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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억 달러 내세우며 일본 이익 대변…'한일협력위' 실체

입력 2019-08-06 22:58

'일본 8억 달러 실체 추적' 탐사보도 2탄
7일 보도 예고 : 한·일협력위, 한국 자원개발에 미친 영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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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8억 달러 실체 추적' 탐사보도 2탄
7일 보도 예고 : 한·일협력위, 한국 자원개발에 미친 영향은?


■ 한일협력위 '해결사' 역할…박정희-일본측 면담록에 고스란히

[앵커]

어제(5일) 예고해 드린대로 지금부터는 '원조'로 포장됐던 8억 달러를 앞세워서 우리 경제를 일본에 종속시키려 했던 한·일협력위원회의 실체에 대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보도는 저희가 입수한 1973년 9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일협력위 일본측 위원들의 면담록입니다. 당시에 김대중 의원 납치사건으로 한·일 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된 상황이었지요. 지금까지는 그 해 11월에 김종필 당시 총리가 박 전 대통령 친서를 일본에 전달해서 얼어붙었던 관계를 회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면담록을 보면 두 달 전에 이미 한·일협력위가 '해결사' 역할을 했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먼저 이태경 기자입니다.

[기자]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의 그랜드팔레스 호텔.

당시 유신을 반대하며 일본에 머물렀던 김대중 의원이 괴한들에게 납치됐습니다.

한국 정보기관이 개입한 증거가 나오자 일본 정부는 국권 침해라며 경제협력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일본 국회에서는 국교 단절까지 거론됐습니다.

납치 사건 50일이 지난 73년 9월 28일.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등 한·일협력위 일본 측 위원들이 청와대를 찾았습니다.

냉랭했던 한·일 관계와 달리, 면담은 처음부터 화기애애했습니다.

주한 일본대사를 '샌드위치맨'이라 부르며 웃음을 유도한 박 전 대통령은 납치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한국사람이 일본에서 물의를 일으켜 면목이 없는 느낌"이라며 "정보 기관과 관계 있다면 사과에도 인색하지 않겠다"고도 말했습니다.

이러자 기시 전 총리를 비롯한 일본 측은 "예상치 못했던 놀랍고 기쁜 말씀", "이 사건은 바늘과 같이 작은 문제인데 여론이 도끼마냥 떠들고 있다"며 맞장구를 칩니다.

양 측은 납치 사건과 별도로 경제는 그대로 협력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 합니다.

기시 전 총리가 "이번 사건과 양국의 우호친선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은 "이 두 가지 문제는 별개로 다루도록 다나카 총리에게 건의해 달라"고 말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한·일협력위가 청구권 자금이 들어간 사업을 총괄하는 주체라는 언급도 나왔습니다.

협력위의 다나카 다쓰오 의원은 "한·일각료회의가 지연돼도 유무상 사업은 협력위에서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면담 후 두달 뒤, 김종필 당시 총리는 박 전 대통령 친서를 들고 일본 다나카 총리에게 공식 유감을 표명했고, 한·일각료회의도 재개됐습니다.

전범 기업들의 리베이트 창구가 됐던 서울지하철 차관 사업도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8억 달러 내세우며 일본 이익 대변…'한일협력위' 실체


■ 일본 이익 챙긴 '한일협력위'…주축은 전범기업 임원

[앵커]

보신 것처럼 한·일협력위원회라는 것은 한·일 관계 주요 국면마다 깊숙이 개입해 왔습니다. 원조로 포장된 8억 달러를 내세우면서 일본의 이익을 대변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전범과 전범기업, 그리고 만주군 출신으로 구성된 일본 측 위원들이 있었습니다.

이호진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2013년 11월, 한·일 협력위원회 합동총회 개회식입니다.

[아베 신조/일본 총리 : 일한·한일협력위원회는 제 조부 기시 노부스케가 초대 회장을 역임했고.]

한·일협력위원회 초대 회장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일본이 세운 만주국 총무청 차장을 지냈습니다.

패전 후 3년 간 복역한 A급 전범이었습니다.

하지만 출소 이후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발언했습니다.

기시 전 총리는 만주군에서 활동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각별한 친분이 있었습니다.

[아베 신조/일본 총리 (2013년 2월 22일) :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은 제 조부와 가까운 친구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에 가장 우호적인 대통령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한·일협력위 위원이었던 시나 에쓰사부로 중의원은 만주국 광공사장 출신입니다.

