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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구분없이 모두 '그' 지칭…'평등' 꿈꾼 여성운동가

입력 2019-06-11 07:28 수정 2019-06-1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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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희호 여사가 남긴 자서전에는 '그녀'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남녀 구분없이 모두 '그'라고 지칭했습니다. 고인은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던 시절부터 남녀 평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여성 운동가로서의 삶을 박소연 기자가 정리해 드립니다.

[기자]

 

나는 페미니스트였다

-이희호 자서전 '동행'

이희호 여사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인격으로 차별받지 않는 평등 사회를 꿈꿨습니다.

일제 시대에 태어났지만, 사회 의식은 동시대 그 누구보다 깨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1952년,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라며 지금의 여성문제연구회를 만들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YWCA 총무로 활동하며 첩을 두는 것을 반대하는 축첩반대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하고 나서는 정치로 발을 넓혔습니다.

1971년 대선 때는 여성들의 주권 행사를 촉구하는 찬조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여사의 신념은 자연스럽게 김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여성을 대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도움 때문"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아내 덕분에 인류의 나머지 반쪽을 찾을 수 있었다"는 고백도 남겼습니다.

이 여사의 오랜 꿈은 김대중 정부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가족법을 개정하고, 여성부를 신설했습니다.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를 지명하기도 했습니다.

'내조자'에 불과했던 과거 대통령 부인의 전형도 깼습니다.

단독으로 5차례 해외 순방에 나섰습니다.

2002년에는 대통령을 대신해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참석했습니다.

의장국으로서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기조연설도 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더 단호하고 당당하게…"

미투 운동을 바라보며 이 여사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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