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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일제가 철거한 '돈의문'… 일제가 보수한 '독립문'

입력 2019-08-20 21:27 수정 2019-08-2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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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915년 돈의문은 헐렸습니다.

한양도성 4대문 가운데 하나…

도로 확장이 명목상 이유였지만 문을 강제로 헐어버린 일본의 속마음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했습니다.

반면 일제 강점기에 오히려 단단해진 문도 있습니다.

바로 독립문.

일제는 거금을 들여서 망가진 문을 보수했고 아예 독립문을 조선의 문화재로 지정했습니다.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애초에 독립문이 세워진 이유는 '일본' 이 아닌 '청'으로부터의 독립.

"청일전쟁으로 청과의 조공 관계가 폐지되자…조공 관계의 상징물이었던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움으로써…"
- 김윤희 < 이완용 평전 >

일본의 속내를 들여다보자면 그 독립문은 '조선'과 관련해서 '청나라'는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는 선언이자 경고인 셈이었습니다.

당시 독립문 건립에 팔을 걷고 나선 이들 역시 그 시대의 이른바 '선각자'를 자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독립협회의 초대 위원장이자 독립문 건립에 가장 많은 기금을 냈으며 현판까지 직접 썼다는 설이 있는…

그의 이름은 '이완용'

"국가로서 독립할 실력이 없이 독립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일본과 제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김윤희 < 이완용 평전 >

이후에 그는 조선이 "국가로서 독립할 실력이 없어 일본과 제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친일을 통한 실력양성을 주장했습니다.

"이완용은 백작 작위와 함께 15만원의 은사공채를 받았고…조선 귀족으로는 유일하게 후작으로 승격된 것은 3·1운동 진압의 공로 때문이었다."
- 김윤희 < 이완용 평전 >

결국 선각자를 자처했던 이완용은 한·일 병합과정에서의 공로가 인정돼서 '조선 귀족'의 작위를 받았고, 3·1운동 진압의 공로를 인정받아 조선 귀족으로는 유일하게 후작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선각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그렇다면 누구인가…

일본의 경제 도발에 작지만 묵직하게 움직이는 시민들을 낮추어보는 시선들…

"반일 종족주의"
"시대착오적"
"저급한 반일감정"
"집 나간 한국인의 이성"

이들은 역사 속, 빗나간 자칭 선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민들의 합리적인 움직임을 비이성으로 매도한 뒤에 자신들만이 이성적이며 미래지향적이라는 오만의 성을 높이 쌓았습니다.

오늘 전해진 그의 발언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친일이 애국"
"2등 국민"
"미개한 나라에…구더기들"
- 문화체육관광부 한모 국장

지난 191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헐린 돈의문.

100여 년이 지나서 우리는 그 문을 어렵게 복원했습니다.

실제로는 볼 수 없지만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서 문이 있었던 자리를 비추면 돈의문은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우리와 마주하게 되지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되살아난 또 하나의 증강현실은…

바로 시민의 합리성과 시민의 힘을 얕잡아 보는 빗나간 자칭 선각자와 애국자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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