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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오전에는 선진국 기사, 저녁에는 후진국 기사…'

입력 2019-05-15 21:38 수정 2019-05-15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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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학교까지 타고 가는 버스를 제대로 올라타고 간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이렇게, 버스 문에 매달려 미아리 고개를 넘어갔지요. 

만원 버스는 그렇게 우리들에겐 위험한 일상이었습니다.

가끔씩 센스 있는 기사분이 달리는 버스의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한 번씩 꺾어 차체를 기울여주면…

우리는 쓸어 담기듯 버스 안으로 밀려들어 가곤 했습니다.

삶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도시는 더 휘황찬란해졌지만…

사실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버스의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미처 내리기도 전에 닫히는 문에 때론 등을 맞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에 조마조마하거나,

가끔은 불친절한 기사의 태도에 낯을 붉힌 날도 있겠지요.
 

오전에는 선진국 버스 기사였다가 오후에는 개발도상국, 저녁에는 후진국 기사가 된다

- 허혁 <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모는 허혁 기사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루 열여덟 시간…

종점과 종점을 오가는 이른바 '탕'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화장실조차 허용되지 않는 바쁜 시간들…

"시내버스 운전은 육체노동에 감정노동을 더한 일이라 늘 배고프고 배배 꼬이기 쉽다"
- 허혁 <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노동은 고단했지만 대가는 박해서 마음은 배배 꼬이기 십상이라 했습니다.

"누구도 잘못이 없다. 모두가…최선을 다할 뿐이다. 삶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대목"
- 허혁 <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그러나 승객들 또한, 저마다의 삶이 고단할 것이기에 그는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번 파업 논란을 지켜봤던 시민들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출근길 걱정에 맘을 졸이고, 요금 인상 결정에 한숨 쉬면서도 함부로 탓할 수 없었던 바로 그 마음들 말입니다.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 노회찬, 정치인

새벽 네 시, 서울 구로동에서 출발하는 '6411번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

정치인 노회찬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고단한 노동자를 일컬어 '투명인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시내버스 안에는 또 한 명의 투명인간이 존재합니다.

그들보다 더 이른 시간부터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시내버스 기사들입니다.

그 옛날 한 번씩 운전대를 꺾어서 지친 승객들을 쓸어 담던…

수업시간엔 그리도 이해하기 어렵던 관성의 법칙을 단번에 이해하게 해주었던 그 기사들 말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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