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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히로시마에서…'

입력 2019-08-14 21:24 수정 2019-08-1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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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내 눈앞에서 날던 고추잠자리… 담장 위에 앉았다… 그 잠자리를 향해 손을 뻗었던 그 순간…"

그렇습니다. 그 순간은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군 폴 티베츠 대령이 조종했던 B-29기 '에놀라 게이'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시간이었습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는 처음에 말씀드린 그 글귀와 함께 그들이 겪은 전대미문의 비극이 매우 자세히 재연되어 있었습니다.

일전에 '앵커브리핑'에서 말씀드렸던 일본의 방위상이나 산케이신문 사장 등과의 인터뷰 일화는 2008년에 있었던 일이고, 저는 그 당시 일본 외무성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 중이었지요.

그들은 저에게 일본 방문 중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왔고…

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제게 꼭 가보기를 권한 곳이 바로 히로시마였습니다.

그들이 도쿄에서 800여 km나 떨어진 히로시마까지 한국의 언론인을 꼭 데리고 가고 싶어 했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즉, 일본인은 2차 대전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사실을 저의 머릿속에 넣고 싶어 했던 것이지요.

과연 그 평화기념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전시물을 다 보고 나면, 아… 일본은 피해자이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할 만큼 사실적이면서도 또한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여지없이 원폭이 떨어졌던 바로 그 중심, 마치 태풍의 눈과도 같이 핵폭풍으로부터 살아남은 건물을 구경하는 것으로 히로시마의 견학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그들은 매우 집요했다고나 할까…

초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그들은 저를 만나보기를 청하더니 저의 히로시마 방문 소감을 묻고 또 묻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지요.

그들이 2차 대전의 피해자임을 자처하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세뇌라고나 할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그 모든 국민 교육, 그리고 대외 선전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범국 일본의 위정자들, 그러니까 전범들이 자신의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고 난 뒤에도 그 책임을 면하는 방법 역시 집요하고도 교묘해서…

일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이 이른바 '1억 총 참회론', 즉 전쟁의 책임은 일본인 모두에게 있다 하여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낸 묘수라고나 할까…

이제 74년이 지난 지금 그 후예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시 추구하고 있는 '전쟁할 수 있는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을 나오면서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공원의 한구석에 아주 작은 비석으로 남아있는, 그래서 아주 열심히 찾기 전에는 존재조차 알기 어려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였습니다.

마치 마지못해 만들어놓은 듯한 그 위령비…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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