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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었던 '독도 영유권'…1954년 시찰 영상 첫 공개

입력 2019-08-12 20:23 수정 2019-08-13 16:53

'대한민국 독도'…6·25 직후 '영토수호' 담긴 영상
일 '영토도발' 시작 당시…확실한 '실효지배'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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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독도'…6·25 직후 '영토수호' 담긴 영상
일 '영토도발' 시작 당시…확실한 '실효지배' 증명


[앵커]

지금부터는 JTBC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50년대 독도의 모습입니다.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도 남면 독도'라고 새긴 글자, 바위 곳곳에 그린 태극기, 이것이 1950년대 우리 땅 독도의 모습입니다. 일본이 대외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던 바로 그때이기도 하지요. 독도에 한국령이라는 표지를 없애고, 한국 어부를 협박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런 일본의 도발을 의연하게 대처해 온 우리의 모습이 영상으로 처음 확인됐습니다. 한국 전쟁 직후에도 독도를 지켰던 흔들림 없는 의지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저희가 지금부터 보여드릴 영상은, 물론 공개된 적이 없는 현재까지 독도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필름입니다.

먼저 오선민 기자입니다.

[기자]

나룻배 한 척을 실은 배가 파도를 헤쳐 나갑니다.

해양경찰대 'ROKCG'라는 글자가 또렷이 보입니다.

태극기를 단 우리 경비선 '화성호'입니다.

저 멀리 섬이 보이기 시작하자 뱃머리로 사람들이 나옵니다.

힘을 모아 나룻배를 내리고, 사공이 노를 저어 외딴 섬으로 향합니다.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도 남면 독도' 입니다.

1954년 7월 25일 우리 국회가 파견한 '독도 시찰단'의 모습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독도에 대한 야욕을 자주 드러냈습니다.

당시 시찰단에 함께한 기자는 회고록에서 "일본 참의원이 바위마다 일장기를 그려놓았다"며, "'내가 다케시마에 왔다. 한국의 함선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망언을 해서 국회가 발칵 뒤집혔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사실을 재확인하기 위해 시찰단을 보낸 것입니다.

김상돈, 염우량, 김동욱 세 국회의원은 부산항을 출발해 22시간 만에 독도에 도착했습니다.

고된 여정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때마침 퍼붓는 폭우와 심한 파도는 마치 나뭇잎과도 같이 화성호를 농락하였다"
"나침반이 미수리가 돼서 불안정하고 방향을 놓쳤다."

시찰단은 독도 바위마다 그려진 일장기를 태극기로 고쳐 그렸습니다.

이후에도 우리 정부는 독도에 등대를 설치하고 경비를 강화했습니다.

(영상디자인 : 정수임 /  영상그래픽 : 한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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