"조선병합은 영광스러운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한·일협력위 사무총장 다나카 다쓰오 중의원도 만주국 통치기구였던 만주철도 출신이었습니다.

한·일협력위에 참여한 일본 재계 인사 상당수는 전범기업의 임원들이었습니다.

대표적 전범기업인 후지노 주지로 미쓰비시 상사 사장과 미즈카미 다쓰조 미쓰이물산 사장은 상임위원이었습니다.

위원들 중에는 오쿠보 겐 미쓰비시전기 대표 이사 등 21개 전범기업이 포함됐습니다.

 
8억 달러 내세우며 일본 이익 대변…'한일협력위' 실체


■ 훈장 받은 'A급 전범'…한일 양측에서 이익 챙긴 '협력위'

[앵커]

전범과 전범기업으로 구성됐던 한·일협력위원회의 일본 측 주요 인사들은 심지어는 우리로부터 훈장도 받았습니다. 한국의 국권 신장과 양국 우호에 기여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박준우 기자입니다.

[기자]

사람들이 입항하는 배를 향해 한·일 양국 국기를 흔듭니다.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는 '부관 페리'의 재취항을 기념한 것입니다.

배에서 부산으로 첫발을 내디딘 사람은 다름 아닌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뱃길을 연 것을 자축한 셈입니다.

기시 전 총리의 지역구였던 야마구치현에서 외손자인 아베 총리도 정치적 입지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기시 전 총리는 취항 다음날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국가 훈장인 1등급 수교훈장을 받았습니다.

A급 전범인 기시 전 총리가 한국의 국권 신장에 기여했다며 수훈자로 선정된 것입니다.

훈장을 받은 배경은 박 전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이후락 당시 주일대사가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문서에도 나옵니다.

기시 전 총리가 한·일 우호에 큰 공헌을 했다며, 다른 사람에게 먼저 훈장을 주면 서운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한·일협력위원회 일본 위원들에 대한 서훈은 기시 전 총리만이 아닙니다.

다나카 다쓰오 전 문부대신과 한·일경제협력방안인 '야쓰기 안'을 제안한 야쓰기 가즈오를 비롯해, 노다 우이치 전 중의원, 일본의 군사력 확보를 주장한 후나다 나카 전 중의원 의장 등 모두 5명입니다.

당시 서훈을 받았던 일본인들은 또 있었습니다.

1973년 산업훈장을 포상할 때 가장 큰 상인 금탑훈장은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의 나가노 시게오 명예회장이 받았습니다.

포항제철 부사장과 이사, 경제기획원 차관보는 그 밑인 은탑, 동탑, 홍조근정훈장을 나란히 받았습니다.

 
8억 달러 내세우며 일본 이익 대변…'한일협력위' 실체


■ '8억달러 사업' 넘어…'협력위' 한국 정치에도 영향력 행사

[앵커]

이 문제는 탐사기획부 유선의 기자와 한 걸음 더 들어가보겠습니다.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면담 내용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공개가 전혀 안 됐습니까?

[유선의 기자]

언론은 나온 적이 없고 또 저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들에게도 문건을 보여주면서 혹시 본 적이 있느냐, 혹은 들은 얘기가 있느냐고 물어봤지만 처음 보고 듣는 것이라고 확인을 했습니다.

[앵커]

그런가요?

[기자]

이 문건을 보면 한일협력위원회가 지금 거론되고 있는 8억 달러의 자금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은 물론이고 또 정치 문제에도 해결사 역할을 했던 셈인 정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일협력위원회의 긴밀한 관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한 곳을 좀 보겠습니다.

당시 자민당의 원로인 이시이 미쓰지로 위원의 말을 보면 "마음과 마음의 굳은 유대관계가 있으니까 이런 때일수록 아무 말 없이 그저 손을 꽉 잡는다는 생각에 왔다"라고 말을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으로 한·일관계가 상당히 경색이 됐었지만 최소한 협력위원회 안에서만큼은 신뢰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손만 꽉 잡자고 얘기했으니까요. 그것은 다 정치적인 어떤 배경이 당연히 있는 것이고 그에 따른 이해관계가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으리라고 충분히 뭐 예상은 합니다. 한·일협력위가 일본 자금 8억 달러 사용처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친 것으로 우리가 지금 이 취재 결과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자금에 대한 성격도 언급이 됩니까?

