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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력위 '해결사' 역할…박정희-일본측 면담록에 고스란히

입력 2019-08-06 20:53 수정 2019-08-06 23:09

'원조로 포장된 일본 8억달러' 탐사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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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로 포장된 일본 8억달러' 탐사보도


[앵커]

어제(5일) 예고해 드린대로 지금부터는 '원조'로 포장됐던 8억 달러를 앞세워서 우리 경제를 일본에 종속시키려 했던 한·일협력위원회의 실체에 대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보도는 저희가 입수한 1973년 9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일협력위 일본측 위원들의 면담록입니다. 당시에 김대중 의원 납치사건으로 한·일 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된 상황이었지요. 지금까지는 그 해 11월에 김종필 당시 총리가 박 전 대통령 친서를 일본에 전달해서 얼어붙었던 관계를 회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면담록을 보면 두 달 전에 이미 한·일협력위가 '해결사' 역할을 했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먼저 이태경 기자입니다.

[기자]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의 그랜드팔레스 호텔.

당시 유신을 반대하며 일본에 머물렀던 김대중 의원이 괴한들에게 납치됐습니다.

한국 정보기관이 개입한 증거가 나오자 일본 정부는 국권 침해라며 경제협력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일본 국회에서는 국교 단절까지 거론됐습니다.

납치 사건 50일이 지난 73년 9월 28일.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등 한·일협력위 일본 측 위원들이 청와대를 찾았습니다.

냉랭했던 한·일 관계와 달리, 면담은 처음부터 화기애애했습니다.

주한 일본대사를 '샌드위치맨'이라 부르며 웃음을 유도한 박 전 대통령은 납치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한국사람이 일본에서 물의를 일으켜 면목이 없는 느낌"이라며 "정보 기관과 관계 있다면 사과에도 인색하지 않겠다"고도 말했습니다.

이러자 기시 전 총리를 비롯한 일본 측은 "예상치 못했던 놀랍고 기쁜 말씀", "이 사건은 바늘과 같이 작은 문제인데 여론이 도끼마냥 떠들고 있다"며 맞장구를 칩니다.

양 측은 납치 사건과 별도로 경제는 그대로 협력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 합니다.

기시 전 총리가 "이번 사건과 양국의 우호친선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은 "이 두 가지 문제는 별개로 다루도록 다나카 총리에게 건의해 달라"고 말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한·일협력위가 청구권 자금이 들어간 사업을 총괄하는 주체라는 언급도 나왔습니다.

협력위의 다나카 다쓰오 의원은 "한·일각료회의가 지연돼도 유무상 사업은 협력위에서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면담 후 두달 뒤, 김종필 당시 총리는 박 전 대통령 친서를 들고 일본 다나카 총리에게 공식 유감을 표명했고, 한·일각료회의도 재개됐습니다.

전범 기업들의 리베이트 창구가 됐던 서울지하철 차관 사업도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영상디자인 : 정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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