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