[기자]

기시 전 총리의 측근인 그리고 또 한·일협력위원회 위원인 다나카 다쓰오 위원의 발언을 보겠습니다.

"한·일 경제협력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유상협력도 있고 거의 배상에 가까운 무상협력이 청구권협정으로 추진돼 오고 있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앵커]

그 표현은 무엇입니까? "거의 배상에 가까운 무상협력" 이것은 무슨 뜻인가요?

[기자]

이것이 좀 단어의 문제로 보이는데 배상이라는 것은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를 갚아주는 것을 의미를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 일본은 전쟁도 또 식민지 배도 불법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배상도 할 수 없다 이런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면담록에는 "거의 배상이다"라고 스스로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과거 불법행위를 내부적으로는 좀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려지다시피 공식적으로는 일본은 그것은 독립축하금이다, 원조다 이런 명목으로 겉으로는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그것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거의라는 표현을 쓴 것이겠죠. 배상금이라고 얘기 안 하고. 그런데 이렇게 들어온 돈도 결국은 이제 전범기업이라든가 일본으로 다시 흘러들어갔다는 정황 이것이 어제 저희들이 보도한 내용의 핵심이잖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일본이 거의 배상에 가깝다라고 표현한 그 무상협력 3억 달러 중에 가장 큰 부분이 포항제철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어제 전해 드렸듯이 원래는 농업지원만 하겠다고 하던 일본이 제철소 사업에도 지원을 하겠다고 입장을 바꾼 배경에는 자신들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또 유상차관으로 건설된 서울 지하철의 경우에도 배차 간격을 거의 2배로 부풀리고 또 하기로 했던 기술 이전도 전혀 해 주지 않은 정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 공개한 면담록도 보면 당시 일본 측이 서울 지하철 차관을 늦게 보내서 공사가 지연된 정황도 드러나 있습니다.

[앵커]

서울 지하철 사업의 경우에 무상이 아니라 이자율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이건 당연히 안 지킨 것이 라고 봐야 되는 것이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 4.125%였는데 당시 75년에 미국이 제공한 AID 차관에 비해서도 1~2%가 높았습니다.

그리고 그보다도 실제 높은 이자를 빌린 3억 달러, 3억 차관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 국내에서도 이 문제는 상당히 거론이 됐었습니다.

한·일협력위의 문건을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 측이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단기 고리의 민간차관이 압도적이어서 차관 업체의 8할 이상이 부실 기업이 되고 있다"고 우려를 하니까 하지만 일본은 "업체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 협력위가 개입할 수 없다" 이렇게 선을 그어버립니다.

또 포항제철 사업처럼 사실 무상으로 줬다라고 일본이 주장하는 것도 현금이 아니라 일본의 기업 물건 또 용역 이런 것으로 주고 그 대상은 또 보도해 드렸다시피 상당수가 미쓰비시, 미쓰이 같은 전범기업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우리를 통해서 전범기업들을 지원해 준 것 아니냐 이런 시각도 있습니다.

[앵커]

한·일협력위, 공식 명칭이 그것이죠. 이 경우에 일본 정부의 공식 채널이 아니라 민간 단체이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항의하기가 쉽지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까 같이 다른 것은 다 개입하면서 그것은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그냥 발뺌해버리는 경우라든가, 어떻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한·일관계 전문가인 유인호 교수가 논문으로 한·일협력위의 성격을 정의한 것이 있는데 잠깐 보겠습니다.

"한·일 간에 공식적인 외교채널을 통하기보다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는 정치가를 통해서 중요한 일들이 처리되고 또 이권 청탁 등으로 정치적 부패와 연걸된다"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베 총리는 65년 청구권 협정 그리고 이후 69년부터 시작된 한·일협력위를 통해서 준 8억 달러 자금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는데 하지만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피해자들은 전혀 몰랐고 또 배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서울 지하철의 경우처럼 오히려 전범과 전범기업 또 만주국 인맥들로 구성된 한·일협력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개입을 해서 또 상당 부분이 다시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이번 문건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앵커]

내일도 관련 보도가 이어지죠.

[기자]

내일은 한·일협력위원회가 우리 자원개발에도 영향을 미친 정황을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화면출처 : 국가기록원·일본내각광보실·미쓰비시사료관)
(영상디자인 : 정수임·오은솔)

▼ '일본 8억 달러 실체 추적' 탐사보도 1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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