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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 누룽지' 사태 책임은 누가

입력 2019-09-11 06:02 수정 2019-09-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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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 누룽지' 사태 책임은 누가


한국은 ‘온라인 쇼핑 천국’이다. 언제 어디서나 가전, 식품, 생활용품 등 간단한 클릭만으로도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11조 1822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 대비 15.4% 증가했고, 6월에 비해서도 5.9% 증가한 규모다.

이처럼 한국의 온라인 시장 규모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쿠팡은 온라인 쇼핑업체 중 선두주자로 꼽힌다. 2018년 매출이 4조 4200억원을 상회했다. 하지만 외형만 훌쩍 커진 온라인 쇼핑업체들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이 적지 않다.

쿠팡 등은 온라인 쇼핑 중개 업체다. 결제정보의 중개 서비스와 통신판매의 중개 플랫폼을 제공하는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상품의 주문, 배송, 환불 등과 관련한 의무와 책임은 판매자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시스템은 책임론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장치다. 하지만 책임론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유통 최전선에서 소비자와 소통하는 임무를 맡고 있고, 포장과 배송 과정에서도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개 플랫폼으로서 입점 업체 관리 등의 책임이 분명하다.

지난 5일 소비자 제보·고발로 알려진 ‘구더기 누룽지’ 사태에서 1차 책임은 분명 누룽지를 제조한 제조사 A에 있다. 식품 위생 관리를 소홀히 한 부분을 일벌백계해야 한다. 식약처에 불량식품 신고도 접수됐기 때문에 A사는 검사의 결과에 따라 행정 처분이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소비자 고발에도 계속해서 문제의 제품이 유통되고 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유통 최상위 포식자인 유통 대행업체와 유통 플랫폼업체는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위치에 있다. 소비자의 불만이나 고발에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구더기 누룽지’ 사태에서는 유통 대행업체 B사와 쿠팡은 안이하게 대처했다. 책임을 떠넘기거나 치부를 감추는데 급급했다. 심지어 소비자를 능멸하는 태도까지 보여 공분을 샀다.



업체마다 ‘엇박자’ 조치, 고객 불편은 나몰라라


지난달 27일 소비자 C씨는 쿠팡에서 구입한 ‘가마솥맛 누룽지’에서 구더기를 발견하곤 고객센터를 통해 문의했다. 두 아이도 함께 해당 제품을 먹었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난 그는 구더기가 나온 사진을 함께 올리며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오후 1시45분에 문의한 내용의 답변이 3시간35분 뒤에야 도착해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쿠팡은 기계적인 대응과 답변으로 소비자의 화를 더욱 키웠다. 쿠팡의 상담사는 “상담사 임의로 처리가 어려우며 아래의 경로를 통해 고객님께서 직접 교환과 반품 접수를 진행해주시면 처리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회사에서 정해진 상담사의 매뉴얼은 식품에서 혐오스러운 이물질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직접 환불 처리가 불가하다. 소비자가 마이쿠팡에 들어가서 직접 반품 신청을 해야 처리되는 번거로움을 떠안아야 한다.

쿠팡은 C씨의 문제의 제품에 대해 반품 처리가 되지 않았던 연유를 소비자 탓으로 돌렸다. 쿠팡 홍보팀 관계자는 “두 차례에 걸쳐 문제가 된 제품의 해당 사진(구더기)을 보여달라 요구했지만 소비자가 보내지 않았다”며 “마트에서도 문제의 식품을 직접 보여줘야 교환이나 반품이 가능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소비자가 쿠팡 고객센터의 1대1 채팅 창을 통해 문의할 때 문제된 제품의 사진을 올려놓았음에도 쿠팡 측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 소비자의 화만 키운 꼴이다.

쿠팡은 자정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받아볼 수 있는 ‘로켓배송’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자사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핵심 서비스다. 하지만 로켓배송은 오배송 문제로 종종 잡음을 일으킨다. A씨의 경우 같은 ‘가마솥맛 누룽지’ 제품을 2개 주문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1개만 배달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인지한 A씨는 쿠팡에 1개의 상품이 오지 않았다고 문의했고, 그제야 미배송을 확인한 쿠팡은 부랴부랴 뒤늦게 제품을 보냈다.

주문한 건이 제대로 배송되지 않았음에도 쿠팡은 하루 17만개의 유통 중 일어나는 작은 사고는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쿠팡의 관계자는 “소비자가 미배송 건을 알려주지 않으면 저희 쪽에서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구조”라고 항변했다. 소비자가 주문을 제대로 했음에도 배송 착오가 일어난 건 유통업계에선 큰 사고다.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의 신뢰가 깨질 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쿠팡은 이러한 상거래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간과하고 있다. 배송 실수 시 ‘적립금만 주면 그만’이라는 식의 쿠팡의 보상 정책에 코웃음을 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구더기 누룽지' 사태 책임은 누가

사고 처리 미흡, 아마추어식 행정 눈살


유통 대행 B사는 2018년 기준으로 275명의 직원에, 232억원의 매출을 올린 강소기업이다. 기타 곡물 가공품 제조업 산업군에서 4위 규모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업체. 하지만 행정은 아마추어 수준이다. 소비자 C씨와 첫 소통한 B사의 영업 담당자는 직접 방문이나 수거에 대해 먼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영업 팀장이 뒤늦게 '직접 찾아 뵙고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영업팀장은 소비자에게 장문의 사과의 글을 남기며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마지막 보낸 삽화 한 장이 소비자를 분노하게 했다. ‘여름철 이물 예방을 위한 식품보관법’이라는 제목이 달린 삽화에는 혐오스러운 벌레들이 라면봉지를 뚫고 꿈틀꿈틀거리고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캠페인용으로 만든 삽화인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쾌했다. C씨는 “저한테 보관을 잘못했다는 언급을 하려는 의도로 느껴져 기분이 굉장히 나빴다”고 토로했다.

‘구더기 누룽지’ 제품에 대해 지난 5일 불량식품 신고를 접수한 식약처는 이물질의 유입 경로에 대한 검사에 돌입했다. 유통 단계부터 시작해 제조 단계 등까지 차례로 조사할 예정이다. 행정 처리 기간은 보통 7일이 소요된다고 한다.

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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